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사무실에서 열린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1.22. ⓒ뉴시스
학교 급식실과 돌봄교실 등에서 근무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는 25일 하루 총파업에 나선다. 전국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는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평일 학기 중에 총파업을 하는 만큼, 학교 현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 급식실과 돌봄교실이 모두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부담을 무릅쓰고 일터를 떠나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교육당국의 무책임 탓이다. 학교 급실실에서 산재가 잇따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과 복지 격차가 여전히 큼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이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과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모인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는 그동안 교육부, 17개 시도교육청과 이런 요구안을 놓고 집단교섭을 하고 실무협의를 이어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또한 연대회의는 기자회견, 집회, 시위로 호소하고 교육청 면담도 수없이 반복했지만 제대로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총파업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폐암으로 죽고 싶지 않다” 급식실 노동자의 호소
이번 총파업에 가장 많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폐암으로 죽고 싶지 않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급식실 노동자다. 지난해 2월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뒤, 현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학교 일부 급식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폐암 건강검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최근 10명 중 3명이 폐 CT 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받았다는 중간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교급식 노동자 대상 폐 CT 검진 결과 현재 검사자 5천956명 중 1천748명이 ‘이상 소견’이었다. 폐암 의심(4단계)는 61명이었고, 그 가운데 ‘폐암 매우 의심’ 수준도 19명이었다.
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은 22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가진 기지간담회에서 “전체 검사자의 1.02%가 ‘폐암 의심’ 단계”라며 “이를 전체 급식실 종사자 7만명 대비하면 700명의 폐암 의심자 생기고 이중 절반 정도가 폐암으로 발전하면 300~400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폐암 환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급식실 노동자들이 폐암에 걸릴 위기에 처한 건 환기 시설이 없는 조리실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발암물질에 노출된 탓으로 보인다. 학교 급식실에서 튀김, 볶음, 구이 요리를 할 때 발생하는 조리흄은 세계보건기구 WT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연구결과로 밝혀진 발암물질이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일반인보다 유병률이 훨씬 높아진다.
인력 부족으로 학교 급식실의 노동강도가 다른 공공기관 급실실의 노동강도보다 높은 점도 유병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힌다. 인력이 부족하면 조리사 1명이 담당해야 할 급식인원이 많아지고, 그만큼 조리흄에 노출되는 빈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평균은 64명인데, 학교 급식실 평균은 2~3배인 146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연대회의가 공개한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업무상 질병 역할조사 회신서’에 따르면 폐암이 발병한 A 학교의 조리사는 튀김요리를 1년에 1만6천800인분, 하루에 평균 46인분이나 만든 것으로 집계됐다. 12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면서 장기간 조리흄에 노출돼 폐암이 발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연대회의는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에 종합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우리의 절박한 구조 신고에 어느 누구도 출동하지 않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법이 보장하는 마지막 수단인 집단적 작업중지권, 파업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며 “병들고 죽어가는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듯이 지속가능한 급식을 위해서는 노동자도 아이들도 건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급식t실 조합원들이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에서 학교급식실 폐암 산재 대책 마련과 인력충원 예산, 복리후생비 차별해소 예산 편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마치고 나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1.08 ⓒ민중의소리
임금도 복리후생도 비정규직 차별
고질적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문제도 이번 총파업의 주요 원인이다. 현재 교육공무직으로 불리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9급 공무원 1호봉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근속이 오래될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이에 연대회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평가에 근거해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연대회의는 올해 17개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한 집단임금교섭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9급 공무원 1호봉의 80%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는데, 돌아온 답은 ‘수용 불가’였다.
연대회의는 한 발 물러서 임금 인상 계획인 ‘로드맵’에 대한 교섭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협의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한 임금 문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자는 것에는 왜 답이 없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사항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복리후생 동일 적용에 대해선 왜 제대로 된 안을 내놓지 않나. 근속이 길어질수록 심각한 임금 차별이 안 보이나. 물가폭등에도 1%대 임금인상안을 내놓은 것은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교육당국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교섭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총파업과 연말연시 총력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할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교육복지 근간 흔드는 지방교육재정 축소 철회 요구
이 밖에도 연대회의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지방교육재정) 축소에 단호히 반대했다.
지방교육재정은 내국세 세입액의 일부와 교육세 세입 중 일부를 초·중등 교육에 쓰도록 시도교육청에 매년 배분하는 제도다. 정부는 학급수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지방교육재정이 남으니 이 중 교육세 세입액 만큼을 대학에 투입해 교육재정의 균형을 꾀하자는 취지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연대회의는 이를 “개악”이라고 비판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윤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지방교육재정을 줄이면 예산 축소와 구조조정은 교육복지와 비정규직 영역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본부장은 “지방교육재정은 단지 교육시설을 유지보수하는 비용, 학급 수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 성장의 토대이고 모든 교직원들 삶의 토대이다. 지방교육재정을 통해 교육복지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총체적 비전도, 종합적 체계도 없이 파편적인 일개 사업으로만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사무실에서 열린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 기자간담회에 앞서 파업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2022.11.22. ⓒ뉴시스
총파업 규모 “8만 명 넘을 것”
총파업 참여 규모는 전국에서 8만 명이 넘을 것으로 연대회의는 예상했다. 연대회의가 쟁위행위(총파업)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무려 86.8%가 압도적으로 찬성한 데 따른 전망이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이번 찬반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 수가 9만3천여 명”이라며 “파업에 찬성 의사를 밝힌 조합원만 8만 명이 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전체 교육공무직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그런 만큼 이들이 실제 파업을 하다면 학교 현장에 상당한 파급력이 예상된다. 각 교육청은 대체 급식, 단축 수업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정확한 파업 참가 수는 당일에야 집계가 가능할 것”이라며 “지금도 파업에 참가하겠다는 조합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총파업 당일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 중 약 5만 명이 상경투쟁을 벌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연대회의는 3대 요구안에 대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화답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총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현재 연대회의 대표단은 총파업에 앞서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들과 따로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집단임금교섭이 파행된 이후 총파업으로 가지 않기 위한 교육감 면담을 연대회의 대표자들이 진행 중이다. 현재 절반 정도 만났다”며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17개 시도교육청이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이 모두 합의해야 한다. 그래서 교섭이 더 어렵다. 일부 교육감이 반대하면 노사 간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며 공동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