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공약을 분석한 시민사회는 의료민영화를 우려했다. 민중의소리도 이 같은 우려를 보도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공공병원 위탁운영,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 및 의료데이터 민간 개방, 영리병원 도입 시도 등 공공의료를 약화시키고 민간시장의 확장을 돕는 정부정책을 다뤘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에서는 이를 종합하여 윤 정부 의료민영화의 큰 그림을 그려보았다. 윤 정부에서 추진되는 정책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의료민영화의 의도가 더욱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0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 필수인건비 지원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강 의원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이같이 질타했다.
전국에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동은 29만명에 달한다. 이중 치료를 받는 아동은 1만9천명(6.7%)에 불과하다. 언제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평생 삶을 좌지우지하기에 적정 시기에 받는 게 매우 중요한데, 시설이 없어서 길게는 몇 년을 기다린다. 돈이 안 되는 사업이라, 전국에 재활치료 병원이 몇 개 없어서다. 생계를 뒤로하고 온 가족이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 근처로 터전을 옮기는 경우가 많아 ‘재활 난민’이란 단어가 생길 정도다.
그래서 이전 정부 때, 전국에 10개의 공공어린이재활 병원 및 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지난해 서울재활병원과 일산병원 등 2곳을 공공어린이재활병원으로 지정했다. 그런 뒤 정부는 수익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 재활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필수인력 인건비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7억5천만원, 올해에는 15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지원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예산안에는 25억원의 필수인력 인건비를 편성해야 했다.
그런데 올해 10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에서 이 예산이 증발했다. 갑작스러운 삭감으로 병원들은 고용한 필수인력을 다시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국감장에서 조 장관을 강하게 질타한 이유다.
10월 20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서울 강서갑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필수인력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된 이유를 조규홍 복지부 장관에게 물었다.
우연이 아닌 ‘비정한 예산’
“비정하다”는 비판을 들은 뒤에야, 정부도 다시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답했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증액하겠다고 해서 다행이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들여다보면, 단순 실수라고 보기 힘들다.
강선우 의원이 강하게 질타하자, 조규홍 장관은 “재활치료에 시범수가를 적용할 예정”이라며 마치 필수인건비 지원을 대체할 대안이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11월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애초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건강보험수가를 통해서 지원하면 되지 않겠냐면서 문제제기가 강하지 않았기에 삭감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10월 16일 설명자료를 통해 "운영 중인 2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지정병원에 대해서는 올해 초부터 '어린이재활치료 시범수가'를 적용 중"이라며 지원예산을 모두 삭감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얼린이재활치료 시범수가는 2020년 10월부터 진행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보도설명자료
조규홍·추경호 장관이 대안이라고 생각한 시범수가는 2020년 10월부터 추진된 사업이다. 10월 16일 복지부의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비 삭감에 관한 해명자료를 보면 “올해 초부터 어린이재활치료 시범수가를 적용 중”이라며, 하단에 2020년 10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시행하는 어린이재활 수가 시범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던 시범사업이 하나 더 있으니, 별다른 고려 없이 삭감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기재부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공기관 예산 절감과 정원 감축을 강조하고, 복지부가 쫓기듯 예산을 삭감하다 보니, 대안도 없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전액 삭감했던 것이다. 갑자기 삭감된 이유를 관계부처 담당자들에게 물었던 강선우 의원실 관계자도 “수가 시범사업도 있으니 그걸로 갈음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기재부에서 인건비를 아끼려 했던 것 같고, 복지부도 통상적으로 다른 사업들은 그런 식으로 많이 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수용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비정한 예산안’은 공공을 이런 식으로 축소하면서 나타났다.
공공의료 축소, 빈 공간 민간에 내어주기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기조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뿐만 아니라 전체 공공의료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추진되고 있는 ‘공공병원 위탁운영 확대’가 대표적이다. 지자체장이 국민의힘으로 바뀌고,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가 된 시의회를 중심으로 공공병원을 위탁운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정부·여당이 단순히 공공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곳곳에서 민간의 영역을 확장하는 이른바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2.10.7. ⓒ뉴스1
우선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관료 출신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의료민영화 기조를 암시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988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기획재정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뿌리 깊은 경제관료다.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을 거친 그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복지부 제1차관으로 임명됐고, 권덕철 장관 사퇴 후 장관 직무대행을 맡았다. 그리고 올해 9월 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돼 10월 4일 임명됐다. 지명 당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조 후보가 공공의료기관·건강보험 기능축소와 민영화에 앞장설 것이고,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우려는 틀리지 않았다. 장관 임명 1~2개월여 만에, 정부는 의료민영화가 의심되는 각종 정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0월 복지부는 영리기업에 만성질환 관리서비스를 허용하는 이른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말로는 ‘비의료’라 하지만, 만성질환은 “관리가 곧 치료”라는 게 의료인들의 지적이다. 이에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는, 정부가 영리병원을 금지하는 의료법을 우회하여 해당 보건의료를 영리기업에 허용하고 있다고 본다. 또 지난 9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 회의에서 공공기관이 보유한 의료 데이터 등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민간의 사업 개발을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보유하고 있는 MRI, CT 영상 등 의료데이터를 가공하여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관련기사 보기)
12월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일부 줄이는 방안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낮은 본인 부담으로 과다 의료이용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MRI 촬영 등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줄여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턱없이 낮아 건강보험료를 올려서라도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이 때문에 역대 정부도 보수·진보할 것 없이 모두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최초로 거꾸로 가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9~12월 사이에 발표된 건강관리서비스 영리기업 허용 시범사업, 의료데이터 민간개방,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방안 등은 모두 연결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이 정책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11월 7일 자 무상의료운동본부의 입장 자료다. “(민간)보험사는 이전부터도 사람을 선별해 수익을 극대화했다. ... 이런 ‘체리피킹’(단물 빨아먹기) 행위는 보험업계 스스로는 언더라이팅(underwriting)이라 부를 정도로 일상적이다. 그러기 위해 보험사는 더 많은 정보 수집을 원한다.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를 하는 이유는 방대한 개인 생활, 건강, 의료 정보를 수집해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가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을 영리기업에 허용하고,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의료데이터를 민간에 제공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까지 축소하고 있으니, 민간보험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 공공의 영역을 축소시키면서, 민간에 사업 확장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만성질환 건강관리서비스를 공공의료사업으로 준비 중인 한 지방의료원 관계자도 민중의소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기회에) 민간은 반드시 수익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정하 의원은 지난 5월 14일 페이스북에 "오랜 깐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을 축하합니다"라며 원 장관과 악수하는 사진을 올렸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우리는 제주도에서 도지사와 부지사로 찰떡호흡을 맞췄다"라며 "국토부 원희룡-원주 박정하 핫라인으로 원주의 원대한 꿈을 완성하겠다"라고 썼다. ⓒ박정하 의원 페이스북
의료민영화의 완성 영리병원
또 한 축에서는 의료민영화의 화룡점정을 위한 법 제·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 영리병원 설립 허가로 논란이 됐던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깐부’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9월 강원도에 영리병원 도입을 허용하는 강원특별법을 발의했다. “국내법인의 영리병원은 국내법상 금지돼 있으니 국내병원이 외국인투자병원을 이용해서 국내에서 영리병원을 한다거나 하는 부분만 심사과정에서 걸러내면 된다”는 원희룡 전 지사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병원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내국인 진료 제한’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걸어 1심에서 이긴 사례를 고려하면, 강원도도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영리병원 도입에 관한 각종 모델은 이명박 정부 시절 어느 정도 연구가 완료된 상태다. 2009년 정부기관 연구보고서를 보면 최근 추진되는 의료민영화 사업과 영리병원이 연계된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정부가 만성질환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 및 의료데이터 개방 사업을 펼치고, 여당 의원들이 특별법을 만들어 영리병원 도입을 시도하는 것이 의료민영화의 큰 그림을 그리며 추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영리병원 논란이 한창이던 2009년 복지부와 기재부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라는 용역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중 한국보건사업진흥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① 해외환자 유치형 ② 고급의료 서비스 수요충족형 ③ 산업연계형 등 모델에 대한 도입 가능성을 검토했다. 진흥원은 보고서에서 해외환자만 받는 ①번의 경우 “수익성 분석 등에 따라 실현여부가 있다”고 봤고, 소수 수요자만을 위한 ②번은 “현행 제도와 부적합성 발생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으며, 건강관리서비스와 연계한 ③번은 “건강관리서비스 제도 마련 여하에 따라 실현여부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개설’만 허용하던 경제특구법을 2005년에 슬그머니 내국인도 진료 가능한 ‘외국의료기관’으로 수정하고, 도지사의 허가가 있으면 의료인이 아닌 외국인도 외국의료기관을 제주도에 개설할 수 있다는 제주특별법을 제정한 배경도 이 같은 모델의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발판인 셈이다. 박정하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제주도처럼 강원도에 도지사의 허가가 있으면 내국인 진료가 가능한 영리병원을 개설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편,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한국보건사업진흥원은 곳곳에 영리병원 도입의 역효과를 경고하듯 남겼다. 진흥원은 건강관리서비스 등 산업연계형 영리병원이 도입될 경우 해마다 4조3천억원의 국민의료비가 폭등할 것이고, 개인병원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될 경우 대규모 의료인력 이동으로 300병상 이하 지역 중소병원 약 66~92개가 폐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의료관광을 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영리병원을 먼저 도입한 태국의 경우 제왕절개·무릎수술 등 흔한 질환 의료비가 2006~2008년 매해 10~25% 상승하고 의료인력 집중 현상으로 심각한 지역불균형을 초래했다는 논문(The effects of medical tourism : Thailand's experience)을,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이리스(IRIS, 정보 공유를 위한 기관 저장소)에 소개하며 의료민영화의 역효과를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