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12.13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적용 진료를 확대하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두고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라며,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시켜 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건전성을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낮추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서니, ‘문재인 케어’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상당한 문제를 유발했나 싶었다.
그래서 우선 재정이 얼마나 악화됐는지 찾아봤다.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국정모니터링시스템인 ‘e-나라지표’ 홈페이지 검색창에 “건강보험 재정”을 치니 금방 ‘연도별 재정현황’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이후 2018~2020년까지 잠시 건강보험 지출이 수입보다 많이 발생하는 듯했으나, 다시 수입이 증가하면서 2021년에는 수지율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적자는 2018년 2천억 원 기록 후 2019년에도 2조8천억 원을 기록하면서 증가세였다가 2020년 4천억 원으로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 그리고 2021년에는 2조8천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문재인 케어’가 재정을 파탄내고 있다는 취지의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한 이후 3년간 국민건강보험 수지율이 잠시 악화됐다가 2021년 흑자로 다시 회복됐다. 연도별 건강보험 수입·지출은 2017년 58.0조원·57.3조원 → 2018년 62.1조원·62.3조원 → 2019년 68.1조원·70.9조원 → 2020년 73.4조원·73.8조원 → 80.5조원·77.7조원 등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공단
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국가 대비 너무 낮아서 건강보험료를 올려서라도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58.2%(보건복지부는 62.7%라고 발표)로 OECD 평균 73.5%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미용·성형을 제외한 비급여 진료의 상당 부분을,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급여 진료로 바꾸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추진했다. 그 결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2월 30일 환자부담이 큰 중증·고액진료비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취약계층 의료비 부담이 꾸준히 완화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로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조차 보건복지부에서 산출한 지표로 따지면 2017년에 비해 보장률은 고작 2.6% 증가한 수준이다. 겨우 보장성 2% 올렸는데, 이것을 두고 대통령이 “인기영합주의 포퓰리즘”이라며 보장성을 이전으로 회귀하겠다고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입원 진료로 따지면 한국의 보장성은 더욱 열악하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에 따르면, 한국은 가계 지출 중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가구도 7.5%로 미국(7.4%)보다 많다고 한다.
이 같은 여러 지표를 고려하면, 급여 진료를 추가 확대하여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높이는 게 정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정부는 진보·보수할 것 없이 보장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추진됐다. 심지어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오고 박근혜 정부 때도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점을 들어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은 ‘문재인 케어’가 아닌 ‘박근혜 케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후퇴시키는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역사상 최초의 정부라는 점도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가 보장성을 낮춰야만 한다면서 든 이유는 더 독특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관련 방침을 발표하면서 “낮은 본인 부담으로 과다 의료이용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13일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의료 남용을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라며 “건강보험 낭비와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부 병원 진료를 너무 많이 받는 사례를 들어, 이런 환자들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건정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소수 사례가 존재한다고, 이를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봐도 되는 것일까?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완전 허구”라고 비판했다. 전 국장은 “한국이 도덕적 해이가 생길 만큼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은 나라가 아니다”라며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병원비가 너무 싸서 병원에 너무 많이 가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한국의 의료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과잉 진료가 많은 것은 의료가 너무 상업화돼 있어서 그렇다”라며 “95%가 민간병원이고 정부가 행위별 수가제를 운용해서 병원이 돈벌이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급자들이 과잉진료를 하고 있고, 이를 정부가 부추기기 때문이지, 환자가 과잉진료 해달라고 요구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해서 선동함으로써 대중을 속아 넘어가게 하거나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동원해 겁준다”며 “이런 세력과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자이고, 거짓말을 반복하여 선동하고 있는지 고심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