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 화물파업 업무개시명령 ‘협약 위반’ 판단...긴급개입

ILO 국제노동기준국 “감시감독기구 입장 한국정부에 전달”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받은 국제노동기구 공문 ⓒ공공운수노조 제공

국제노동기구(ILO)가 화물운송 노동자 파업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ILO 기본협약 위반일 수 있다고 보고 긴급개입 절차를 개시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4일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이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이 공문에서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은 “(공공운수노조가) 제기한 문제와 관련해 정부 당국에 즉시 개입했다”면서 개입 첫 단계로 “관련 협약에 나오는 결사의 자유 기준 및 원칙과 관련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ILO가 개별 정부를 상대로 긴급개입 개시 공문을 발송하면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까지 첨부하여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알려졌다. 이는 외교적인 압박을 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긴급개입 요청에 함께 나선 국제운수노련의 투완 수바싱게 법률국장은 “ILO가 정부에 긴급개입 개시 통보 공문을 송부하면서 기존 ILO의 입장을 첨부한 것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라며 “이는 ILO가 한국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협약 87호 및 결사의 자유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LO가 우리 정부에 긴급개입 개시 서한과 함께 송부했다는 ‘결사의 자유 기준 및 원칙과 관련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은 지난 2018년 발간된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요약집’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고, 공공운수노조는 설명했다. 당시 요약집에서 ILO는 “경제의 핵심 산업에서의 장기간 총파업이 인구의 생명, 건강 또는 개인적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 업무복귀 명령이 합법적일 수도 있다”면서도 “운송회사, 철도 및 석유 부문 등의 서비스 또는 기업 운영 중단은 국가비상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ILO는 “이러한 종류의 서비스에서 파업 시 근로자를 동원하기 위해 취한 조치는 근로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즉 이 판단으로 보자면, 이번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파업은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따라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 또한 ILO 협약 위반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ILO 회원국이자 이 사건과 직결된 87호 협약(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협약) 및 29호 협약(강제노동)의 비준국이다. 특히 87호·29호 협약은 ILO 협약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협약이다. 강제노동 협약인 29호는 노예노동을 폐지하고 ‘자유로운 임금 노동’으로 대체하라는 협약이고, 87호는 노동자에게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으로 세계인권선언의 기초가 된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 두 개 협약 비준을 미루면서 노동 후진국의 불명예를 이어오다가 문재인 정부에서야 비준을 선언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오늘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며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에 나섰다. 2022.11.29 ⓒ대통령실, 뉴스1

ILO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으며, 국내법과 ILO 협약이 충돌할 경우 ‘신법 우선원칙’과 ‘특별법 우선원칙’에 따라 ILO 기본협약을 국내법보다 우선하게 된다.

이번 ILO의 개입은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국제운수노련이 지난 11월 28일 우리나라 정부의 화물운송 노동자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앞두고 ILO에 긴급개입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앞으로 △ 업무개시명령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의 위법 사항 △ 12월 2일 공정거래위원회의 화물연대본부 사무실 조사 시도 등에 대해 ILO에 추가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다. 또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 우리나라 정부 정식 제소 등을 진행한다.

한편,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입제 도입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자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달 29일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업무개시명령은 파업 등으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것으로 판단될 때 강제로 운송업무에 복귀하도록 내리는 명령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국제법상 강제노역에 해당한다”며 헌법과 국제협약에 위배되는 명령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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