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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을들의 경쟁이 아닌 을들의 연대를 위하여

지금 들으면 “에이, 설마요”라며 아무도 안 믿을만한 이야기인데, 1995년에는 ‘운동권 특채’라는 것이 있었다. 돌 던지고 화염병 던진 사람들을 대기업이 특별히 채용해 준 것이다.

김우중 회장이 이끌던 대우그룹은 1995년 운동권 특채를 진행했다. 당시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은 전국의 운동권(말만 이렇게 하고 90% 이상 서울대 출신 운동권들을 뽑는 꼼수를 썼지만) 약 100명에게 특채 방식으로 일자리를 제공했다.

게다가 김우중은 이들의 운동 경력을 직장 경력으로 인정해 경력 사원으로까지 채용했다. 그러니까 화염병 열심히 던지고 감옥에 갔던 기간까지 전부 사회 경력으로 인정받았던 셈이다.

이렇게 대우그룹에 스카우트된 전직 운동권들의 변절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들은 입사 직후 전 세계를 도는 연수에 참여했고(이것도 어마어마한 특혜였다) 이후 기꺼이 김우중의 친위대가 됐다.

대우그룹이 망한 뒤에도 이들은 김우중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굳은 일(응?)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의 변절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는데, 이 칼럼에서는 요즘 말로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기술을 쓰겠다. 이 글의 주제가 ‘변절한 운동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하나다. 만약 이 일이 요즘 벌어졌다면 사회 분위기가 어땠을까? “그래, 운동권들이 독재정부 시절 몸 바쳐 투쟁했으니 그 정도 혜택은 줘야지”라고 사회가 용인했을까?

천만의 말씀, “화염병 던진 게 훈장이냐?”라는 반발이 극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 특채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염병은 독재정권과 싸우기 위해 던진 것이지 김우중한테 아부하기 위해 던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반발이 단 1도 없었다. 반발은커녕 언론에서 이 일을 칭송해주느라 바빴다.

풍요가 낳은 관용

왜 그랬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1995년 당시 한국 사회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1987년에서 1996년까지 10년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기였다.

국제적으로는 이른바 3저 현상이 한국 경제를 도왔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빈부격차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노조조직률이 20%까지 치솟으면서 노동자들의 안정적 소득이 내수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이 1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무려 8.3%에 이르렀다.

일자리는 매년 약 50만 개가 늘어났고 고용률도 역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 시기 취직이 안 돼서 고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자리가 없기는커녕, 대부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골라서 선택했다. 오죽 일자리가 남아돌았으면 김우중이 운동권들만 100명이나 특채를 했겠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 중에 지니계수라는 게 있다. 이 지표는 1990년대 초반 역사상 최저점을 찍었다. 국가의 부(富)가 노동자에게 얼마의 비중으로 돌아가느냐를 따졌던 노동소득분배율도 역사상 이때가 제일 높았다. 이 시기가 역사상 가장 평등했던 때라는 이야기다.

생명을 상징하는 촛불 ⓒpixabay

나만의 해석이긴 해도 김우중과 대우의 운동권 특채가 사회적으로 별 비난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이 시기 누구나 다 먹고 살만 했고 누구나 다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운동권 특채를 실시했던 1995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무려 9.6%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급속도로 신자유주의화됐고, 소득격차는 점점 심해졌다. 2008년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이명박이 집권하며 각종 부자 감세와 재벌 지원 정책을 펼치자 사회적 불평등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졌다.

지금 민중들은 풍요롭지 않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혜택을 보는 것 같으면 그것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당연한 심리다. 왜냐하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나는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싸우는 슬픈 이유

자본이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민중들이 먹고 살기 힘든 사회일수록, 사회적 약자들은 자기들끼리 치고받는다. 일자리가 줄어드니 민중들은 누군가에게 군 가산점을 줘야 하네 말아야 하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로 싸운다. 이 싸움에서 진정으로 미소를 짓는 자들이 누구일 것 같은가?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백인 여성인 셰릴 홉우드는 미국 텍사스 대학교 로스쿨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그의 학점은 평균 3.8이었고 입학시험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텍사스 대학교의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실제 텍사스 대학교는 홉우드보다 성적이 낮은 아프리카계와 멕시코계 지원자를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따라 합격시켰다.

샌델은 “이것이 공정한가? 공정하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묘하고도 어려운 딜레마다. 홉우드는 백인이긴 해도 홀어머니 밑에서 매우 가난하게 자랐다. 게다가 그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이었다.

홉우드의 탈락이 정당하냐, 부당하냐를 다루려는 게 아니다. 홉우드의 억울한 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수백 년 동안 불평등에 고초를 겪었던 아프리카계와 멕시코계 민중들에게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는 소수인종 우대정책도 당연히 일리가 있다. 이 질문은 너무나 심오해서 아직도 숱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게 있다. 이 사건이 빈부격차의 끝판왕격인 미국이 아니라 보다 평등한 사회, 민중들이 보다 넉넉한 사회, 누구나 어떤 직업을 가져도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 사회에서 벌어졌다면 사회적 파장이 훨씬 덜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민중들은 열 명인데 살 길은 하나뿐인 사회에서 이 갈등은 어떤 방식으로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반면 민중들이 열 명인데 살 길이 열 개 이상인 사회의 구성원들은 소수와 약자를 우대하는 정책에 훨씬 호의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연대감도 더 충만해진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 중 많은 것들이 ‘을’들끼리 치고받는 것이다. 이것을 탓할 생각도, 자격도, 능력도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손을 잡고 근본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에 더 열정적으로 맞서야 한다. 열 명 앞에 놓인 한 자리를 두고 그게 내 거네, 네 거네 갈등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대책일 수 없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을들의 연대가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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