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 경기 침체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낮춰잡았다. 종전 예상치 2.2%보다 0.4%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3%에서 1.8%로 하향한 지 10여일 만에 OECD도 같은 수준으로 하향했다. 이외에도 산업연구원(KIET)(1.9%), 한국금융연구원(1.7%), 하나금융경영연구소(1.8%), 한국경제연구원(1.9%), 신용평가사 피치(1.9%), 대신증권(1.6%) 등이 1%대 성장을 점치고 있다. 한국 잠재성장률이 2%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 둔화 국면이 분명하고, 둔화를 넘어 침체의 파고는 예상보다 클 수 있다.
연구기관의 시각은 엇비슷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세계 경제를 덮치면서 민간 소비·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이것이 한국 내수·수출을 옥죌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물가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OECD는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9%로 제시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를 급속도로 밀어 올리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본 것이다. OECD 전망은 IMF(3.8%), 한국은행(3.7%), KDI(3.2%) 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준이지만, 바꿔 말하면 대부분 기관이 고물가가 내년에도 이어지리라 전망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서비스 물가가 오르고 있고, 올해와 내년, 전기·가스·수도·교통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를 전망이라 내년에도 물가 상승세가 빨리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OECD는 2024년이 되어서야 물가상승률이 안정 목표치(2.3%)에 도달할 것으로 봤다.
최근 1,300원대로 다소 하락하며 안정세를 찾고 있는 듯 보이지만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부담이다. 올해 초만 해도 1,200원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환율 여파는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환율 완충 역할을 했던 기업들이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가격 전가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큰 부담이다.
수출과 내수에서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IMF 전망에 따르면 내년 세계 경제 성장세는 2.7%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7월 전망치보다 0.2%p 낮아진 것이다. 피에르 올리비에 고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세게 최대 3개 경제, 미국, 중국, 유로존이 계속 정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많은 이가 2023년을 침체처럼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IMF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생계비 위기, 중국 경제 둔화가 세계 경제 전망을 좌우하는 3대 충격 요소로 봤다.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과제다.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국에는 벌써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달 수출은 254억8천만 달러로 지난해 동월 대비 5.7%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전세계 교역이 둔화하면 한국 수출은 직격탄을 맞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역시 “당분간 증가세 반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 가계·기업부채 리스크가 가시화하고 있다. 당장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조짐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내수·투자 침체에도 이견은 없어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민간부채 상환 부담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의 이자 부담액은 내년 말까지 33조6천억원 늘어난다. 기업대출의 경우 16조2천억원 늘어난다. 이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부담하지 못하는 한계기업 부담 증가액은 4조7천억원, 취약한 재무구조를 가진 법인 자영업자 이자 부담액 증가액 5조2천억원에 달한다. 가계대출은 17조4천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구당 132만 꼴이고, 최근 ‘영끌’을 통해 집을 구매한 청년층 부담은 곱절로 커진다. 고금리에 따라 부동산 매매·전세 기피 현상이 발생하면서 월세를 밀어 올리는 것도 가처분소득 축소를 부추긴다. OECD는 “부채 상환 부담으로 집값 조정 가속화, 기업 부실 확대 등이 소비·투자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터널 초입이다. 본격적인 어둠은 오지 않았다. 경기 침체는 고용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멤버인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준 총재는 “연착륙으로 가는 길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연준에서 지난 40년 동안 긴축하면서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을 본 적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아마도 고용 둔화에 도달하기 위해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최근 세계경제 전망치를 하향하면서 “저물가, 저이자율 시대가 다시 오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