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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싸우고 버티는 이들을 위한 진군나팔

밴드 잠비나이의 새 음반 [발현(發顯/apparition)]

밴드 잠비나이의 새 음반 '발현(發顯 apparition)' ⓒ포크라노스

잠비나이의 음악은 들으면 바로 안다. 세상에 이렇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팀이 없는 탓이다. 거문고, 드럼, 일렉트릭 기타, 피리, 해금 등의 악기가 어울려 한국적이면서 록킹한 사운드를 분출할 때면 번번이 특유의 어법이 돌출한다. 음악의 강도로는 수많은 포스트록/메탈코어 밴드들을 떠올리게 할 때가 있고, 음악의 색채로는 동양고주파 같은 팀을 연결하게 할 때도 있지만, 거문고로 거칠게 리프를 긁어대거나 음영과 고저가 굵직한 드라마를 구현해낼 때면 세상에 잠비나이 같은 음악은 잠비나이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지난 11월 11일 잠비나이가 발표한 새 EP [발현(發顯/apparition)]을 들으면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네 곡을 담은 이 음반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잠비나이의 음악어법만이 아닌 탓이다. ‘저기 저 차가운 밑바닥에서 다시’, ‘지워진 곳에서’, ‘두 날개가 잿빛으로 변할 때까지’, ‘이토록 거대한 어둠 속 작은 촛불’로 이어지는 네 곡의 제목은 어느 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JAMBINAI 잠비나이 - 이토록 거대한 어둠 속 작은 촛불 (candlelight in colossal darkness) (LIVE)

예술은 시대의 반영이며 증언일 뿐 아니라 시대를 선도하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고도화된 문화예술 상품시장은 예술의 비판정신과 아방가르드한 실험정신마저 괴물처럼 집어 삼켜버렸지만, 어떤 예술가는 끝내 생포당하지 않으며 본능처럼 틈새를 만들어 탈주하고 선동한다. 물론 예술은 작가의 것만이 아니라 향유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예술가가 어떤 의미로 작품을 완성했든 향유자에게는 다르게 해석할 자유가 있다.

 이번 음반의 제목을 읽으며 이것이 현실에 대한 절망과 희망의 사유라고 읽는 일은 이 같은 작품에 유독 반응하는 이들의 오해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네 곡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구조와 서사는 ‘이것은 잠비나이의 현실 인식이며, 발언’이라는 평가가 착각일 수 없게 한다.

밴드 잠비나이 ⓒ밴드 잠비나이 페이스북

촛불이 타오르고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감염병이라는 환란 속에서 헤매야 했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더 절망해야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절망과 생명을 바꾸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번 음반을 일부러 한 개인의 내적 고뇌와 성찰 같은 미시적 담론으로 축소 해석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예술가에게는 은유와 직유, 환유라는 무기가 있다. 한 개인의 삶에는 한 사회의 정치와 경제, 문화가 칭칭 동여매져 있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은유와 직유, 환유라는 도구로 그 맥락을 분석하는 일이고, 평가하는 일이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해답을 모색하는 일이다.

잠비나이가 이번 음반에 수록한 곡들을 들으며, 읽게 되는 것은 지금 수많은 인간의 고투이며 쟁투이다. 첫 곡을 시작하면서부터 몰아치는 잠비나이의 연주는 저기 저 차가운 밑바닥에 있는 누군가가 감당하는 고통의 현현이며, 그럼에도 다시 꿈꾸는 정신의 표현이라고 믿게 한다. “제발 손을 잡아줘 네 곁에 내가 있게 해줘 / 제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라는 노랫말은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이며, 연대를 갈망하는 몸부림이다. 잠비나이는 이 곡을 순식간에 끝내버리면서 단발마처럼 듣는 이의 뇌리에 박는다.

JAMBINAI 잠비나이 - 지워진 곳에서 feat. 선우정아 (from the place been erased feat.swja)

선우정아의 절창이 결합한 ‘지워진 곳에서’는 첫 번째 곡의 요청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이의 고백처럼 울려 퍼진다. 숱한 참사에서 살아남거나 참사를 목격한 이들의 죄책감을 대변하는 듯한 곡은 애절한 멜로디로 심금을 울린다. 자신의 가슴을 내려치듯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쏟아지고 해금이 애간장을 녹일 때, 노래는 상처 입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위로하는 노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펼쳐지는 ‘두 날개가 잿빛으로 변할 때까지’는 잠비나이의 유려한 서정성을 확인하게 하는 방식으로 “위대한 실패 또는 미완의 성공에 대한 헌사를” 표현한다. 곡의 서사를 쌓아가고 변형하고 폭발시키는 순간순간은 시종일관 내밀하다. 무언가를 향해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나아가는 이의 숭고한 삶을 옮겨놓은 듯한 곡은 노래가 없는 음악으로도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며 마침표를 찍는다.

폐허에서 울리는 진혼곡처럼 시작해 잠비나이다운 드라마를 펼치는 마지막 곡은 제목처럼 이 거대한 어둠 속 어딘가에 작은 촛불이 있다고 외친다. 그 촛불이 있는 한 우리는 지지 않는다고, 그 촛불을 지키자고, 함께 촛불이 되자고 부르짖듯 잠비나이의 연주가 앞의 연주를 딛고 뒤의 연주를 배가시키며 밀려온다. 그 때, 이 곡은 해일 같고 태풍 같다.

음악으로 뜨거워지고 묵직해지는 경험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잠비나이의 음악을 들으면 투지가 생기고, 물러서지 않고 싶어진다. 차가운 밑바닥에 대해, 지워진 곳에 대해, 두 날개가 잿빛으로 바뀌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 거대한 어둠 속 작은 촛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곳을 바라봐야겠다고, 그 곳으로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겠다고, 끝내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게 된다.

잠비나이의 새 음반은 지금 싸우고 버티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진군나팔이며, 그 때 내가 곁에 있겠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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