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최윤미 분회장이 일본 덴소의 자회사 ‘한국와이퍼’ 기획청산 규탄 단식농성 15일째인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21 ⓒ민중의소리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기업인 일본 덴소(DENSO)가 ‘먹튀(먹고 튀다)’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에 만든 자회사엔 고의적으로 적자만 남기고 이익은 본사로 몰아준 뒤에 자회사를 돌연 폐업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덴소의 한국 자회사, 한국와이퍼의 이야기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덴소 자본이 100% 출자한 회사로, 생산품인 와이퍼를 덴소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를 통해 현대자동차 등에 납품하는 2차 부품사다.
일방적인 폐업 통보에 300명 가까이 되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내년 1월 1일이 되면 모두 길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이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18년째 한국와이퍼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윤미(44)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장은 국회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 농성을 보름 넘게 이어가고 있다.
불과 9개월 전에 ‘고용보장’ 합의해놓고 회사 폐업 통보
한국와이퍼는 지난 7월 주주총회에서 회사 청산을 결정했다. 한국와이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겐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영문 모를 ‘전원 해고’가 눈앞에 들이닥친 것이다. 21일 오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난 최 분회장은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금 분노를 표했다.
그를 더욱 화가 나게 하는 건, 불과 9개월 전에 이룬 노사간 ‘고용 보장’ 합의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와이퍼 노사는 ‘2021년 고용안정 협약서’를 체결했다. 핵심 내용은 “회사는 와이퍼 이외의 아이템 중 일부를 가져와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내년(2022년) 매출액을 320억원으로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선정했고, ‘그 진척상황을 매월 고용안정협의회에 보고한다’는 내용도 분명히 명시했다.
특히 청산 또는 구조조정 시 노조와 사전합의를 해야 하고, 이 협약을 어기면 1인당 1억 원씩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담겼다. 이는 통상적으로 사용자 측이 선호하지 않는 엄격한 수준의 합의였다. 최 분회장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일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 협약서에는 한국와이퍼 노사 각 대표의 도장뿐만 아니라 ‘연대보증’으로 한국와이퍼의 원청이라고 볼 수 있는 덴소의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 대표이사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이는 원·하청이 모두 합의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분명한 근거다. 그런데 이 무거운 합의서가 너무나 가볍게 무시됐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입장에선 별안간 회사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최 분회장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적으로 할지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윤미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와이퍼 지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왼쪽 뒤는 정주력 한국와이퍼 대표. 2022.10.24.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앞에선 노조에 고용보장 약속하고 뒤에선 회사 청산 기획한 일본 기업의 ‘기만’
2021년에 고용보장 협약을 이룬 배경에는 ‘고용불안’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회사 내부 사정은 누가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앞서 2018년 노조가 설립된 것도, 노조 조직률이 상당히 높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최 분회장은 “2018년부터 신차 수주가 안 되고 있었다. 회사 물량이 줄어들고 재무구조가 굉장히 나빠지고 있다고 느꼈다”며 “고용안정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노조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 분회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한국와이퍼 근무자는 총 265명가량이고, 이중 노조 조합원은 230명 정도 된다. 최 분회장은 “2018년 노조 설립 때 생산직은 100% 가입했고, 2년 뒤부턴 사무직도 가입하기 시작해 지금은 차장급까지 가입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노조는 이후 고용보장 협약을 맺기까지 노사교섭을 요구하고 파업도 하면서 줄기차게 투쟁을 벌였다. 최 분회장은 “특히 2020년도는 저희가 고통 분담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단체연차 사용이라든지, 야간조 축소라든지, 3D 업종을 내재화해서 거기에 배치된다든지, 매일같이 공정이 바뀐다든지, 이런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며 “고용보장을 위해 우리 걸 내놓아서라도 회사를 지키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2021년 노사가 고용보장 협약을 맺는 데 이른 것이다. 최 분회장은 그 순간 기뻐하던 조합원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저희 회사가 2018년도부터는 계속 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신입을 뽑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40~50대 가장이 많다. 다들 여기가 마지막 일터라고 생각하며 굉장히 헌신적으로 일했다”며 “그래서 고용보장 합의를 했을 땐 다들 정말로 기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사가 이렇게 기만할 줄은 몰랐다”며 “고용보장 협약을 맺으면서 ‘덴소로부터 약속을 받았으니 회사는 유지되겠구나’ 하는 기대를 했는데,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던 것”이라고 성토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최윤미 분회장이 일본 덴소의 자회사 ‘한국와이퍼’ 기획청산 규탄 단식농성 15일째인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21 ⓒ민중의소리
‘먹튀’를 위한 의도적인 적자 의심 고의 부도, 기획 청산 정황 수두룩
회사는 적자가 심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회사의 ‘고의 부도’, 즉 ‘기획 청산’을 의심하고 있다. 회사가 애초에 고용보장 협약을 지킬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될 정황도 상당히 많다.
노조가 한국와이퍼의 재무 구조를 분석했더니, 지난해 한국와이퍼 매출의 약 85%는 덴소 자회사인 덴소코리아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한국와이퍼가 와이퍼를 만들어 덴소코리아에 납품하면, 덴소코리아는 현대차에 납품하는 구조다. 그런데 2012년을 기점으로 최근 10년 동안 매해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누적된 적자가 4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알고보니 한국와이퍼가 제품을 원가보다 싼 가격에 덴소코리아에 팔고 있었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최 분회장은 “우리는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인 제품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탄식했다. 반면 일본 덴소 본사는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를 통해 10년 동안 4천400억원의 돈을 쓸어 담은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덴소 본사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한국와이퍼에 고의적으로 적자를 만들고 폐업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다.
‘기획 청산’을 의심할 만한 내부기밀문건도 잇따라 폭로됐다. 지난 9월 MBC가 공개한 2020년 2월 일본어로 작성된 내부기밀문건에는 분기마다 한국와이퍼의 판매량과 직원 수를 줄이고, 2024년 12월 청산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장기적으로 현대차에 납품할 대체생산 계획까지 세웠다. 이런 폐업 시나리오를 놓고 한국와이퍼와 덴소코리아 임원이 현대차 담당자와 대책회의도 했다. 또 다른 내부극비문건에는 계획대로 회사 청산에 성공하면 42개월치 급여에 특별위로금과 성공보수까지 더해 한국와이퍼 사장에게 4억2천800만원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결국 덴소의 주도 하에 회사는 뒤에선 청산 계획을 세우고 앞에선 노조와 고용보장 협약을 맺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회사 청산이 실제 진행되고 있다. 대체생산도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체생산이 추정되는 곳 중 하나는 ‘ㄷ’ 회사이다. 최 분회장은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같은 제품 생산에 필요한 도료 사용량이 지난 5월부터 2~3배 급속하게 늘어났다”며 “우리 물량이 50%가량 없어졌는데 여기서 늘어나고 있더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노조는 ‘ㄷ’ 회사를 덴소코리아의 와이퍼 사업부 매각처로 추정하고 있다. 최 분회장은 “덴소코리아는 와이퍼 사업부를 매각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다. 그런데 그중 일부분인 한국와이퍼라는 회사만 청산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우리가 ‘매각처가 한국와이퍼는 안 사겠다고 했느냐’고 공문을 통해 묻자, 덴소코리아의 답은 ‘매각에 대해선 어떤 정보도 얘기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만약 한국와이퍼도 같이 매각된다면, 노동자들도 고용승계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대량해고 사태는 빚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2021년에 노사가 맺은 고용보장 협약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덴소코리아는 ‘매각이 아니라 청산’이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다. 최 분회장은 결국 노조를 깨기 위한 청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각처로 추정되는 ‘ㄷ’ 회사를 알아보니, 그 회사 사장이 ‘무노조 철학’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가지고 있었다”며 “(한국와이퍼를 매각하지 않고 청산하는 건) 분명히 노조혐오다. 노조청산, 인적청산을 목적으로 한 불법 매각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덴소 공장의 전경. 자료사진. ⓒ뉴시스
노동부, 덴소코리아 빼고 한국와이퍼만 ‘반쪽짜기’ 특별근로감독 “결국 사회적 지지 호소 위해 단식할 수밖에”
노조는 회사 청산의 절차를 중단시키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근거는 한국와이퍼 노사가 합의하고 덴소코리아가 연대보증을 한 고용보장 협약 중 ‘청산 또는 구조조정 시 노조와 사전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노조는 당연히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원이 실제 그래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노조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의 한계 때문이다.
최 분회장은 “고용 보장이라는 합의서가 우리한테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선 무기가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노조법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노조법상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덴소코리아가 한국와이퍼 청산을 주도하더라도 노사간 협약을 이행할 책임을 법적으로 묻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동계에선 원청도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나왔다.
최 분회장은 “이미 덴소는 합의를 해줘도 나중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합의를 해줬던 것 같다”며 “그런 한국사회 구조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 분회장은 ▲일본 덴소 자본의 위장 청산 철회 ▲현대차-덴소 간의 불법 대체생산 중단 ▲덴소코리아 특별근로감독 실시 ▲노조해산 대량해고 전제한 ‘ㄷ’ 회사의 불법매각 중단을 이루기 전까지 단식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 분회장은 이중에서 덴소코리아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최소 요구로 꼽았다. 이를 통해 ‘기획 청산’의 근원인 덴소코리아의 와이퍼 사업부 매각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 분회장은 “덴소코리아 특별근로감독 실시가 결정적으로 단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며 “국회 국정감사 결과로 한국와이퍼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가 결정됐는데, ‘반쪽짜리 특별근로감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럴 경우 막대한 이득을 얻은 일본 덴소 본사는 오히려 면죄부를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와이퍼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까지 실시하는데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왜 단식까지 하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덴소코리아를 비롯한 덴소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국와이퍼 대량해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고용노동부나 노조법이 이를 해결해주지 못 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관심과 지지로 이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문제가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외국 기업의 ‘먹튀’ 사태는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최 분회장은 “지금도 제조업, 금용업 등에서 외국투자자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글로벌 생산체계를 이용하고 우리나라 노조법을 유린하는 방식으로 ‘먹튀’를 쉽게 하고 있다”며 “이 문제는 모두가 다같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도 제기할 예정이다.
지난 7일부터 최 분회장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하는 동안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국와이퍼 공장은 파업으로 인해 라인이 거의 멈춘 상태다. 또 이규선 금속노조 경기지부장도 최 분회장과 함께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최 분회장은 “너무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선 죽음이 가벼워졌다. 연일 중대재해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압사를 당해 수백 명이 죽어나가고, 이런 사태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목숨을 건 단식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어떤 생명의 죽음들에 대해서 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저희의 단식을 230명의 목숨이 걸린 투쟁으로 바라보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것이 결국 민중의 삶을 바꿔놓는 투쟁이 될 것”이라며 “그래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이규선 경기지부장과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최윤미 분회장이 일본 덴소의 자회사 ‘한국와이퍼’ 기획청산 규탄 국회 앞 단식농성 15일째인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21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