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영정 놓인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제야 시작된 ‘진정한 추모’

정부 대신 분향소 차린 유가족들 “윤 대통령, 더 늦기 전에 여기 와서 사과하라”

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서 유가족이 영정사진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2022.12.14 ⓒ민중의소리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4일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놓은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참사 직후 정부가 분향소를 설치한 곳과 같은 장소다.

영정사진을 가리고 있던 검은 막을 걷어내자, 희생자들의 이름과 앳된 얼굴이 공개됐다. 참사 46일 만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영정사진을 걸기 위해 기다렸던 유가족들은 품에 안고 있던 사진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울고 또 울었다.

유가족에게 상처가 된 정부의 합동 분향소
유가족들 "이제라도 진정한 추모 시작해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오열 ⓒ민중의소리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서울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라는 걸개를 걸었다. 제단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수대로 158개의 검은 액자를 놓았다. 이 중 76개의 액자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영정사진이 담겨 있었다. 고인을 공개하길 원치 않은 유가족들은 국화꽃 사진을 대신 담았다.

이태원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1도까지 떨어졌지만, 시민대책위 소속 활동가들과 청년 자원봉사자들은 분향소 설치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제단을 만들기 위한 목재들을 톱으로 자르고 연결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한파 탓에 제단 설치 예상 시간은 오후 1시에서 2시, 4시, 5시로 계속 늦어졌지만 이들은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한때 시민 분향소 설치 소식을 접한 극우단체들이 천막을 치고 대기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혹시 모를 충돌을 대비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양이원영,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현장에 도착했고, 경찰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폴리스라인을 쳤다. 극우단체 회원들은 윤 대통령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걸거나 확성기를 사용해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헌화와 분향은 오후 5시 15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인 분향소에 들어서자 하염없이 통곡했다. "엄마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해", "이렇게 예쁜 아이를 어떻게 보내" 유가족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시민사회,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분향소
유가족 헌화 시작되자 통곡 소리만 가득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2022.12.14 ⓒ민중의소리

앞서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이었던 10월 31일부터 지난달 5일까지 이태원 광장을 비롯한 전국 71곳에 합동분향소를 설치, 운영했다.

정부의 합동 분향소에는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표기한 걸개가 걸렸다. 유가족의 의견은 묻지 않은 채, 희생자의 영정사진도 위패도 놓지 않았다. 수많은 국화꽃으로 장식된 제단 중앙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는 푯말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참사를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참사 직후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표기하고 영정사진과 위패는 생략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런 형태의 분향소는 유가족들에게도 상처가 됐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향해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추모'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 요구마저 거부했다. 유가족들이 "이제라도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시작해야 한다"며 직접 분향소를 차린 이유다.

고 이지한 씨의 아버지인 이종절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드디어 저희 아이들 얼굴을 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잘 가라',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게 됐다"며 "아이들을 위해 꼭 오셔서 추모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 앞에 와서 '내가 잘못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고 이남훈 씨의 어머니는 참사 책임자들을 향해 "아이들의 얼굴, 눈동자를 똑바로 보길 바란다"며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16일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49재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6일 오후 6시 이태원역 앞에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시민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이정민(고 이주영 씨 아버지)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저희 아이들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고 추모다운 추모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16일 이태원역 입구에서 추모제에 많은 시민들이 와주셔서 아이들에게 위로와 추모를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설치된 가운데 유가족들이 오열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2022.12.14 ⓒ민중의소리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한 후 희생자 영정에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2022.12.14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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