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재고 없는 주유소 0.8% 뿐이라는 데 …‘국가 경제 위기’라는 정부

[화물연대 파업 자세히 보기④] 판교 저유소, 평소 출하량 1/3 수준인데…재고 소진 주유소 적은 이유는 대체수송·사전 확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엔 대한송유관공사가 운영하는 동양 최대 규모 ‘판교 저유소’가 있다. 저유소는 휘발유와 경유 등이 주유소로 운송되기 전, 대용량 탱크에 저장되는 곳이다. 최대 206만배럴_1,300여개 주유소 저장 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3억2천만리터)의 기름이 대형 탱크 40기에 나눠 저장돼 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대부분 주유소, 충청·강원 일부 주유소가 이곳에서 기름을 운송 받는다. 최대 약 40만 배럴(254개 주유소 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 각지에 흩어져 있는 주유소로 운송된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석운동 대한송유관공사 판교 저유소 모습. ⓒ민중의소리

지난 6일 찾은 판교저유소 상차장에선 기름을 싣는 유조차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모두 84개의 상차시설(Bay_베이) 중 10여개 베이에선 기름이 나오는 파이프(로딩대)조작이 한창이었다. 화물연대본부 이금상 인천지역본부 에쓰오일지부 지부장은 “출하가 평상시 1/3 수준”이라고 했다. 출하량이 많을 때와 적을 때, 새벽 시간과 저녁 시간 간 차이가 크지만, 84개 베이 중 평균 40개 정도가 24시간 가동된다는 설명이다. 3m를 훌쩍 넘는 2만5천리터급 대형 유조차 탱크로리 위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베이 뒤쪽엔 운송을 중단한 유조차가 빼곡했다. 이곳엔 모두 300여대 유조차를 주차할 수 있는데, 상당수가 운송을 멈췄다. SK, 현대, 에쓰오일, GS 등 4대 정유사 엠블렘이 칠해진 유조차가 엇비슷한 숫자로 주차돼 있었다. 이금상 지부장은 “대부분 각 정유사와 직영처럼 일하는 차들”이라고 말했다. 직접고용은 아니다. 4대 정유사는 운송사를 고정해두고 출하하는데 해당 운송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운송을 전담하는 유조차란 뜻이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석운동 대한송유관공사 판교 저유소 모습. ⓒ민중의소리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석운동 대한송유관공사 판교 저유소 모습. ⓒ민중의소리

판교 저유소에서 운송하는 기름은 주문자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한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직영 주유소 물량이다. 직영 주유소 출하량은 사실상 직영처럼 일하는 차들이 운송한다. 화물연대는 이런 직영 차량을 전국에 1,200여 대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900여대가 화물연대 조합원이다. 가입률이 높다 보니 파업으로 운송에 직접 타격을 받는 곳은 직영 주유소다. 지난 5일 기준 전국 재고 소진 주유소가 96개소였는데 이 중 대부분이 4대 정유사 직영 주유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대리점 물량이다. 직영 이외에 대리점 주유소들은 각자 운송사를 골라 기름을 받는다. 화물연대는 대리점 물량을 소화하는 유조차를 약 300~500여대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아직 화물연대 조합원이 없다. 판교 저유소 10개 베이에서 기름을 채우던 유조차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규모가 제법 큰 주유소들은 자가수송 유조차를 운영하기도 한다. 화물연대 파업이 13일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재고 소진 주유소가 미미한 이유는 직영 물량을 대리점차와 자가수송유조차, 군용차 등 대체 운송 수단이 소화하기 때문이다. 정유업계가 파업을 대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지부장은 “파업은 한 달 전부터 예고됐다. 9월, 10월 운송량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모든 주유소가 저장 탱크에 미리미리 기름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화물연대는 앞으로 재고 소진 주유소가 일부 증가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 불편을 초래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 보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헌릉호 한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 안내문이 붙었다. ⓒ민중의소리

실제 전국 재고소진 주유소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달 기준 전국 주유소는 총 1만1,115개다. 이중 재고가 소진됐다고 신고한 주유소는 0.8%(96곳)에 불과하다. 전국 주유소 100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을까 말까’ 한다는 뜻이다. 지난 5일 강남구 헌릉로에 있는 한 직영 주유소에는 ‘화물연대파업으로 인하여 입고가 지연되었습니다. 휘발유 품절’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주유소 관계자는 “어제 주문했지만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6일 확인해 보니 전날 저녁 휘발유가 입고 되면서 판매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소비자 피해는 얼마나 될까. 도로 맞은편에는 또다른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가 있고 지금까지 재고 소진은 없었다. 단골 주유소 재고가 화물연대 파업으로 하루 이틀 소진됐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바로 앞 주유소에 가면 된다. 굳이 재고소진률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운전자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정부, 그리고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휴일인 지난 4일, 관계장관을 모두 대통령실로 불러 모아 “정유, 철강 등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은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다. 업계와 정계에서는 6일 국무회의에서 정유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정부는 명령을 발동하지 않았다.

발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발동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14조는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4대 정유사, 일부 주유소 판매 부진은 발생할 수 있겠지만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운송 거부는 찾기 힘들었다.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곳은 오히려 정부다. 화물연대는 파업 이후에도 경찰·군·관용차용 기름, 이른바 ‘관공납’ 물량은 공공질서 필수유지 차원에서 운송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정부가 위헌·위법 논란이 있는 업무개시명령을 시멘트 운송종사자를 대상으로 발동하자 반발의 의미를 담아 관공납을 중단했다. 

유조차 탱크로리 상단 모습 ⓒ민중의소리


기사 원소스 보기

  • 등록된 원소스가 없습니다.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