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준일의 대전환의 경제학] 금융시장의 혼란과 중앙은행 그리고 국가의 역할

편집자주

‘김준일의 대전환의 경제학’을 새로 연재합니다. 국내경제는 물론 세계경제가 기존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작동원리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매월 김준일 목원대 금융경제학과 교수가 독자들에게 깊이있고 창의적인 경제 분석과 전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금융시장의 혼란과 경제의 연착륙

강원도의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충격이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금융시장을 악화시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보험회사들의 연이은 영구채상환 연기 또한 자본시장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믿음에 금이 가게 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혼란에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화를 위한 ‘50조원+α 유동성 지원 조치’를 추진하여 채권시장안정펀드를 통한 기업어음(CP) 및 여전채 매입, 중소형 증권사자금 공급, 증권업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프로그램 가동 등을 시작했다. 한국은행도 자금시장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약 43조원의 유동성 공급 효과를 내는 안정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출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를 포함하는 등의 내용이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경제는 그동안의 풍부한 유동성을 배경으로 코로나19,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다. 금융시장의 최근 어려움은 이 싸움을 배경으로 한다. 통화긴축과 기준금리 인상으로 그 괴물과 싸우려는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속도와 목표는 불과 수개월 전 예상보다 더 빨라지고 더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이 근본적으로 공급증가정책이 수반되지 않는 한 실패로 돌아가 고통스러운 경기침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수요측면에 대한 제한된 효과와 그 정책시차로 인해 완만한 경기위축과 인플레이션 진정이라는 경제의 연착륙보다는 급격한 경기하강과 실업률 증가라는 우려스러운 성적표를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에 그들은 그간의 재정긴축과 주택, 노동시장의 침체조짐을 들어 이미 미국경제가 경기침체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를 늦출 것을 주문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긴축적 통화정책의 성공여부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경기침체를 수반하지 않은 연착륙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뉴시스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의 역할 재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과연 경제에 좋은 영향을 주며 경기변동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한 회의적인 시각 또한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오히려 경기변동, 자산불평등, 불확실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긴축통화정책으로 기준금리를 상승시키며 서민의 고통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한쪽으로는 금융시장경색으로 다시 유동성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2009년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무장한 중앙은행은 특정 자산을 매입함으로 인해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으며 재정정책과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나아가 한쪽으로부터는 불평등과 기후변화에의 적극적인 대응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주체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이미 유럽 등 해외 중앙은행들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물가안정이라는 단일 목표를 갖는 기존의 통화정책에서 탈피하여 불평등, 기후 등 새롭게 떠오르는 과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장중립성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논쟁하고 있다.

당장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단기조치야 필요하겠지만 우리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용을 배분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기후, 에너지, 및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투자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정당성과 민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대전환에 대한 각국의 대응과 우리의 현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미국 내 급등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한 의료비 지원, 기후변화 대응,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국민들이 겪는 부정적 효과와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REPowerEU 계획은 에너지 공급망 다각화,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목표로 한 정책패키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에너지 전망 2022’ 보고서에서 전쟁으로 인해 단기적인 석탄수요증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국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촉진돼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2025년에 정점을 찍고 이후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전 세계는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생활안정과 에너지 대전환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얼마 전 예산안에 대한 대통령 시정연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적 약자 보호를 천명하고는 있지만 노동자, 서민에 대한 과감하고도 직접적인 정책은 찾아볼 수 없고 건전재정과 법인세 인하 등의 정책만이 두드러진다. 또한 환경단체들의 우려처럼 우리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정책은 새 정부 출범 이후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최근 사회보호지출(Social Protection Spending)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회보호지출이 과연 사치재인가 하는 논쟁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보고서에서 사회보호지출의 GDP대비 비율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사회보호지출을 GDP대비 15% 이상 지출하는 데 반해 아프리카 대륙 등의 개발도상국들은 3%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그래프에서 동떨어진 한국의 지출수준이다. GDP대비 사회보호지출의 한국의 비율은 경제 규모가 유사한 국가들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약 6%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인플레이션이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팬데믹 직전 시기 국가별 사회보호지출(GDP대비) : 종축은 사회보호지출의 GDP 대비 비율, 횡축은 1인당 GDP의 로그값. 음영부분은 95% 신뢰수준구간. 자세한 것은 Lokshin, M., M. Ravallion, and I. Torre(2022), Is Social Protection a Luxury Good?,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s: 10174, The World Bank, Figure 1 참조 ⓒ세계은행


불확실한 통화정책의 효과와 노동자, 서민을 위한 과감한 정책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긴축적 통화정책의 성공 여부는 비관적이고, 긴축의 시기를 놓친 중앙은행의 능력과 역할은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제 우리에게 급한 것은 무엇일까. 인플레이션과 이를 막기 위한 긴축정책이 촉발한 고금리는 노동자, 서민에게 모두 치명적인 것들이다. 비싸진 물건가격은 그들의 실질임금을 하락시키고 높아진 이자율은 대출금에 대한 이자부담을 가중시켜 소비여력을 더욱 위축시킨다. 긴축정책이 물가잡기에 실패하고 경제를 경착륙시킨다면 노동자, 서민에게 그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통화긴축과 고금리로 인플레이션을 잡아 노동자, 서민의 실질임금감소를 막으려는 정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 서민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비용 지출 등 생활비를 줄여주고 실질임금의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투입하는 수십 조만큼이나 이러한 정책도 시급하다. 더 이상 그 결과가 불확실한 기준금리 인상에만 의존하지 말고 당국은 노동자, 서민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연착륙’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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