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최대 비디오 게임 축제인 'PAX 2010'가 미국 시애틀 컨벤션센터에서 9월 3일(현지시각) 개막됐다. 마이크로소프트 'Xbox 키넥트'로 축구게임을 시연하는 모습. 키넥트는 모션 컨트롤러 없이 동작인식 게임을 즐길수 있도록 개발됐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비디오 게임은 1970년대에 등장해 1980년대부터 인기를 얻으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특히 21세기 들어 게임산업의 급속히 성장해 2016년에 영화와 음악 시장을 합한 규모보다 더 커졌다. 그러다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거대 개발사나 인디스튜디오 너나 할 것 없이 더 많은 회사들이 게임을 개발하는데 몰두했고, 어느새 대기업들이 게임 산업을 장악하게 됐다. 현대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이자 삶의 일부가 된 비디오게임의 자본주의적인 측면과 우파가 장악한 게임커뮤니티에서 싹트고 있는 좌파의 반격을 살펴본 트루스아웃의 기사를 소개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비디오 게임이 엔터테인먼트의 거물로 떠오르는 가운데 가장 큰 게임 퍼블리셔들이 갖가지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약탈적 수익 창출 전략의 확산, 열악한 근무 조건, 직장 내 조직적인 여성혐오, 독점 행위, 허위 광고, 미완성 게임의 출시 등이 그 일부다. 게임업계가 어느새 기업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최악의 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가 됐다. 또 미국에 거의 1억 8천만 명의 게임 유저가 있어 게임업계가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고 있다.
오랜 유저들은 게임 퍼블리셔가 지갑에서 더 많은 돈을 뺏아간다는 사실에만 화내는 게 아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에서 즐거움까지 빼앗아 가는 것에 점점 더 좌절하는 것이다. 게임업계에 대한 분노와 반발은 좌파에게는 유저들을 동원하고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까지 우파들이 거의 10년 간 게임 유저들에게 공들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수익 창출 전략의 시험장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 문제 하나는 소액결제의 확산이다. 넓게 보면 소액결제는 경쟁의 우위를 확보하거나 미적인 아이템을 추가하기 위해 게임 유저가 실제 돈을 디지털 상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게임 내 거래이다. 이 새로운 수익 창출 형태가 어느덧 670억 달러 규모에 이르게 돼 게임업계의 캐시카우가 됐다.
소액결제는 게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수십 년 동안 유저들은 게임을 구입할 때 돈을 한번 지불하고 더 이상의 지출 없이 맘껏 게임을 즐겼다. 지금은 게임사들이 같은 게임을 몇 년을 해도 유저에게 돈을 계속 쓰라고 부추긴다. 여기에 잘 넘어가는 것은 아이들이다. 2020년에 6살의 코네티컷주 아이가 부모님의 신용카드로 ‘소닉 헤지혹’에 1만 6천 달러를 쓴 일이 대표적인 예다.
‘아케이드에 간 마르크스: 콘솔, controllers, 그리고 계급투쟁’의 저자 제이미 우드콕은 “지금까지 비디오 게임업계는 새로운 수익 전략과 방법의 시험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문화가 어떻게 (종종 재미를 희생하면서) 수익성 있는 상품이 됐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소재”라고 했다.
‘전리품 상자(loot boxes)’라 불리기도 하는 무작위적인 보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소액결제는 카지노 스타일의 도박과 유사할 때가 많다. 이 시스템은 유저를 중독의 사이클에 심리적으로 빠뜨리기 위해 고안됐다. 예를 들어 ‘NBA 2K20’에는 슬롯머신이 등장해 소속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 게이머들에게 카드를 사게 한다. 이에 유튜브의 ‘앵그리 조 쇼’의 호스트인 조 바르가스가 게임사에게 ‘내 농구 게임에 카지노를 넣어서 도박을 미화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액티비젼 블리자드가 역대 최고의 소액결제 유도 게임인 ‘디아블로 이모탈’을 출시했다. 미국의 유명 비디오 게임 블로그인 코타쿠에 따르면 무료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기는 하지만 디아블로 이모탈에서 캐릭터를 최고 레벨로 만들기 위해서는 5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오프라인 상점에서 파는 실제 게임 카트리지와 디스크에서 다운로드 가능한 제품으로 게임의 형태가 급격히 바뀌면서 게임이나 영화를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해졌다. 전 세계 규제기관이 이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을 때까지 비디오 게임 업계는 최대의 수익을 낼 기회가 생겼다. 오늘도 게임업계는 반소비자적인 맹공격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극우 이데올로기와 게임 커뮤니티
좌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비자와 노동권 문제로 싸워왔다. 게임 커뮤니티의 격렬한 분노와 반발을 감안하건대 게임사들의 낯 두꺼운 행태는 좌파에게 대중동원의 기회를 준다.
게임업계는 기업의 탐욕이 어떻게 소비자인 우리의 권리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재미를 없애는지를 보여주는 유용한 사례가 됐다. 이것은 반동적인 이데올로그들과 우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얼마나 많은 게이머들을 표적으로 삼았는지를 고려하면 특히 중요하다. 우드콕은 “우익, 특히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꽤 오랫동안 게임을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서 조직화를 효과적으로 해왔지만, 좌파의 대다수는 이런 논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수년 동안 반동적인 우파는 게임커뮤니티에 어필하려고 노력해 왔고 걱정될 정도로 성공했다. ‘더 쿼터링’이나 ‘기크와 게이머’와 같은 유튜브 채널은 주로 게임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워우크네스(wokeness, 정치적으로올바른 것을 깨달아 이에 민감해지는 것)’를 비판하면서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들은 다양성을 강조한 등장인물 선정이나 여성주인공을 성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다며 불평한다.
이런 비판은 2014년 ‘게이머게이트’ 현상이 나타난 후에 흔해졌다. 이것은 페미니즘과 진보주의가 비디오 게임업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혐오 언론 매체와 온라인 트롤이 벌인 각종 온라인 괴롭힘 캠페인을 통틀어 일컫는 용어다. 어떤 여성들은 주소과 개인 정보가 온라인으로 유출되기도 했다.
게이머게이트가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게이머게이트가 훗날 트럼프 지지자가 될 사람들에게 경험적인 가르침을 준 분기점이라며, 이후 조직적인 온라인 괴롭힘과 이데올로기의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했다.
한 2021년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전쟁에서 게이머를 동원해 보수적인 가치를 위해 싸우게 한 것이 큰 인기를 얻었다”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게이머게이트의 선전 전략과 조직화 방식을 트럼프의 대선운동을 위한 굉장히 강력한 무기로 전환했고, 이를 통해 온라인 활동에 집중하는 매우 화난 젊은 남성으로 구성된 소규모 군대를 꾸려 아주 효과적인 정치 공작원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일부 좌파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워우크네스를 반대하는 세력의 부상을 원통해한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게임사들의 탐욕과 단기 수익 추구가 게임산업에 되돌릴 수 없는 해를 끼쳤다는 합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큰 파장을 일으키며 급격히 확산됐던 2020년의 한 좌파 유저의 게시글이 있다. “어떻게 게이머들을 우파에게 빼앗겼는지 생각하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유저들의 반란: 동원의 기회인가
공격적인 수익 창출로 게임 퍼블리셔가 큰 이익을 얻는 동안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반발이 엄청났다. 좌파만 탐욕스러운 퍼블리셔를 경멸한 게 아니다. 우파와 비정치적인 사람들조차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동적인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유튜버 카버나클이 영상에서 지적했듯 보수적인 게이머도 본인이 모를 뿐이지, 사실상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있었다.
우드콕은 게이머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수익 전략을 견뎌왔기 때문에 좌파가 이들의 정치적 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세계 곳곳에서 극우가 부상하고 있어 좌파에게도 사람들을 조직화하고 비디오 게임 공간이든 더 광범위한 공간에서든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미있는 비유에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 차세대 게임 콘솔을 엄청난 가격에 팔아 부자가 된 약탈적인 회사들은 미국 의료 시스템의 민간의료보험사와 매우 흡사하다. 그들은 소비자의 가격을 부풀리는 불필요한 기생 중간상일 뿐이다.
⋅ 비디오 게임 퍼블리셔가 아이들에게 도박 메커니즘 강요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은 20세기 후반에 청소년에게 니코틴을 퍼뜨린 담배 회사들의 전략을 떠오르게 한다.
⋅ 몰아치기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게임 개발자는 교체 가능한 부품 취급을 받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슬롯머신 시뮬레이션 게임을 어린이에게 적합하다고 평가한 전자소프트웨어 등급위원회(ESRB)의 느슨한 등급 시스템은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신용기관이 은행을 지원한 방식과 유사하다.
⋅ NFL 로고와 선수를 사용하기 위해 독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한 매던 축구 시리즈가 차지한 독점적 위치는 통신회사가 독점가격을 통해 얻는 이점과 유사하다.
⋅ 게임 퍼블리셔들이 계속 합병된 과정은 미국의 대중매체들의 통합 과정과 비슷하다
⋅ 전자소프트웨어협회(ESA)가 게임 산업을 방해하는 법의 입안을 막기 위해 의원들을 로비하는 것은 막강한 로비 파워를 휘두르는 산업들과 같다.
게임 유저들은 최근 몇 년 간 변화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수많은 사기 사건의 핵심이 된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 NFT)이 크게 증가했을 때 게임 유저들은 이를 주요 비디오 게임에 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항했고, 일렉트로닉 아츠(EA)가 스타워즈: 배틀프런트 2에 터무니 없는 새로운 소액결제를 도입했을 때 회사 주가가 30억 달러 떨어질 정도로 유저의 반발이 거셌다. 당시 EA는 변명성으로 미국의 SNS 사이트 레디트에 올린 게시물로 소비자가 가장 싫어하는 회사로 여러 곳에서 지정됐고, 위키피디아에 당시 유저들의 반발에 대한 페이지가 따로 있을 정도다.
소비자의 권리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훨씬 더 많은 발전이 있었다. 벨기에는 약탈적인 전리품 상자를 금지했고, 2022년 여름 노르웨이 소비자 위원회는 ‘게임 업계가 어떻게 전리품 상자를 이용해 소비자를 착취하는가’라는 중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게임업계가 취약한 고객층을 표적으로 삼고 중독을 조장하며 약탈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고객을 착취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18개국의 20여 개의 소비자 단체가 이 보고서를 지지했다.
게임 끝인가
게임 커뮤니티의 문화전쟁에서 우파가 이기고 있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게임 커뮤니티에 좌파 활동가와 조직가가 많이 있고 소비자 권리 단체, 미디어 개혁 단체,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5월 수개월 동안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요 게임 스튜디오 중 처음으로 액티비전에 게임 노동자 노조가 결성됐다. 이런 노동계의 승리가 이어지면 게임을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어떤 게임이 왜 개발되는지가 변하면서 비디오 게임업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미국 통신노동자 연합(CWA)과 미국의 대표적인 소비자 단체 퍼블릭 시티즌, 200만 여명의 활동가 조직인 디멘드 프로그레스 등은 연방거래위원회에 대형 게임사의 합병을 조사하고 소액결제에 사용되는 가상화폐를 규제해 달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게임을 하는 장애인들의 단체인 에이블 게이머스는 게임업계가 장애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는 데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고,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을 높이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카버나클이나 제임스 스테파니 스털링 같은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우파와 맞서면서 게임업계를 비판하고 여러 게임의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을 해설하고 유저의 접근성과 포괄성을 위해 싸워 왔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안팎에서 반자본주의적인 정서를 표출했다.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게임이 수없이 많다. 메탈기어 시리즈의 코지마 히데오가 대표적인 에다. 디스코 엘리시움를 만든 이들은 맑스주의자임을 공공연하게 말하며 한 시상식의 수상소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디스코 엘리시움을 이끌었던 세 사람이 강제 해고됐다는 소식이 얼마 전에 알려졌다. 회사는 현재 수익 전략가를 구하고 있다고 하니 2022년 게임업계의 현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드콕은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속편 제작에만 관심이 있지 이들의 해고에는 관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시상식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회사 파트너들과 잘 지낼 리 만무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