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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그래서 왜 떨어졌는지 묻는다면

래서 우린 왜 떨어졌어요? 실패박람회 ⓒ대구창작발굴단

최근에 흥미로운 프로그램에 함께 했다. 그동안 내가 심사에 참여한 대구 지역의 지원 프로그램에서 떨어진 뮤지션들에게 왜 떨어졌는지 설명하는 행사였다. 대구에서 열린 ‘2022 실패박람회’의 일환으로 오터스맵에서 준비한 ‘그래서 우린 왜 떨어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혼자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제목부터 부담스러웠다.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심사를 종종 하고 있지만, 심사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누군가 마음 다해 노래하고 연주하거나, 공들여 쓴 지원서를 선택하지 않을 때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만 더 고민하고 다르게 준비하면 좋았을 텐데 싶은 안타까움의 연속. 그래서 돌직구처럼 붙인 제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담아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솔직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대화와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원 프로그램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음악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다. 음반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거나, 혹은 다른 기획을 하더라도 음악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기회를 주기 어렵다. 사실 음악의 설득력이 충분하면 기획의 방향과 아이템이 다소 미진하더라도 기회를 주고 싶어진다. 어떤 지원 프로그램에서 심사를 맡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기 때문에 혼자만의 의견으로 심사 결과를 좌지우지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포즈 취하는 프로듀스 X 101 트레이너와 연습생들 ⓒMnet

그런데 음악 자체로 충분히 설득하지 못 하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면 다양한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음악의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제각각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개성이 중요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편성이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심사위원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개성으로든 보편성으로든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 울림은 멜로디에서 올 수도 있고, 노랫말에서 올 수도 있으며, 리듬·비트에서 올 수도 있다. 혹은 사운드에서 올 수도 있다. 좋은 멜로디와 노랫말과 리듬·비트, 사운드는 심사위원들의 서로 다른 정체성과 취향, 안목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 멜로디, 노랫말, 리듬·비트,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까. 직접 음악을 하지는 않는 위치에서 음악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하는 건 주제 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코드를 바꾼다거나 리듬을 바꾸는 등의 기술적인 접근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자신 안에 좋은 멜로디, 노랫말, 리듬·비트, 사운드의 데이터베이스가 많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창작물에 대한 기준이 높아질 수 있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진다. 사람들은 천재가 어떤 작업도 참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과물을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존재라고 상상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꾸준히 흡수해야 한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모방이 아니라 참고일 수도 있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싶은 스타일, 이야기, 장르에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전개했는지 파악하는 일은 창작자로 살아가는 내내 지속해야 할 일이다. 음악에서만 자극을 받을 리가 없다. 시, 소설, 미술, 연극, 영화, 춤 같은 예술장르나 인문사회과학적 인식으로 계속 자극하고 채워야 한다. 그래야 풍부한 정서, 견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면서 키워갈 수 있다.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예술에 대해 알고 있어야 좋은 표현이 가능하다. 좋은 관점과 표현을 축적하고 있으면 변용할 수 있고 확장할 수 있다. 채워지지 않는 우물은 금세 말라 버린다.

그리고 좋은 작품은 단지 좋은 음악 언어를 가지고 있는 작품만이 아니다. 남 다른 태도나 컨셉트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 언어만 향유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뮤지션이 음반, 음원, 공연, 활동, 소셜미디어 등으로 전달하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만끽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음악 안팎으로 어떤 세계를 구축해 보여줄지 고민해야 한다. 데이빗 보위를 떠올려 보면 금세 이해가 될 것이다. 뮤지션은 음악 창작자이자 자신에 대한 연출자여야 한다.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 시즌6' 제작발표회 모습 ⓒ뉴시스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되 지역 바깥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이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이 보지 못했거나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을 찾아내 도전하면서 성장할 수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업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거나, 동어반복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함께 작업하는 이들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주최 측에서 어떤 목적으로 사업을 공모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국공립예술기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예술가들의 창작의지를 북돋고 활성화하기 위해 사업을 펼치지만, 모든 사업이 창작 예술가만을 향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업은 대중을 향한다. 대중이 더 자주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중이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지원한다. 예술을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동소이한 공연을 하거나 음악을 만드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이 그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경우 기획서에 추상적인 단어를 늘어놓는 일은 금지다. 자신이 만드는 음악과 공연에서 어떻게 주제를 구현할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들의 곡이든, 다른 이들의 곡을 커버하든 어떤 식으로 주최 측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추상적인 관념어를 늘어놓거나, 자신만의 음악을 보여준다는 식의 상투적인 언어를 적어서는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 음악, 무대, 공연장 안팎에서 주제를 실현하는 방법을 최대한 적시해야 한다.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닐지라도 고민해서 기획한 지원서는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만이 완벽한 답일 리는 없다. 더 많은 의견과 조언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내가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들 중의 일부가 왜 떨어졌는지 궁금해하는 이들, 앞으로 더 많은 지원작업을 수행하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그리고 어떤 예술에도 실패는 없다. 우리는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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