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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학의 세상다양] ‘깻잎논쟁’이 묻고 있는 질문은 이거다

내 애인이 이성인 친구와 밥을 먹는데 둘 중 한 사람이 반찬으로 나온 깻잎무침에에서 맨 위 깻잎 한 장을 잘 떼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이 도와줘도 되는가?

이제는 조금 시들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작년 말부터 시작돼 최근까지 방송가에서 꽤나 핫했던 깻잎논쟁이다. 이 질문은 ‘깻잎을 잡아줄 거냐 말 거냐’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 된 질문인 ‘여자와 남자가 친구가 될 수 있냐’는 질문의 반복이다.

여자와 남자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자신은 이성인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애인을 사귀면 ‘올인’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들 중에도 방송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자신은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 같았다. 이성인 친구가 없는 사람은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이성인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와 바람을 피우게 될까? 혹은 이성인 사람과 친구가 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연애를 하는 관계가 되는 걸까?

깻잎논쟁과 관련해서도 어떤 연예인이 어떤 말을 했다고 정리해 둔 사람들이 있다(그만큼 화제였다!). ‘절대 깻잎을 잡아줘서는 안 된다’며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애를 하고 있거나 결혼을 했다면 이성과는 밥을 같이 먹는 것도 술을 같이 먹는 것도 안 되고 대화를 하는 것도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이성인 친구가 하나도 없는 게 좋은 걸까? 애인을 사귀게 되거나 결혼을 하면 이성인 친구들과는 전부 인연을 끊어야 할까?

이성인 친구가 하나도 없는 것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신과 성별이 다른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남성인 사람들이 여성인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평등한 관계의 동료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인 사람과는 연애를 하게 될까봐 아무 것도 함께 못한다면(깻잎을 떼는 것을 도와주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학교나 회사에 있는 모든 이성인 사람들이 친구나 동료가 아니라 연애 대상인 이성으로만 보인다면 그게 문제인 거다. 이 세상에는 연애 감정이라는 감정만 있는 게 아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연인 관계만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이 질문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빈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별과 상관없이 친구로 동료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성별뿐만 아니다. 나이, 인종, 민족, 성별정체성, 성적 지향, 장애, 외모, 소득수준, 지역, 종교 등과 상관없이 친구로 동료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남성들이 여성을 친구나 동료로 여기지 않고 오직 성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남성이 여성을 ‘동일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성적인 존재’로만 인식했을 때 우리 사회에 일어나게 되는 일들은 우리는 지금껏 수없이 목격해왔다. 남자 단톡방 사건, 직장 내 성적 괴롭힘, 디지털 성범죄, 스쿨미투 등 여성이 친구나 동료가 아닌 성적인 존재이기만 할 때 어떤 세상이 만들어 지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깻잎논쟁은 사람을 성별로 나누고
이성은 연대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인식
깻잎논쟁과 펜스룰을 넘어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안전한 사회는 불가능한가


‘펜스룰’이라는 게 있다.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대통령이 자신은 자신의 파트너가 동석하지 않는다면 다른 여성과 1:1로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만큼 성비위 사건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우스운 것은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는 여성과 단 둘이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그렇게 중대한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깻잎논쟁과 펜스룰을 넘어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안전한 직장과 사회가 필요하다 ⓒpixabay

미투운동이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었을 때 여성들은 “성폭력이 없는 직장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슬플 정도로 당연한 요구사항이다. 그런데 ‘미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펜스룰이 답이다’는 식으로 반응한 남성들, 그리고 회사들이 많다. ‘여성들과 말을 섞으면 성희롱이라고 할 수 있으니 업무지시도 메신저로 하라’든가 ‘여성들과 회식을 하면 성추행을 당했다고 할 수 있으니 여성 직원들과 남성 직원들은 회식을 따로 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로 회식을 성별로 나눠서 하는 회사들이 있다. 성폭력을 없애라고 했더니 주변에서 여성을 없애는 식이다. 여성과 동등한 동료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상상 밖인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지내면서도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과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여성이 주변에 없어야 내가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여성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누가 없어져야 할까?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친구나 동료가 될 수 없는 사회는 절대 일상의 남성 카르텔, 남성 지배를 깰 수 없다.

더불어, 우리는 깻잎논쟁, 즉, ‘여자와 남자가 친구가 될 수 있냐’는 아주 오래된 이 질문을 통해,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연애를 위한 것으로 보는 연애중심적 사고방식과 함께 모든 사람이 유성애자(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라는 유성애 중심주의, 그리고 모든 유성애자들은 이성애자일 것이라는 이성애 중심주의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농담처럼 쓰이는 이야기에서도 내용의 함의와 본질을 파악해 내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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