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했다. 전체 회의 내용을 생중계할 정도라면 뭔가 새로운 대책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는 불과 80분이 지난 뒤 여지없이 무너졌다.
회의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고물가 고금리 속에 서민의 경제적 고통은 이미 한계치를 넘고 있는데 비해서 이날 대통령과 장관들의 모습은 정말 경제상황이 비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게 했다. 대책이라고는 ‘수출’이라는 말만 무한반복 하고 있지만 막상 방안은 구체적인 것이 없고, 당장 눈앞이 낭떠러지인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대책도 부재했다. 한마디로 한가한 소리만 80분간 오갔다.
무엇보다 현재 최대 경제 현안인 강원도 발 신용경색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장관들이나 이상할 정도로 단 한마디도 없었다. 강원도의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촉발된 레고랜드 사태의 불길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생중계 회의였다. 그런데 마치 다른 나라 대책회의 하듯이 장밋빛 청사진만 홍보하고 있는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우선과제와 정부기구의 역할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도 걱정을 키운다. 윤 대통령은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한 사회 서비스 산업부라고 봐야 되고, 국방은 방위산업부가 돼야 하고, 국토교통부도 인프라건설산업부가 되는 등 모든 부처가 국가전략산업을 지원하고 촉진시키는 산업과 수출에 매진하는 부서”라고 발언했다.
전 부처의 산업부 부서화는 어느 정부도 일찍이 해본 적이 없는 극단적인 발상이다. 이런 발언이 대화 중에 어쩌다 한 번 언급된 것이 아니고 두 차례나 강조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소신인 듯 보여서 더 우려되는 대목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국가의 역할은 산업 활성화 그 이상이어야 마땅하다.
장관들이 이구동성 주52시간 근무제 완화를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민생대책’이라는 회의 이름마저 무색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해외 건설사업을 예로 들면서 “우리 기업 노동자들만 일찍 퇴근해야 해 수주 경쟁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올해까지가 일몰기한이었던 30인 미만 사업장 주60시간 근무에 대해 “업계가 모두 성명서를 내고 일몰제를 폐지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52시간제가 경제 위기의 원인도 아니고, 이것을 완화한들 위기가 극복될 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현재 90일에서 180일로 대폭 확대하겠다”거나 “일몰제를 2년 더 연장하는 법을 추진하겠다”는 말로 호응했다. 과로가 민생대책이라는 식이다.
회의를 시작하면서 윤 대통령은 “경제에 탄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어떤 계획을 수립해서 실천할지 궁금해 하실 것”이라며 “오늘 우리가 비공개로 쭉 해오던 이런 회의를 언론에 공개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하던 대통령 주재 회의의 실상을 모두가 알게 되고 기대를 낮춘 것 말고 특별히 경제에 도움 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