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CPTPP 바로보기⑦ CPTPP는 일본 우익에 굴종하는 길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어떻게 볼 것인가 (끝)

편집자주

정부가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가입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CPTPP 국민검증단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나원준 경북대 교수가 CPTPP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글을 몇 차례 씁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CPTPP는 단순히 품목별 관세를 폐지하는 여느 FTA와는 다르다. 협정문에는 상품무역, 원산지, 위생검역(SPS), 기술무역장벽(TBT), 서비스, 투자, 전자상거래, 국영기업, 지재권, 노동,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다자규범이 제시되어 있다. 이들 다자규범은 가장 높은 수준의 새로운 통상 규범이다. CPTPP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향후 국제통상 질서의 방향성이 제시된 것인 양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정부도 마치 CPTPP에 가입하지 않으면 새로운 통상 질서 형성 과정에서 소외되고 통상 규범상의 변화에 뒤처지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통상 규범의 국내 제도화가 꼭 CPTPP 가입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약 CPTPP에 반영된 새 통상 규범들이 한국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사회적 합의를 기초로 얼마든지 선별해서 필요한 제도를 갖춰갈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규범의 도입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영향은 제대로 따지지 않고 그것이 외국 것이라면 관성적으로 수용해온 태도부터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통상 규범은 그 영향을 따져서 선택적으로 수용해야

예를 들어 CPTPP 협정문 제17장은 회원국 국영기업에 의한 경쟁제한 행위를 규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영기업에 대한 회원국 정부의 지원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이 국영기업 관련 규정은 한국 공공부문의 경제활동에 있어 제한 요소로 작동할 소지가 없지 않다. 이를테면 정부가 공공기관의 손실을 보전하거나 채무를 보증할 수 있다고 한 특별법 규정들이 CPTPP 협정과 저촉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공공부문 민영화를 밀어붙이려는 윤석열 정권에 빌미를 주게 될 수 있다.

더욱이 CPTPP도 한미 FTA처럼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 관련 조항을 두고 투자자의 이익을 회원국 주권보다도 앞서서 보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주권국가의 환경, 보건, 안전 등에 대한 규제가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경우 당장 국가 정책이 제약된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지난 2016년 1월 10일 가디언지 칼럼에서 TPP를 가장 나쁜 무역 협정이라고 비판했던 배경이다. 새로운 국제통상 규범이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22.11.13. ⓒ뉴시스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 해결을
한국 CPTPP 가입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할 것


한국과 같은 후발 가입 희망국으로서는 CPTPP가 양자 간 협정이 아니라 다자 간 협정이라는 사실도 가입협상의 여건에 있어 불리하다. 기존 회원국 간 합의 결과로 협정문에 포함된 규범 전체를 100% 수용하고 국내 제도를 이에 일치시키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때문이다. 양자 간 협상에서는 협정 문안의 조율 가능한 폭이 상대적으로 넓지만 이미 체결된 다자 간 협정의 경우에는 신규 가입국이 기존 문안의 수정을 주장할 수 없다.

2019년 1월 공개된 신규 가입 절차 및 조건을 보면 CPTPP는 후발 가입 희망국의 가입 신청에 대해 원 회원국들 간에 만장일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 회원국 가운데 반대하는 나라가 없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결국 현실적으로 한국은 일본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입이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는 한일 양국 간 외교적 갈등 현안이 이슈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19년 3월 22일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이미 한국의 CPTPP 가입을 막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상태다. 한국이 CPTPP 가입을 신청하면 일본은 이미 공개적으로 밝힌 것처럼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배상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제한 문제 등 숱한 현안들을 제기하고 나설 공산이 크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수산물의 수입금지 조치를 철폐할 것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급기야 2023년 4월부터는 오염수의 해상 방류를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CPTPP 가입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최근까지 11년간 유지해온 5개 현 식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조건부 수입 허용으로 완화해야 했다. 올해 2월 12일 아사히신문 보도에서는, 대만의 수입 재개 배경에는 CPTPP 가입에 대해 일본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 이는 CPTPP 가입에 의욕을 보이는 한국과의 협의를 유리하게 이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대만에 비하면 한국은 일본과의 현안 이슈에서 긴장의 강도가 훨씬 더 높다.

한국 정부의 일본 우익에 대한 굴종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가입 조건과 관련해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덮고 강제징용 배상을 철회할 것을 요구할 경우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고 오염수 방류를 수용하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일본에 어떻게 답할 셈인가. 가입 신청을 굳이 해야겠다면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협의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견지할 것이고 어느 선까지 양보를 할 의사가 있는지 먼저 국민들한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밀실 야합으로 일본 우익세력의 비정상적 요구에 응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CPTPP는 결국 한일 FTA다. 과거 한때 시도했다가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2004년에 협상이 중단된 바 있는 한일 FTA를 다시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한일 FTA 추진이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당시 논란이 되었던 지점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일본과의 역사적, 외교적 갈등을 덮어둔 채로, 산업별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은 채로, 무턱대고 가입부터 서둘 일은 아니다.

한편 혹자는 경제안보를 위해서는, 즉 유사시 공급망 회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CPTPP 가입이 유리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테면 만약 한국이 CPTPP에 가입해 있었다면 지난 정부 기간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소재, 부품, 장비 수출 제한이 없었겠는가. 아니다. 있었을 것이다. CPTPP 가입 여부는 그런 문제와 막상 관계가 없다. 일본과 한국처럼 외교 현안으로 인한 분쟁 소지가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 역내 공급망 복원력이 클 것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농민의 길, 농민단체 농민들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농어업홀대 윤석열 정부 규탄, 농어민생존권 쟁취, CPTPP가입 저지 7.12범국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07.12. ⓒ민중의소리


중국의 CPTPP 가입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한국 정부의 책임 회피일 뿐

이제 이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끝으로 중국이 향후 CPTPP에 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짚어보고 CPTPP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중국은 현재 기존 회원국 가운데 일본이나 호주 등과 외교적 갈등이 있다. 중국의 CPTPP 가입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봉쇄선이 일부 허물어지는 셈이기도 하다. 중국의 가입은 그만큼 낙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CPTPP 개별 회원국한테 중국은 교역 비중이 (어쩌면 가장) 큰 중요한 무역 상대국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중국이 각개격파 전략으로 나오면 가입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도 중국이 가입하는 시나리오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현재 CPTPP 가입의 경제성을 검토한다면서도 중국 가입의 영향만큼은 논외로 배제하려고 한다. 중국이 참여하는 경우 한국 농업과 어업이 입을 피해가 커지는 탓이다.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이다.

CPTPP는 역내 통상 질서의 지속가능한 틀이 될 수 없다

만약 중국이 CPTPP 가입에 실패한다면 그 배경에는 역시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일이다. 그런데 그 경우 CPTPP는 체제 유지의 구심력보다는 해체의 원심력이 커지기 쉽다. 현재의 중미 갈등 세계경제 구도 속에서 미국도 중국도 가입하지 않는 메가 FTA가 과연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를테면 미국이 끝내 복귀하지 않고 과거 TPP를 해체시켰던 것처럼 새로운 역내 통상 질서를 제안한다면 CPTPP는 어떻게 될까? 그런 점에서 CPTPP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얼마든지 해체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잠정적인 틀 이상의 의미가 없다.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한국한테도 CPTPP가 통상 질서의 중심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과도기적 역사가 남긴 한때의 유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일본 우익에 굴종하면서까지 CPTPP에 목을 맬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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