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KDB생명타워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중의소리
12일 서울역 인근에 분홍 물결이 파도쳤다. 전국에서 모인 급식 조리사와 돌봄전담사 등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이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KDB생명타워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2천여명의 조합원이 약 200미터의 대열을 이뤘다.
이들은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투쟁 승리하자’, ‘차별 없는 임금체계 투쟁으로 쟁취하자’,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투쟁으로 쟁취하자’ 등 구호를 외쳤다.
학비노조는 오는 25일 전체 조합원이 서울에 모이는 총파업 투쟁에 돌입한다. 앞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86.8%의 찬성을 기록하며 가결됐다.
이들은 학교비정규직 단일 임금체계를 요구한다. 현재 교육공무직 임금체계는 1유형(사서·영양사 등)과 2유형(급식 조리사 등)으로 나뉜다. 이같은 구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먹구구식 임금체계로, 근무 경력이 길어질수록 정규직 대비 임금 격차가 커지는 실정이다. 또한, 각 시도 교육청마다 직종 구분이 자의적으로 이뤄져,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 사이에서도 저마다 임금이 다르다.
지난 9월부터 여섯 번의 실무교섭과 두 번의 본교섭을 거쳤으나,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 등 사용자 측은 경력 인정과 단일 임금체계 도입 등 학비노조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미향 학비노조 위원장은 “최근 교섭 상황을 보면, 겉으로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합리적인 임금체계 도입 요구에는 실질 임금이 삭감된 안을 들고 나온다”고 지적했다.
12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KDB생명타워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중의소리
12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KDB생명타워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중의소리
12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KDB생명타워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중의소리
문제는 임금뿐만이 아니다. 학교 급식실은 산업재해 현장이 되고 있다. 지난 6년간 발생한 학교 급식 노동자 산재는 4천건이 넘는다. 박 위원장은 “밥 만드는 곳 아니라 산재 공장이 된 것이 우리네 급식실의 현주소”라며 “모든 산재 원인이 과도한 배치 기준일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물론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사과하는 교육감도 없다”고 지적했다.
적은 조리사에게 무리한 물량이 배정되는 상황이 산재 원인으로 꼽힌다. 공공기관은 조리사 1명당 식수가 65명 수준인데, 학교 급식실은 150명에 달한다. 설윤경 학비노조 광주지부 광산2지회장은 “광주지역 경우 학교 급식실 조리사 1명당 식수가 142명으로 조사됐다”며 “정해진 시간에 식수를 맞추려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고, 데이고, 베이는 일이 다반사라고 그는 전했다.
인력 충원이 요구된다. 과도한 작업량이 각종 산재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산재를 통해 드러났다.
학교 급식실 산재는 부상에 그치지 않는다. 학교 급식실에서 튀김, 볶음, 구이 요리를 할 때 나오는 발암물질 ‘조리흄’이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폐암 환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산재 인정을 받은 폐암 사망자도 5명에 이른다. 학비노조가 공개한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검진자 약 6천명 중 30%에 육박하는 1,634명이 이상 소견을 받았다. 10만명당 폐암 발생률은 446명으로 나왔다. 일반인의 74명보다 6배가량 높은 셈이다.
인력 부족은 폐암 위험성을 키운다. 조리사 1명당 조리하는 양이 많을수록 조리흄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환기 시설도 열악하다. 학비노조 광주지부 조합원 구모(48) 씨는 “광주지역 국립 학교 250여곳의 환기구 시설을 검사한 결과 전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교육 당국은 태평하다. 구 씨는 “교육청은 총예산의 2% 수준인 300억원을 투입해 6년에 걸쳐 환기구 시설을 개선하겠다고 한다”며 “그 기간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임채정 경남지부 창원지회장은 무대에 올라 폐암 사망 조합원에 대한 추모 편지를 낭독했다. 임 지회장은 “돌아가신 동지가 폐암에 걸렸을 때 산재 신청을 하자고 하니, ‘완치하면 복귀해야 하는데 눈치가 보인다’며 망설였다”며 “설득 끝에 지난 4월 산재 신청을 하고 치료를 중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는 “고인의 따님에게 다시는 조리사가 일 하다가 돌아가시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일하는 급식실이 온통 발암물질이라니, 결국 죽으러 들어가는 것이었다”며 “죽으려고 일하는 사람 어디 있나. 더이상 동료들이 안 죽었으면 좋겠다. 투쟁으로 안전한 일터를 쟁취하자”고 강조했다.
학비노조는 폐암 사망 동료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조합원이 바닥에 누워 고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투쟁 승리를 다짐했다.
최근 있었던 경찰의 과잉 진압도 학비노조 조합원의 분노를 샀다. 지난 10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에 면담을 요구하는 최진선 학비노조 경기지부장을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하고 뒷수갑을 채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여한 조합원 15여명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 인력은 기동대 70여명을 포함해 총 100명에 달했다.
이날 만난 최 경기지부장은 “경찰이 여성 조합원은 밀쳐 말렸을 뿐인데 경찰이 팔을 뒤로 꺾고 수갑을 채웠다”며 “명백한 폭력 진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무집행법도 어기고, 여성 조합원을 남성 경찰이 밀면서 성추행하고, 폭력을 행사한 데 대해 고발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돌봄전담사로 일하는 김남희 전남지부 부지부장은 “우리는 정당하게 면담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경기도에서 경찰이 강제 진압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오늘 집회에 더 많은 조합원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의대회 이후 전국노동자대회 본 집회가 열리는 숭례문으로 향했다.
12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KDB생명타워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