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가진 자, 지배자, 식민 강국의 시선에서 벗어난 ‘더 넓은 세계사’

책 '더 넓은 세계사' ⓒ삼인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과 문화가 있다. 이렇게 편하고 쉽게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렇게 다양한 나라와 민족과 문화가 있음은 올림픽 개막식이나 되어야 아주 조금 느껴질 뿐, 실제로 우리가 아는 세계는 그렇게 넓지 못하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이 우리가 주로 배워온 세계의 전부였다. 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은 잘 알지 못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국민의힘 경선 후보 시절 한 발언은 이런 우리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9월 13일 경북 안동시 국립안동대학교에서 가진 학생들과 간담회에서 그는 “기업이라는 게 국제 경쟁력이 있는 기술로 먹고 산다. 그야말로 고도의 기술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과학기술로 먹고 사는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며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육체노동과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비하한 표현이었고, 큰 논란이 일었다.

세계를 무대로 외교를 해야 하는 대통령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어떻게 이런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걸까? 우리가 배워온, 윤 대통령이 배워온 세계사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출간된 책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사회와 역사 교과서가 너무 서구 편파적이고, 종족 차별적이고, 오류와 편견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출간 15년이 지나 당시 필진에 새로운 필진이 일부 교체 보강돼 그때의 고민을 더욱 발전시킨 ‘더 넓은 세계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기존 교과서가 우리에게 가르친 세계관은 서로 맞물린 두 개의 동심원과 같다고 지적한다. 마치 지구가 평평하기라도 한 듯이 서구와 동북아시아가 양쪽 중심에 있고, 다른 지역들은 중심을 둘러싼 가장자리 어딘가에 놓여 있다가, 중심축의 이야기에 필요할 때만 조연처럼 단역처럼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두 중심축에서 뻗어나간 동심원이 아니다. 세계는 겹겹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대 유럽 문명은 이집트·서아시아와 인적·물적으로 교류하면서 탄생했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유사 이래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관계였으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도로 스며드는 사이 인도는 동서 양편에 풍요를 선사했다.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한편, 삼각무역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중국, 유럽을 연결했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동서 양편의 문물을 양쪽으로 전달하며 동북아시아와 유럽의 문화 발전을 자극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사례들만 살펴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가 얼마나 협소한지 알 수 있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어디에 세워졌을까? 우리가 배운 세계사에선 ‘세계 최초의 대학’은 11세기 초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과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대학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하했던 아프리카에 있었다. 서기 970년경 알아즈하르 대학이 이집트의 카이로에 들어선 것이 대학의 시초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첨단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유럽은 아랍으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단단하고 잘 닳지 않아 오늘날 각종 공구와 철로의 소재로 쓰이는 고탄소강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서기전 6세기의 남인도인들이었다.

또 0을 수로 처음 인식한 것은 서기 7세기 무렵의 인도인들이라고 알려졌다. 이들의 수 체계와 계산법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10진법 인도-아라비아 수 체계가 형성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인들도 외부 세계와 교류 없이 스스로 0 개념을 도입하고 20진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현대 서구와 동북아시아의 문명과 풍요는 이들 지역과 사람들을 통과하면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과 사람들은 그저 문명의 통로나 성장의 발판으로 이용되고 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계 속 주인공으로 역사를 만들어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이들의 존재가 누락된 세계사는 불완전하고 불균형하다.

마치 로마제국과 중국을 괴롭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한 기마 유목 민족의 터전 중앙아시아, 고대부터 동서 교류의 중심에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야 세계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동남아시아, 근현대의 역동성은 무시되고 과거의 찬란한 문명만 박제되어 있는 듯 오해받는 인도, 인류 문명의 시원이자 고대 철학과 과학의 계승자였으나 오늘날 가장 심한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된 서아시아, 인류사 희비극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 단 한 번도 잠자고 있지 않았으나 그늘 속 엑스트라 취급을 받기 일쑤였던 아프리카. 이 책은 ‘가진 자, 지배자, 식민 강국’의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절절히 만들어갔던 주인공들의 자리에서 세계사를 우리에게 가르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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