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름다운 무대로 화려한 귀환 알린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투 나이트 투 나이트’

뮤지컬의 ‘ㅁ’자도 몰랐던 초등학생 시절, 이 노래는 뜻도 출처도 몰랐지만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저 의미 없는 소리의 덩어리인 영어였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고전적인 선율로 기억에 남았다. 이 노래의 출처가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란 것은 한참 시간이 흘러서였다. 하지만 그 감동만은 시간의 흐름 속에 박제되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이 초연된 것은 1957년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가문 간의 갈등을 맨해튼 서부 외곽 지역의 인종 갈등과 갱단 간의 대립으로 대체하였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을,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컴퍼니’ 등을 만든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를 맡았다. 연출은 안무가인 제롬 로빈스가 담당했다. 당대 최고의 천재 창작진들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도 기념비적이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더 역사적이다.

여기에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백 년 전 작품도 현대에 다시 무대에 오르고 관객을 감동시키는데, 1957년의 작품은 고전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필자의 관심은 이 아름다운 작품 못지않게 관객들의 반응에 있었다. 1997년 국내에서 초연했고 2007년 세 번째 무대 이후 1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에,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우아하고 절제된 영원한 명장면의 탄생

뉴욕 맨하튼의 슬럼가를 옮겨 놓은 압도적인 규모의 무대는 뉴욕의 거리를 스케치한 영상이 덧대어지면 영화 속 한 장면이 돼버린다. 높은 하늘에서 뉴욕 시내를 활강하는 영상이 슬럼가 무대 위로 빠르게 이동하면 어두운 뒷골목이 되었다가, 마리아와 토니의 사랑의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뉴욕시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이기도 했던 안무·연출 담당 제롬 로빈스는 발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절제된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첫 장면에서 펼쳐지는 젊은 갱단의 군무는 아름답고 감각적이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1950년대 미국은 1940년대부터 미국에 이민 온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 제2의 할렘을 형성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였다. 애초에 미국은 서유럽 이주민들이 개척해 세워진 나라다. 이어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온 동유럽 이주민들이 사회 하층민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 다시 푸에르토리코 이주민들이 들어오게 되자, 동유럽 이주민들과 사회 경제적인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 라인을 가져왔지만 정확하게 보면 당시 미국 사회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진화한 셈이다. 작품 속 실제 배경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슬럼가, 어퍼 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이다. 폴란드계 백인 갱단 '제트파', 푸에르토리코계 갱단 '샤크파' 이 두 십 대 갱단은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케케묵은 가문의 갈등이 사회 갈등으로

제트파에 속해있었지만 갱스터 활동을 그만두고 평범히 살고 있던 토니는 친구인 제트파 리더 리프의 부탁으로 댄스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토니는 댄스파티에서 샤크파 리더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두 사람이 이때 몰래 만나 부르는 노래가 바로 'Tonight'이다.

댄스파티 이후 리프와 베르나르도는 서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울 것을 결정한다. 토니는 그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서 싸움을 말리려 하지만, 싸움 도중 베르나르도가 리프를 죽이게 된다. 이것을 지켜보던 토니는 친구인 죽음에 분노하여 엉겁결에 베르나르도를 찔러 죽이고 도망치게 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아는 절망하지만 토니와 마리아는 함께 싸움이 없는 곳으로 떠나자고 약속한다. 물론 두 사람은 싸움이 없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

전쟁과 폭력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규

“나도 이제 총을 쏠 수 있어. 여기에 몇 개의 총알이 남아 있지?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마리아는 치노의 총을 뺏어 들고 외친다. 전쟁으로는 폭력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규이기도 하다. 사회 속에 만연한 갈등과 혐오는 서로를 향한 것이다. 그 상대자는 사회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피해자인데 서로를 향해 혐오를 쏟아내며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트파나 샤크파 모두 이주민이며 경제적 약자들이며 불평등의 피해자들이듯 말이다.

제트파와 샤크파의 싸움은 무고한 이들의 죽음으로 끝난다. 승자도 패자도 없고 이익을 본 사람은 더더군다나 없다. 이 작품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러하다. 토니의 죽음으로 청춘들의 꿈과 희망, 사랑 모두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 비참하고 허망한 결말이 어두운 무대 속으로 사라지자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실은 괜찮을까? 현실은 무대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일까?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난 뒤라 더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2022년 화려한 국내 귀환을 알렸다. 토니 역에 김준수, 박강현, 고은성이, 마리아 역에 한재아, 이지수가, 리프 역에 정택운, 배나라가, 아니타 역에 김소향, 정유지가, 베르나르도 역에 김찬호, 임정모 등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다. 내년 2월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날짜 : 2022년 11월 17일(목) ~ 2023년 2월 26일(일)
공연장소 :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공연시간 : 평일 19시 30분/토 14시, 19시/일 14시, 18시 30분/월 공연없음
러닝타임 : 160분 (인터미션 20분 포함)
관람연령 : 만 13세 이상 관람가
극작 아서 로렌츠/작곡 레너드 번스타인/작사 스티븐 손드하임/안무·협력연출 훌리오 몽헤
국내 창작진 : 연출 김동연/음악감독 김문정/무대디자인 오필영/조명디자인 이우형/의상디자인 안현주/분장디자인 김숙희/음향디자인 강국현/소품디자인 정이든/번역 김수빈/협력안무 이지은/무술감독 서정주/기술감독 김동혁/무대감독 박지영
출연지 : 김준수, 박강현, 고은성, 한재아, 이지수, 정택운, 배나라, 김소향, 정유지, 김찬호, 임정모, 이종문, 최명경, 이현철 외
티켓 예매 : 충무아트센터, 인터파크, 멜론티켓, 쇼노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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