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 시민넷은 23일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단체 동향을 분석한 경찰청의 내부 대외비 문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생명안전 시민넷 박래군 공동대표는 진정서에서 “이 문건이 작성된 10월 31일은 참사 발생 이틀 뒤로 참사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이며, 이러한 시기에 참사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경찰청이 시민단체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정부의 대응 방향을 제시한 것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해당 문건은 지난 1일 SBS가 입수해 공개한 경찰청의 ‘정책 참고자료’ 문건이다. 이 문건은 참사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맨 앞장에는 “특별 취급”이라는 문구와 함께 “대외 공개, 수신처에서 타기관으로의 재전파, 복사 등을 할 수 없다”며 철저한 보완 유지를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문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부담이 되는 요인과 이에 따른 적절한 정부 대응에 대한 제언이다. 뒤이어 시민단체, 언론, 온라인 여론을 파악한 내용이 나온다. 특히 진보성향 시민단체의 경우 내부 분위기 등 세세한 동향이 기술됐다. 경찰은 “진보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사고 당시 정부의 대응 미비점을 상기시키거나 지난 정부의 핼러윈 대비 조치와 올해를 비교하는 카페글·카톡 지라시 등을 공유하며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최근 매주 주말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여는 촛불전환행동의 동향부터, 민주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민중행동 등의 단체들이 각각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는 내부 기조도 파악했다.
생명안전 시민넷도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경찰은 “세월호 집회를 주도했던 인권 활동가가 다수 참여한 ‘생명안전 시민넷’은 정부의 인도적 사고 수습을 촉구하는 성명을 통해 세월호 당시 문제 된 유가족과의 정보공유 부재, 2차 피해를 양산하는 가짜뉴스 등에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는 향후 피해자 가족 측 입장을 대변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내용도 문건에 적혀 있다.
전국민중행동·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노동·시민단체 참석자들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경질 촉구 여론동향 문건에 대한 입장 표명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사찰을 규탄하고 있는 모습. ⓒ민중의소리
이에 대해 생명안전 시민넷은 “생명안전 시민넷이 공개적으로 발표한 성명 내용 정도를 요약한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사찰(방법은 모름)을 통해서 생명안전 시민넷 내부의 동향을 파악한 것처럼 기술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문건에는 본 단체뿐 아니라 주로 진보단체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종합하고 있으며, 불특정 관계자의 말 등을 인용하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며 “이는 경찰청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 이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던 불법사찰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문건이 작성된 경위와 함께,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밝혀서 경찰이 불법적인 사찰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진정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생명안전 시민넷은 “과거 세월호 참사의 경우 등에서 보면 경찰만이 아니라 국정원, 국군방첩사령부(전 기무사) 등 정보기관들도 경찰청과 같은 불법사찰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이에 대해서도 조사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생명안전 시민넷은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 역시 우려하며, ‘정부 당국이 다시는 시민들과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은 절대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