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말로 다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 유가족과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고 있는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태원의 아비규환 상황을 쳐다만 보는 경찰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경찰을 강하게 질타하고 대대적인 혁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6일 동안 합동분향소에 조문하고 종교행사에 참여한 뒤 나온 이번 발언은 일종의 대국민 사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사과가 이태원 참사의 슬픔과 충격에 휩싸인 국민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참사가 일어난지 일주일도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로 ‘해석’되는 말을 한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참사의 책임이나 앞으로의 대책을 경찰에 맞추는 듯한 말도 매우 부적절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경찰도, 행정안전부도 모두 정부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경찰과 자신을 애써 구분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7일 회의에서 경찰을 질타하는 발언을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아직 문제의 본질이 뭔지 모르는 듯 하다. 이태원 참사의 일차적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찰이 제대로 대비하고 신속히 대응했으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일선의 담당자나 지휘계통에 있던 사람들의 일부가 사법적 책임을 진다고 해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경찰의 과오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 경찰의 잘못이 클수록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도 더 커진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격노’와 ‘질타’로 자신과 경찰이 무관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 뒤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국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경찰 등에 대한 심판자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조만간 있을 문책 인사도 단순히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로 봐선 안 된다. 대통령을 함부로 교체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대신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일 뿐이다.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의 무게가 이런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