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이태원 참사, 그 후의 몇 가지 생각들

1일 서울 용산구 핼러윈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인근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적은 글을 붙이고 있다. 2022.11.01 ⓒ민중의소리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이후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쓴다.

참사가 벌어졌고, 수많은 이들이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슬픔은 서서히 분노로 옮겨가는 중인데, 그럼에도 아직은 아무도 ‘추모곡’을 떠올리지 못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에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비롯한 노래들로 미어지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지난 며칠 동안 소셜미디어에 추모곡을 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할로윈데이로 북적이는 이태원에 모였던 청춘을 생각하면 그들이 좋아했을만한 일렉트로닉이나 힙합으로 못 다한 삶과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해야 할 것 같은데, 충격과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차마 음악을 고르기 어렵다. 슬픔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 때, 슬픔을 지켜볼 수 있을 때, 음악을 만들어 추모할 수 있다.

추모는 진상을 밝히는 일과, 책임자를 찾는 일과,
처벌하는 일과, 시스템을 보완해 새롭게 만드는
일과 동시에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이들을
어떻게 호명할지 정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언어와 상징을 만드는 일은
추모의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아직은 이번 참사를 상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 추모곡도 없고, 모형이나 그래픽도 없다. 모두가 공유하는 문구 또한 없다.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되었고, 참사의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탓이다. 지금은 ‘이태원 참사’라는 명칭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례가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서둘러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이들은 일주일이 지나면 경제위기와 북핵위기를 앞세워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짐짓 고뇌에 찬 목소리로 권유할지 모르지만, 추모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추모는 진상을 밝히는 일과, 책임자를 찾는 일과, 처벌하는 일과, 시스템을 보완해 새롭게 만드는 일과 동시에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이들을 어떻게 호명할지 정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언어와 상징을 만드는 일은 추모의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 후 노란 리본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가 우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묶어주었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니 2022년 젊음의 언어로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짐하는 상징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무책임한 행정과 무능력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상징이 필요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아니고, ‘다시 만난 세계’도 아니고. ‘헌법 제1조’도 아닌 다른 노래.

그리고 참사 직후 다른 사회적 참사나 재해 때 그랬듯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에서는 공연, 축제, 행사 등을 자발적으로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당수 뮤지션들의 의견이 달랐다. 김마스타, 김재훈, 생각의여름을 비롯한 상당수의 뮤지션들은 왜 다른 업종에서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데, 콘서트와 공연은 당연히 취소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음악으로 추모할 수 없느냐고, 음악으로 위로할 수 없느냐고 항변하면서 예정한 공연을 무거운 마음으로 열거나 중단했다.

사회적 참사나 재해 때
모든 공연을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일방적 추모를 일부에게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보면 장례나 종교 행사에서 음악은 빠지지 않는다. 음악이 얼마든지 위로하고 추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콘서트와 공연을 취소한 것은 음악·예술을 단순히 유희나 흥을 위한 도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다. 케이팝이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을 때는 홍보의 도구로 무한 활용하면서, 참사나 재해 때는 무조건 멈추라는 태도는 음악을 국가의 장식이나 놀이로만 생각하는 천박하고 상업적인 태도일 뿐이다.

2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를 하고 있다. 2022.11.02 ⓒ민중의소리

상당수 뮤지션들과 음악팬들이 문제제기에 동의한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많은 뮤지션들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위기 때마다 창작곡을 만들거나 추모 공연·집회에 동참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기 우리 사회는 뮤지션·예술인들에게 유독 가혹했다.

다들 식당에서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고,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매일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면서 관객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침묵을 지키는 공연은 좀처럼 열지 못하도록 막았다. 합리적이지 않은 행정이 이어지는 동안 많은 뮤지션들과 음악계의 다양한 종사자들이 음악을 중단하고 생계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보상은 변변치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사회적 참사를 앞세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니 공감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회적 참사나 재해 때 모든 공연을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추모를 일부에게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제대로 추모해야 할 이들은 뮤지션이나 예술인들이 아니라 대통령과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그리고 조회수 올리기에 급급한 일부 언론매체의 몰지각한 이들이다. 그들은 지금 뮤지션들이나 시민들이 아파하는 것만큼 아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공감 능력이 없는 이들은 음악과 예술을 통해 위로하고 추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지 못한다. 제대로 위로하고 추모하지 않는 이들에게 노래는 벼락처럼 떨어지는 천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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