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지학의 세상다양] 파업을 불법이라 부르는 이들

자본가에 감정이입을 하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수많은 사회문제들을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철저한 개인주의 관점을 심어주고 있다. 때문에, 노동조합이 파업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비판이 사용자(자본가)가 아닌 파업을 하는 노동자를 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가 되지만,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훈련된 사회에서 이재용은 걱정하지만 삼성 하청노동자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도 이를 이용하여 ‘불법파업으로 인해 (사업, 수출, 배송 등이) 지연되고 있다’며, 파업에 대한 모든 책임을 파업에 나선 노동자 탓으로 돌린다. 자본, 정치, 언론의 이런 말하기 방식으로 인해 파업의 이유가 되는 기업의 책임은 쉽게 지워진다.

‘불법파업’은 파업 자체가 불법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불법파업은 ‘현행법상 정당성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파업’으로, 정당성 요건에는 △주체 △목적 △절차 △방법 4가지가 있는데 ▲쟁의 주체가 노동조합이어야 하고 ▲쟁의 목적이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된 사항이어야 하고 ▲찬반투표, 조정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며 ▲쟁의 수단이 폭력, 파괴 등을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 파업의 경우 정당성 요건을 모두 갖추지만, 기업 및 기타 정치권력의 ‘노조 깨기’의 일환으로 정당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게끔 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진다. 아무리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파업을 불법화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벌금을 무는 방식의 신자유주의 통치를 통해 투쟁에 나선 개인의 삶을 파괴한다. 특히 고용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청을 주는, 그리고 그 하청은 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진짜 사장’은 모든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 많은 노동쟁의에서 ‘진짜 사장 나와라’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한 낙인을 멈춰라

경제 근간을 흔드는 것은 노동쟁의가 아니다. 착취는 하되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교섭 자체를 거부하는 기업과 기업과 유착한 정치 그리고 언론에 책임이 있다. 권력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지금의 이 사회구조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파업을 “불법”으로 호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업 자체가 해서는 안되는 잘못된 행동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불법파업’이라는 용어는, 착취에 순응하며 파업을 하지 않는 사람이 돼야 ‘불순한 노동자’가 아닌 ‘좋은 근로자’로 여기게 만든다. 우린 이런 전략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경영구조가 어떻게 변해야만 노동자들이 생존을 건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2.11.28. ⓒ뉴시스


불법과 합법의 구분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직접행동을 제안했던 사람 중 미국의 정치학자인 진 샤프는 198가지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제시한다. 여기서 비폭력은 합법 영역의 행동도 있지만, 불법 영역의 행동도 포함한다. 이는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노예제가 합법이었고 이를 정치, 경제, 종교 면에서 모두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에, 노예해방운동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오늘날, 당시 불법이었던 노예해방운동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권력에 의해 정해지는 사회적 기준을, 약자의 목소리가 보다 반영되는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유의할 수 있는 점은 ‘불법’의 낙인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멈춤’은 무엇인가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저 세상에 나를 맞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세상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이 지금 모습처럼 굴러가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이며, ‘순응하지 않음’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순응하지 않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그리고 사안마다 다를 수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시작된 다양한 비폭력 직접행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멈춤이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혹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행동에 완전히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5개월만에 다시 파업에 나섰다. 생존의 위기 때문이다. 유가, 전기세, 가스비, 타이어, 부품비 등 모든 비용이 급상승한 현실에서 최저임금을 보장해달라는 안전운임제가 폐지되고 과거의 운임체계로 돌아간다면 버텨내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생존을 위한 노동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철저하게 자본의 입장에서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누구를 위한 법과 원칙일까. 분명한 것은 정부의 대처와 방침들은 결코 노동자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화물운송 파업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잠시 불편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어떠한 이슈든 진짜 문제를 찾지 못하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자의 파업은 문제로 인한 현상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자 과정이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가 중심인 정책에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파업을 멈추라고 할 게 아니라, 국가와 자본가에게 빠르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맞다. 국민으로서, 그리고 소비자로서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는 방침에 문제제기하며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멈춤”에 동참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좋은 저항의 방법이다.

화물연대본부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24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들이 적재되어 있다. 2022.11.24 ⓒ민중의소리


세상을 바꾸는 노동쟁의

인류 진보의 역사에는 생존을 위해 이 세상을 바꾸고자 행동에 나섰던 많은 평범한 사람이 있었다. 인류보편의 가치라고 불리는 인권은 여전히 선언일 뿐 실현되지 않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자취 덕분에 적어도 이 가치들은 널리 인정받고 인류보편의 규범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헌법으로 보장되었고, 생존을 위해 이 시스템에 순응할 수 없기에 시작되었던 행동들은 우리 모두의 삶에 중요한 토대를 만들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사회는 여전히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잉여자본과 권력유지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까닭에, 매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죽어간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싸움은,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많은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감수해야 하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자본가의 관점이 아닌 노동자의 관점으로,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함께 상상하고 실천함으로써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점점 더 확장해 가는 일이다. 그리고 잘못된 관점을 갖도록 만드는 권력의 바람대로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향한 낙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그리고 자본에 유착된 정치와 언론을 향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다. 노동기본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드러나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파업을 향한 낙인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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