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CPTPP 바로보기⑤ 억지춘향식의 정부 경제성 검토 결과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어떻게 볼 것인가

편집자주

정부가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가입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CPTPP 국민검증단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나원준 경북대 교수가 CPTPP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글을 몇 차례 씁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주) 억지춘향 : 어떤 일을 순리에 맞지 않게 억지로 짜 맞추는 것

정부는 지난 3월 25일 CPTPP 가입신청 관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는 이해관계자와 관계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조약법 제7조에 따른 의무 절차다. 하지만 실제로는 결론이 애초부터 정해진 요식행위였다. 농어민들이 공청회 무효를 외치는 가운데 행사는 20분 만에 졸속으로 마무리됐다. 그날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PTPP 가입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역시 통상조약법 제9조에 따른 절차였다. 요지는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면 경제성장률이 0.33%~0.35%포인트 정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다만 어떤 근거로 그런 수치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공개된 내용이 없다.

한국농축산연합회와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등이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공청회가 열리는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CPTPP 가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22.03.25. ⓒ뉴시스

CGE 모형 결과? 결국 만들어진 결과라는 의미

성장률 0.33%~0.35%는 연산가능일반균형(CGE) 모형이라는 계산기의 산출물이라고 한다. 이 CGE 모형은 필자와 같은 거시경제이론 연구자라면 익숙할 동태확률일반균형(DSGE) 모형을 단순화한 것이다. 물론 이런 모형은 그 내부 구조 때문에 계산 결과를 직관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주의할 점은 CGE 모형에 ‘확정적 방법’(확률적 예측 대신에 미래가 특정 상태로 확정된다고 가정하는 방법)을 적용한 이와 같은 연구는, 모형에 가정된 구조가 어떤 것인지, 또 어떤 ‘독립변수’(미래에 특정 값을 갖는 것으로 가정되는 경제변수)들을 어떤 입력 값으로 가정하는지 하는 선택에 의해 최종적인 결과 값 자체가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모형에 포함된 독립변수들의 실제 미래 값을 누군들 알겠는가. 그렇다면 0.33%~0.35%라는 숫자는 결국 연구자가 자의적으로 입력 값을 선택한 데 따른 결과일 뿐이다. 말하자면 만들어진 결과라는 뜻이다.

독립변수와 관련된 이와 같은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최종 결과 값도 0.33%~0.35%가 아닌 다른 값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정의하고 각 시나리오에서 성장률이 얼마나 오르는지 일종의 확률분포가 제시되었어야 했다. 가능성이 높은 기본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독립변수 입력 값의 변화에 따른 민감도 분석도 수행되었어야 했다. 정부가 제대로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려면 분석 과정을 투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사안의 민감성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형식 요건을 채우기 위해 강행된 공청회에서 아무 근거 없는 결과 값만 툭 던지고 마는 식으로는 국민적 의혹이 해소될 리 없다.

0.33%~0.35%라는 수치 자체도 문제다. 기존의 어떤 FTA에서 성장 효과 예측 값으로 이렇게 미미한 성장률 숫자가 나온 적이 있는가. 더군다나 이것은 정부 정책을 지원할 목적으로 국책연구기관에서 제공한 수치가 아닌가. 겨우 이 정도의 성장률 제고 효과 때문에 농어민들이 입을 직접적이고 막대한 피해를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산 결과를 보면 경제성장에 미력이나마 도움은 되지 않겠냐고 억지를 부리려고 들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반론은 상식적이지도 않고 양심적이지도 않다. 확정적 방법을 적용했다고는 하나, 이 0.33%나 0.35%라는 추정 값은 그것이 참이 아닐 확률을 나타내는 오차를 고려하면서 평가해야 한다. 만약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오차가 충분히 크다면 0.33%(=0.0033)나 0.35%(=0.0035)는 통계적으로는 0과 유의하게 다르지 않은 값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효과로 마이너스 값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FTA가 초래하는 한국사회 재구조화 효과를 CGE 모형으로 따질 수는 없다

더욱이 미래 상태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정태적인 수량 모형을 가지고 FTA가 가져오는 사회 재구조화 효과까지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과연 우리 사회와 우리 민족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 맞긴 한가? 정책 당국이나 정치권에서는 그런 질문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 다시 CPTPP라는 역사상 개방 수준이 가장 높은 FTA에의 가입을 밀어붙이려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는 그간에 한미 FTA가 한국사회에 미친 구조적 영향에 대한 평가와도 연결된다. 2007년 한미 FTA 협상은 쟁점 88개 가운데 77개를 미국 제안대로 정했을 정도로 미국 입맛에 맞게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의도치 않았고 준비되지도 않았던 변화에 직면했다. 한미 FTA는 단지 품목별로 관세를 없애거나 낮추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시장 개방, 지적재산권을 비롯한 통상 규범의 도입, 외국인 투자 개방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대외 개방이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도 심대했다. 최근에도 론스타 문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투자자-국가 소송제 역시 한미 FTA의 유산이었다. 그렇게 한미 FTA는 한국 국가의 정책과 주권마저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제한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CPTPP 가입 철회를 촉구하는 한국농축산연합회와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등의 항의를 바라보고 있다. 2022.03.25. ⓒ뉴시스

한미 FTA의 거울에 비추어본 CPTPP

한미 FTA 이후 한국사회는 제국주의 자본과 재벌, 친미 관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되어 왔다. 한미 FTA로 대표되는 FTA 허브 전략은 경제성장의 특정한 양식을 한국사회에 강제했다. 재벌이 지휘하는 수출 주도 성장은 노동 유연화를 극단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수직적 공급체계 속에서 일자리의 다수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은 낮은 생산성의 저부가가치 영역에 고착되었다. 일자리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되면서 자립 경제를 위한 내수 기반의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농업과 농민은 큰 피해를 입고 버려졌다. 금융시장의 대외의존성이 심화되면서 국부 유출도 이어져 왔다. 민주당 계열 정부든 국민의힘(민자당) 계열 정부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일환인 FTA가 한국사회에 미친 이와 같은 영향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한미 FTA가 미국식 제도를 이식하면서 한국사회를 여러 측면에서 강제적으로 재구조화한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눈앞에 닥친 CPTPP 역시 그 협약 내용의 포괄성에 비추어볼 때 준비되지 않은 산업 전환을 한국사회에 강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도 CPTPP로 인해 영향을 입을 주요 산업 부문별로 산업정책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고 그와 같은 국가적 요구에 맞춰서 CPTPP에의 참여 여부 및 협상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타율적인 산업 전환을 수용하면서 피해는 민중이 보고 과실은 재벌이 거두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여태 한국경제가 불균형과 불평등이라는 공동체 붕괴의 내상을 입어온 현실을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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