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개입’도 “구속력 없다” 무시한 정부, 노동계 “국제기구 폄훼하나” 반발

화물연대 노동자들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오거리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에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구호 외치고 있다. 2022.11.24 ⓒ민중의소리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에 국제노동기구(ILO)가 기본협약 위반을 우려하며 직접 ‘개입’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이마저도 무시하며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에선 ILO 기본협약이 명백하다며 정부에 업무개시명령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 4일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은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이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이 공문에서 “(공공운수노조가) 제기한 문제와 관련해 정부 당국에 즉시 개입했다”며, 개입 첫 단계로 “관련 협약에 나오는 결사의 자유 기준 및 원칙과 관련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ILO가 우리 정부에 긴급개입 개시 서한과 함께 송부했다는 ‘결사의 자유 기준 및 원칙과 관련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은 지난 2018년 발간된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요약집’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고 공공운수노조는 설명했다. 당시 요약집에서 ILO는 “경제의 핵심 산업에서의 장기간 총파업이 인구의 생명, 건강 또는 개인적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 업무복귀 명령이 합법적일 수도 있다”면서도 “운송회사, 철도 및 석유 부문 등의 서비스 또는 기업 운영 중단은 국가비상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파업이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이에 따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 또한 ILO 협약 위반일 수 있다는 지적을 ILO가 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받은 국제노동기구 공문 ⓒ공공운수노조 제공


하지만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달랐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ILO 개입(intervention)은 ILO 등에 근거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 ‘협약 적용·이행에 관한 전문가위원회’ 등 공식적인 감독기구에 의한 감독 절차는 아니며, 회원국은 해당 절차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고용노동부는 이 경우 ‘개입’의 의미가 아니라 ‘의견 조회’, ‘의견 전달’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해석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한국 정부가 ILO의 외교적 압력을 받고 있다거나 ILO 협약 위반에 대한 ILO 사무국의 사실상 우려 표명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기사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일부 언론보도를 반박했다.

고용노동부는 “향후 정부는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가 국가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것이라는 점을 ILO 사무국에 적극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정부의 입장에 공공운수노조는 유감을 표했다.

공공운수노조는 5일 논평을 통해 “한국은 ILO 핵심협약 87호와 29호를 비준한 국가이며, 비준국은 국제협약을 국내법과 같이 준수할 의무가 있다”며 “이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뒤집고 싶어서 국제기구의 권위와 서한의 무게를 폄훼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자임한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ILO 핵심협약 87호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고, 29호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ILO의 개입 조치는 단순한 의견조회가 아니다”라며 “이는 ILO 협약에 따른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 협약비준 회원국인 정부가 협약 이행의 의무를 갖도록 하기 위한 취지로 진행되는 절차”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3년 11월 공공운수노조 등이 철도노조의 파업을 앞두고 ILO에 보낸 긴급개입 요청에 대해, ILO가 긴급개입 서한을 보내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이 노동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선례가 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공공운수노조는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계속해서 ‘이번 개입은 단순한 의견조회’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싶다면, ILO가 이번 긴급개입 공문과 함께 정부에 송부한 ‘결사의 자유 기준 및 원칙과 관련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을 공개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ILO의 확립된 결정과 입장이 담겨 있을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공개하진 않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ILO 협약 87호와 29호 협약이 국내에 효력이 발생된 지 불과 8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비준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ILO 긴급개입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지금 정부의 언행은, ‘비준국’의 명예만 얻고 그에 따른 책임은 피하려는 태도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권고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가 아니다. 정부가 입맛에 따라 취사선택해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정부가 ILO 협약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잇따랐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국회 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강제노역에 처하지 않을 권리, 적법절차의 권리, 직업선택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노동3권,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 수많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와 평등의 원칙은 물론, ILO 협약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서희원 변호사도 “안전운임제 유지, 확대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에 직결되는 사안이며 이를 핵심요구안으로 내세운 화물연대 총파업은 의심할 여지 없이 ILO 헌장과 87호 협약에 의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위헌 위법의 소지가 다분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심각한 파업권 침해에 해당하며 형사 처벌 조항으로 위협하며 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ILO 제29조 강제노동 협약 위반에도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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