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1.23. ⓒ뉴시스
삼성생명법의 국회 논의가 시작됐다. 첫 법안 발의 이후 8년 만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계열사 지배를 뒷받침하는 기형적인 현행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삼성생명 보험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총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쓰는 행태를 끊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사가 특정 계열사 지분을 과도하게 보유해 부실 위험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설명이 따른다.
박용진·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생명법 토론회’를 열었다. 두 의원은 지난 2020년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삼성생명법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 2014년이다. 현행 보험업법의 기형적인 조항이 삼성생명만을 위한 특혜라는 의미에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당시 발의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 3% 이내로만 보유할 수 있다. 문제는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기준이다. 현재는 취득원가로 평가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8.51%를 사들인 1980년 당시 취득원가는 약 5,444억원이다. 삼성생명의 자산 3%인 9조원에 못 미친다.
삼성생명법은 주식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도록 규정한다. 시가 기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30조원이 넘는다. 법안이 통과되면 20조원 이상의 지분을 팔아야 하는 셈이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삼성 측은 강하게 반발해왔고,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전날, 진전이 이뤄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삼성생명법이 상정됐다. 첫 법안 발의 이후 8년 만에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용우 의원은 이날 토론회 개회사에서 “법안 통과 시 삼성의 경영권과 자본시장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추후 여러 효과를 같이 논의하기로 여야가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정무위 법안1소위 위원장인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법안의 합리성·필요성·실효성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이견 없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법안이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는 법안소위 토론으로 끝내기 어려우니 논의의 장을 열어 공론을 형성해보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고 이건희 회장이 기업을 키우면서 만든 여러 특혜·탈법·반칙의 마지막 유물을 걷어내고 이재용 회장이 새로운 시대로 나갈 수 있게 시민사회와 국회가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삼성도 법안을 막기 위해 전방위 로비만 할 게 아니라, 영향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9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09.02. ⓒ뉴시스
금산분리 원칙 위배에도 버티는 삼성…“갈 때까지 간 듯” 비판
발제를 맡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가 이 회장의 핵심 계열사 지배 수단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팔면, 삼성전자에 대한 이 회장 지배력이 떨어지는 구조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입 자금은 상당 부분 유배당 계약자가 낸 보험료다. 이 돈은 향후 초과수익 발생 시 계약자에게 다시 배당금으로 지급해야 할 부채다. 전 교수는 “남의 돈으로 계열사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비정상적인 잔재”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전 교수는 개정안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삼성 측을 비롯해 재계와 보수진영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논리는 ‘강제 매각’이다. 법 개정으로 보유 주식 매각을 강제하는 건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전 교수는 “개정안은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는 게 아니라, 현행법상 계열사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자산운용 원칙 규제의 유효성을 보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대량으로 시장에 풀리면 주가 하락으로 개인투자자 피해가 예상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소설”이라고 일갈했다. 이 회장 등 총수일가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다.
보험사의 지분 취득에 제한을 둔 건 계열사 부실에 따른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같은 이유로 보험사뿐 아니라 금융사와 은행도 비금융회사(산업자본) 지분 매입이 제한된다. 일명 금산분리·은산분리다. 금융자본은 금융 소비자의 돈이다. 투자자가 낸 투자금, 소비자가 맡긴 예·적금, 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다. 금융자본이 무너지면 소비자 피해가 막대하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이 어려워진다. 보험사도 연쇄 파산에 따른 피해에서 예외가 아니지만, 보유 지분 가치를 취득원가 기준으로 평가하는 왜곡된 구조에서 금산분리 적용을 빗겨나 있는 실정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험사가 특정 계열사 주식을 과도하게 보유하면 파산 위험이 커진다”며 “보험업법에는 가입자 보호를 위한 여러 규정이 있는데, 이른바 3%룰도 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연합(EU) 보험연금감독청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사 지급 불능 주요 원인 12가지 중 1·2번째가 계열사 관련 내용”이라며 “특히 한국은 재벌체제 때문에 계열사 문제 심각해, 계열사 위험 전이로부터 보험사 파산 위험을, 궁극적으로는 가입자 보호를 위해 3%룰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 측은 일단 버티고 보겠다는 태도다. 삼성생명은 최근 민간기구인 한국회계기준원에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내년 도입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해당 지분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해도 되는지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지분을 ‘영구 보유’해 유배당 가입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영구 보유 의사결정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종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변호사)은 “경영진과 이사회가 특정 자산을 영원히 소유하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법률적으로 이사회 의결 사안은 자산 취득과 처분 여부이지, 먼 미래 시점의 자산 처분 여부에 대해서는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고 짚었다. 이어 “경영진과 이사회는 임기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향후 임원에 대한 권한 박탈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보험업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삼성생명은 의무적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함에도 영구히 처분하지 않겠다고 밝힌 건 사회적 논의나 국회를 중심으로 한 입법 논의를 무시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변호사)도 “초기 삼성 측 논리는 삼성전자 지분 보유가 자산운용 차원이라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지배구조 목적이라고 한다”며 “지분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지 못하면 유동성에 도움이 안 된다. 삼성 측이 이제는 갈 때까지 간 거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