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세계 인구 80억 명 돌파, 과연 인구절벽은 인류에게 재앙인가?

“인구 감소가 대한민국과 인류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매우 자주 듣는 이야기다.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으면 2018년 9월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 대신 출산주도성장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소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지난주(15일) 유엔 인구국(UNPD)의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가 마침내 80억 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1974년 40억이었던 인구가 약 50년 만에 갑절로 늘어난 셈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정표가 세워졌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인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유엔에 따르면 인구 증가 속도가 다소 둔화되긴 하겠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15년 뒤인 2037년 90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단다. 2060년이 되면 마침내 100억 명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과연 전 세계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는 한 걸까? 이것이 첫 번째 궁금증이다.

두 번째 궁금증은 이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반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가장 잘 살았던 전성기가 있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10%에 육박했던 초호황 시기가 그때다.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때였다.

헌데 그 시절 우리의 인구는 4,200만~4,400만 명 수준이었다. 그 인구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5,4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과연 지금의 인구 감소 추세가 그토록 걱정할만한 일일까?

자본은 늘 과잉인구를 원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자본은 역사적으로 늘 많은 인구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자본은 덩치를 불리는 것을 숙명으로 여긴다. 유식한 말로 하면 ‘자본은 축적을 본성으로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본이 축적을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은 노동자들을 최대한 싼 임금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이 낮아도 좋으니 제발 일자리를 주세요”라고 간청하는 가난한 실업자들이 득실대는 것이 자본 입장에서 무조건 유리하다. 마르크스는 이를 산업예비군(reserve army of labour)이라고 불렀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이 비약적으로 축적을 시작할 시기에 늘 이런 인구 과잉 현상이 있었다. 영국이 주도한 산업혁명은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기도 했지만, 풍부한 도시 인구 덕분이기도 했다.

19세기 영국의 산업 혁명 때 부족한 공장 일손을 메워 준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온 이유는 18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제2차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 때문이었다.

모직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영국 정부는 멀쩡한 농토를 양을 기르는 목초지로 둔갑시킨 뒤 울타리를 쳐서 농민들을 도시로 몰아냈다.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런던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지식도, 기술도 없었기 때문에 요즘 돈으로 일당 1000원 정도를 받으면서도 일자리가 생기면 몸을 바쳐 노동을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도시에 널려 있으니 자본가들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돈만 지불하고 마음껏 부려 먹었다. 풍부한 인구는 곧 풍부한 노동력 공급으로 이어지고, 이는 노동자들의 경쟁을 촉발해 더 낮은 임금을 형성케 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 1970년대 이농현상을 기억해보라. 박정희 정권의 살인적인 저곡가 정책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농민들이 이 시기 대거 도시로 이주했다.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은 ‘풍부한 노동력 시장’을 형성했고, 자본은 이들에게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제공하며 착취를 일삼았다. 축적의 본성을 가진 자본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더 많은 인구를 원했던 것이다.
2월 23일 통계청의 '2021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는 5만7300명 자연감소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2만4700명 늘어난 수준이다. 사망자 수는 31만7800명으로 2020년과 비교해 1만2800명(4.2%) 증가했다. 2022.02.23 ⓒ뉴시스

사실 자본주의 세력들이 인구절벽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생산과 소비 두 영역에서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공장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 걱정되고, 생산된 물건을 사줄 소비자가 줄어 경제가 제대로 돌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생기는 문제는 인공지능(AI)이 다 해결해주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 일자리가 부족해 수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AI가 활성화되면 일자리 부족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내가 무식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자리가 부족하다면서 인구는 더 늘어야 한다는 이 모순적 주장이 너무나 쉽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자본가 계급이 두려워하는 것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아니라 소비의 감소일 것이다. 자기들이 기계를 열심히 돌려 물건을 만들었는데, 그걸 비싼 값에 사 줄 소비자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인구절벽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경제학자 해리 덴트조차 자신의 저서에서 계속해서 걱정한 것은 노동력의 감소가 아니라 소비의 감소였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이기적이어도 너무 이기적이다.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의 진보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게 왜 걱정인가? 그건 너무 쉬운 문제다. 기술이 발달해 사회적 풍요가 늘어나면, 그걸 그냥 잘 나누기만 하면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는 것이 케인스의 견해였다.

생각해보자. 기술의 진보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걱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 소비가 감소하는 게 걱정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기술 진보로 획득한 사회적 부(富)를 사회 구성원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자본가 계급이 인구절벽을 고민하는 이유는 사회적 부를 골고루 나눌 의지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술의 진보로 얻는 부를 모조리 자기들의 수중에 넣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부를 전부 자기 호주머니에 몰아넣으면, 자본가가 생산하는 물건은 누가 사 줄 것인가? 온 국민이 일자리를 잃어 거지꼴이 될 텐데! 자본은 지금 인구절벽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올바른 분배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인구절벽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세계 인구가 줄고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한국에서 인구 감소는 고령화된 숙련 노동자들의 노동 시장 참여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믿는다. 심지어 분배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노동 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적정한 인구는 오히려 과도한 경쟁을 멈춰 우리 민중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