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주일째에 열린 청년들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는 무력하게 슬픔을 나누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참사 책임을 물으며 “책임자를 파면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5일 오후 6시 청년진보당 주최로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청년 추모 촛불’이 진행됐다. 행동 체인저스, 진보대학생넷, 청년하다, 한국청년연대, 청년시대여행 등 청년단체들도 이날 집회를 공동 주최했다.
이 촛불집회는 애도의 마음을 나누자는 게 기본 취지였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저 무력하게 슬퍼하지만은 않았다. 안전 관리 책임을 방기한 정부를 향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500여명의 시민들은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 ‘살릴 수 있었다. 윤석열이 책임져라’, ‘경찰청장, 행안부 장관, 총리까지 참사 책임자 파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한덕수 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을 파면하고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경찰의 ‘셀프수사’나 ‘한동훈 특검’도 믿을 수 없다며, “피해자 유족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 찾았던 청년 “정권, 우리가 무서워야 변해…더 연대하자”
참사 당일 이태원에 갔었던 한 청년은 이날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참사 책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이 사건에서 청년세대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지적했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가 대독한 편지에서 그는 “이번 참사를 보고 ‘MZ세대는 생각이 없다’, ‘놀러 나가서 사람이 많으면 돌아와야지’, ‘위험하면 안 가야지’, ‘일이 벌어져도 옆에서 술 마시고 노는 악마 같은 애들’이라고 말한다”며 “이런 프레임에서 기성세대가 우리를 보는 시선 느낀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날 경찰은 마약사범을 잡기 위해 200명을 투입했다. 그들 눈에 우리는 놀기 좋아하고, 생각 없고, 마약이나 하는 개념 없는 애들로밖에 안 보였던 것 같다”며 “심지어 이런 말을 펑펑 내뱉으면서도 정권은 우리가 무섭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안전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가장 큰 문제지만, 기성세대가 핼러윈 문화, 청년세대 놀이 문화를 한심하게 보는 시선이 기조에 깔려, 이런 참사로 이어진 거 같다”고 짚었다.
또 “우리 친구들은 너무 많이 죽는다. 길에서 죽고, 일하다 죽고, 집에서 자살하고 있다”며 “정권이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한 이 죽음을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연대하고 더 뭉쳐서 슬퍼하지 않도록 힘내자”고 말했다.
다른 청년들도 진정한 추모는 가만히 서서 하는 게 아니라,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청년하다의 한 회원은 마이크를 쥐고 “국가 역할은 사건 원인을 밝히고 진상 규명을 하는 것”이라며 “국가가 정해주는 대로 슬퍼하고 애도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화여대생이라고 밝힌 봉준희 씨도 “개인들의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국가 부재 속에 필연적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앞장서서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책임감 느끼는 기성세대들 “부끄럽다…먼저 적극 행동하자”
기성세대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정부 책임을 묻자는 제안도 나왔다. 자유발언을 신청해 무대에 오른 김형준 씨는 “지금이 무정부 상태인가, 정부가 있는 건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며 “사고가 나고 행동하려 하지 말고, 예측해서 예방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성세대로서 나부터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청년을 생각하고, 내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정부는 무엇인지 생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현장에는 앳된 얼굴들 사이에 중장년층 의모습도 보였다. 한 40대 부부는 세 자녀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가족, 동료들과 함께 온 50·60대들이 많았다.
진보당 당원이라고 밝힌 김모(53·성남시) 씨는 “20살 아들이 있다. 내 자식이 죽은 듯한 아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시스템이 망가져 이런 참사가 발생했다”며 “안전 사회를 위한 그간의 노력이 무너져버렸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로서 부끄럽다. 우리가 할 일이 많다”고 미안함을 전했다.
집회 중반 현장에선 특별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참사 당일 처음으로 관련 신고가 112에 접수된 6시 34분에 맞춰 시민들이 휴대전화 플래쉬를 켜고 입을 모아 ‘국가는 없었다’, ‘윤석열이 책임져라’, ‘참사 책임자 파면하라’고 외쳤다.
추모 공연도 이어졌다. 청년 문화예술노동자 임한빈 씨는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한 자작곡을 불렀다. 그는 노랫말에서 “왜 꼭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잘못된 것을 깨닫나...사람들을 잃지 않고도 잘못된 것이 바뀌어 가기를”이라고 했다. 곡조가 고조되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외쳐왔잖아”라는 후렴구를 부를 때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분위기가 일순 숙연해지기도 했다.
국가 책임을 묻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향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홍희진 대표는 “앞으로도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할 수 있도록 계속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