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두가 평등한 세상 꿈꾼 조선 청년 김대건의 도전, 영화 ‘탄생’

영화 ‘탄생’ 스틸컷 ⓒ민영화사

한국 사람이라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로 역사책에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생을 살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탄생’을 보면서 몰랐던 그의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됐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조선의 청년 사상가였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길 두려워하지 않던 조선의 청년 모험가였으며 조선의 근대를 몸소 열어간 청년 선각자였던 김대건 신부의 참모습 말이다.

지난 23일 영화 ‘탄생’ 시사회를 앞두고 솔직히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151분)이 신경 쓰였다.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는 이야기에 머리에 떠올린 건 성스러운 ‘종교영화’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자칫 지루할까 걱정이 들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종교영화이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개척하는 영화였고, 철저한 시대적 고증이 바탕이 된 역사 영화이자, 도전과 성장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 탄생 메인 예고편

이번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김대건 신부가 ‘청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1821년 태어나 열다섯 살에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세계를 누비며 공부했고, 조선을 모든 이가 평등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꿈꾸다 스물다섯 청년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세상은 그를 ‘조선 최초의 신부’로 기억하지만, 사실 김대건 신부가 ‘신부’ 이름으로 살아간 세월은 약 13개월에 불과했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듬해 조선에서 체포돼 효수형을 당했다. 짧은 생을 살다간 김대건 신부가 감옥에 갇혀있던 몇 개월을 빼면, 신부 자격으로 사목을 한 시간은 10개월이 채 안 된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외국어를 익혀 통역가로 활동하고, 영국제 세계지도를 번역하며 세계지리 개략을 편술하는가 하면 신문물을 능숙하게 받아들였다. 조선 선교를 위해 파도가 몰아치는 해상과 바위산, 눈밭을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을 목숨 걸고 나선 개척자였다. 영화는 이런 김대건의 삶과 도전을 잘 담아냈다.

또 이 영화는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사실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해 많은 국가에 천주교는 서양의 제국주의의 경로를 따라 총과 칼을 앞세워 들어온 정복자의 종교였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해 학문으로 들어왔다. 서양의 천주교처럼 제국주의의 경로를 따라 조선에 ‘이식’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구질서를 해체된 양반·천민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발적으로 만든 교회에서 ‘탄생’한 것이다. 조선의 신자들은 그 터전에 서양 신부를 모시려 애썼고, 나중엔 스스로 신부가 되기 위해 애써 조선의 마음으로 조선의 천주교를 탄생시킨 것이다.

영화 ‘탄생’ 스틸컷 ⓒ민영화사

김대건 신부도 조선의 마음으로 조선의 천주교를 꿈꿨다. 그랬기에 서양의 군함을 타고, 그들의 힘을 빌어 천주교 신부가 또는 자신이 조선에 들어와선 안 된다고 여겼다. 목숨을 걸고 설산을 걸어서 넘으며 조선에 들어왔던 것도, ‘라파엘호’라는 쪽배를 타고 서해를 건넌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군에 잡혀 있는 동안 영국제 세계지도를 번역했던 것도 ‘조선의 천주교’를 꿈꾼 그였기에 가능했다.

영화는 이런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들은 양반과 천민의 차별 없이 서로 동지가 되고, 형제가 되고, 가족이 되며 어울렸다. 위아래 없이 평등한 천주의 세상을 꿈꾼 조선의 신자들은 조선을 그런 세상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기쁘게 서로를 보듬었다. 영화 속 서양인 신부는 이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삶을 마치 “초대교회 공동체 같았다”며 극찬한다.

영화 ‘탄생’ 스틸컷 ⓒ민영화사

영화 속 김대건 신부의 모습은 마치 ‘조선의 예수’ 같았다. 그의 선교를 도운 여인이 그에게 세례를 받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킨 ‘막달레나’라는 세례명을 얻는다. 예수가 로마군인에게 체포돼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모습은 김대건 신부가 조선 군인들에게 체포되고, 수난을 겪으며 효수당하는 모습과 겹친다. 삶을 끝내며 김대건 신부가 남긴 말은, 예수의 죽음이 그러했듯 김대건 신부의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부활’이자 ‘탄생’이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한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보람이 없고 살아도 쓸 데가 없습니다. 천주께서 곧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끊임없이 보내주실 것이니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천주를 섬기다가 영원한 천주 대전에서 만나 길이길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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