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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여전히 루시드 폴은 따뜻하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의 새 음반 [목소리와 기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의 새 음반 '목소리와 기타' ⓒ안테나

인간은 연약하다. 연약해서 이기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연약하다. 하지만 그 연약함 덕분에 가까스로 진실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문제 앞에서 고통스러워하거나, 다른 이들의 눈물 앞에서 멈칫거리며 연약함을 인간다움으로 변화시킨다. 인간은 무언가 해낼 때만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다. 무언가를 해내기 전 숱하게 흔들릴 때에도 아름다울 수 있다. 끝내 실패할 때에도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예술은 그 모든 순간에 동행한다. 질문하지만 답이 없는 순간과, 위로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마다 예술은 편이 되어주는 역할을 감당한다. 예술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위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의 목소리는 그 역할을 하려고 노래하는 사람 같다. 단언하거나 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 그럼에도 귀 기울이게 하는 목소리, 진심 다 해 고백하고 온 몸으로 손을 내미는 목소리다. 도무지 거짓말이라고는 하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는 스스로에게 진실한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친절해 불쑥 찾아가 기대고 싶어진다.

특히 루시드 폴은 일상과 내면의 이야기 풀어놓기에만 급급한 뮤지션이 아니다. 그는 발표하는 음반마다 비정한 세상에 다친 사람들을 향해 모닥불 같은 노래를 피우곤 했다. 알고 있다고 여기에 와서 불을 쬐고 가라고,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가끔 눈물이 났다. 그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았고, 계속 그답게 노래해왔다.

지난 11월 17일 최종 공개한 열 번째 음반 [목소리와 기타]에서도 루시드 폴다운 노래 8곡을 들을 수 있다. 제목처럼 음반에서 사용한 악기는 기타뿐이다. 루시드 폴은 기타연주에 맞춰 정감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이 음반을 위해 루시드 폴은 두 해 전 늦겨울부터 밑그림을 그리고, 계속 노래의 뼈대를 만들고, 노래의 살을 찌운 모양이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어난 곡 15곡 중에서 8곡만 골라서 만든 음반이다.

둘만 남은 시간 l 루시드폴의 목소리와 기타, Playlist

이번 음반에 담은 이야기는 한 곳으로만 모이지 않는다. 음반 수록곡들에서는 창작자로서의 루시드 폴과 세상의 기록자로서의 루시드 폴, 다른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따스한 사람으로서의 루시드 폴이 제각각 펼쳐지면서, 루시드 폴이라는 열 번째 세계를 마련한다.

‘한 줌의 노래’에서는 자신의 노래가 태어나는 과정과 자신의 노래가 꿈꾸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면 ‘사피엔스’에서는 인간의 비정함을 직시하고, ‘진술서’에서는 히키코모리의 삶을 노래한다. ‘섬고양이’가 섬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라는 생명을 향한다면, ‘용서해주오’는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의 내면으로 시선을 옮긴다. ‘홍옥’은 제목 그대로 사과 이야기이고, ‘알바트로스’는 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노래한다. 마지막 곡 ‘달맞이꽃’은 그리움의 노래다.

각 노래의 주체와 서사가 다른 것처럼,  매곡에서 루시드 폴은 각각 다른 리듬과 어법으로 노래한다. 포크와 팝만이 그의 스타일일 리 없다. 그동안 루시드 폴은 월드뮤직과 앰비언트 음악까지 품어왔다. 이번 음반에서도 루시드 폴은 기타 하나로만 노래하면서 다채롭고 풍성한 소리의 울림을 완성한다.
 
물론 그 울림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루시드 폴의 목소리이다. 그는 수줍고 설레고 고뇌하고 그리워하는 노랫말을 실연(實演)하는 배우처럼 읊조린다. 노래할 때마다 로맨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정함을 발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래 안에서 뿐만 아니라 노래 밖에서도 인간과 생명에 대한 예의를 다한다.

루시드폴은 누군가의 죽음을 노래하고, 누군가의 절망을 그리며, 인간의 잔인함을 담아 낼 때 노랫말이 자신에게 전이된 사람처럼 노래한다. 그럼에도 노래의 온기는 좀처럼 얼어붙지 않는다. 덕분에 그의 노래는 비극에서도 따스한 휴먼드라마로 피어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준엄한 고발이거나 비판이 아닌 모양이다. 증언이나 비판이 중요하다면 이렇게 노래할 수 없다. 루시드폴의 노래가 위로의 노래, 교감의 노래로 완성되는 이유다.

이렇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방식이, 루시드 폴이 쓴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혹은 가장 독창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같은 방식 덕분에 루시드 폴의 노래가 루시드 폴스럽게 따뜻해졌다. 세상 누군가에게는 이 온기가 간절할 것이다. 겨울에는 온기가 간절하고, 우리는 이렇게 온기를 확보한다. 따뜻하지 않은 루시드폴의 노래는 다음 음반을 기다리거나,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들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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