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정의기억연대 대표직을 지냈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자신에게 적용된 사기 등 혐의를 법원에서 모두 부인했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문병찬)은 지난 23일 피고인 윤 의원에 대한 신문을 진행했다. 오랫동안 증인 신문을 거쳐 이번에 처음으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된 것으로, 공판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의원이 받고 있는 혐의는 ▲사기 및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및 지방재정법 위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횡령 ▲준사기 ▲업무상 배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크게 7가지나 된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록 보조금 받기 위한 사기? 윤미향 “그럴 이유 전혀 없다”
이중 사기 및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및 지방재정법 위반 혐의는 모두 정대협 부설기관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관련된 것이다. 검찰은 박물관에 학예사가 재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학예사가 재직하는 것처럼 꾸며서 법적으로 규정된 박물관 등록 절차를 거치고, 이를 이용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국고보조금과 지방보조금을 지급받아 사용했다고 문제 삼았다.
하지만 윤 의원은 ‘박물관을 등록한 계기 중에 보조금을 받기 위한 이유도 있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윤 의원은 “A씨가 박물관 등록시 학예사가 돼주겠다고 허락했고, 그에 따라 이력서와 학예사증을 보내줘서 등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A씨가 (박물관으로) 출근하진 않았지만 학예사 출근이 (박물관 등록의) 전제는 아닌 걸로 안다”며 “언제든지 일이 필요할 때 학예사로서 일 할 수 있었고 자문이 필요할 때 자문을 해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 의원은 ‘박물관 등록 계기가 특별히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는 “건립 과정에서부터 당연히 등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등록을) 준비했다”며 “사회적 신뢰와 공익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아가 검찰은 여가부의 사업을 진행한 대가로 정대협 활동가가 받은 인건비를 정대협으로 반환해 정대협 운영비로 사용한 것도 사기이자 보조금관리법 위반이라고 봤는데, 윤 의원은 “반환이 아니라 기부”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 ‘정대협 경비로 사용할 목적으로 허위로 인건비를 청구해서 보고한 것 아니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며 “본인들이 노동하고 급여를 지급 받아서 본인들의 의사로 그 급여를 기부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얼마를 기부했는지 구체적인 건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본인 의사”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부금 받고서 신고하지 않아 위법? 윤미향 “후원회원이지 기부금 모집한 거 아냐”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는 정대협이 등록청에 기부금 모집을 등록하지 않고, 불특정한 다수인을 상대로 기부금을 모집하고, 모집한 기부금을 유용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기부금품법은 1천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경우에 행정안전부 장관에 등록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후원회원을 모집한 것이고 그 후원회원들이 회비로 내준 금전이니, 기부금품법상 등록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검찰도 지난 2016년 정대협에 대한 기부금품법 위반 고발 건을 수사한 결과, 정대협이 받은 돈은 후원회비에 해당하며 모집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해 불기소 처분을 한 바 있다.
정대협은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후원회원을 모집했으며, 후원회원이 되면 단체 운영과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윤 의원은 설명했다.
윤 의원은 정대협 사업과 관련해 자신의 개인 계좌로 모금 활동을 벌인 것에 대해서도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정대협 회원을 상대로 모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원 모집과 같은 방식이기 때문에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판사가 ’2016년 설립된 정의기억재단에선 2017년부터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했다’며 그 이유와 정대협과의 차이를 묻자, 윤 의원은 “정의기억재단은 출범부터 ‘전 국민 모금’으로 시작했다. 태동 자체가 한일 합의에 반대하면서 일본으로부터 10억 엔을 받지 말고, 국민이 대신 모금하자고 한 것”이라며 “그 모금 대상은 전 국민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의기억재단은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를 위해 여러 단체와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설립한 단체다. 윤 의원이 상임이사를 맡았다. 이후 2018년 정의기억재단과 정대협이 통합해 정의기억연대를 새롭게 출범했다. 반면 “정대협 사업엔 모금 자체가 없었다. 후원회원을 관리하고, 그들을 정대협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하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했다”고 윤 의원은 덧붙였다.
다만 윤 의원은 정대협 후원회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기감사, 회계 보고 및 승인 등 절차가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고 실행됐지만, 개인 명의 계좌로 모금된 것에 대해서는 “같은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정산은 분명히 했다면서 “그 전체 모금 내역을 일일이 자료에 정리하고, 남은 건 그 다음 캠페인에 지출하고, 또 남으면 생존자를 방문하거나 대외 활동을 하는 등 공적 활동에 지출했지만, 사실은 꼼꼼하지 못했던 거 같다”고 덧붙였다.
정대협 경비를 횡령? 윤미향 “공적으로 모두 활용, 입증 가능”
윤 의원은 정대협 경비를 횡령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윤 의원이 2011년 1월부 터 2020년 3월까지 총 217회에 걸쳐 1억여 원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고 봤다. 윤 의원은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공적으로 활용했다는 걸 페이스북 자료 등으로 충분히 입증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오히려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해왔다는 점과 정대협과 정의연에서 활동하면서 특별수당이나 직급수당도 거의 없는 낮은 임금을 받아온 점 등을 강조했다. 1992년 처음 정대협 상근 간사로 활동할 땐 30만원을, 이후 사무국장을 할 땐 70만원을, 퇴직했다가 5년 지나 사무처장으로 복귀할 땐 210~220만원 정도를 활동비로 받았다고 윤 의원은 변호인의 질문에 답했다. 대표 직급 수당도 10만원에 불과했다.
윤 의원은 “그 외에 더 받는 수당은 전혀 없었다”며 “대표도 그렇고 간사도 그렇고, 별도의 급여 항목을 추가해서 드릴 수 없었다. 경제 사정도 그렇지만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정신으로 한다고 의논했고 그걸 합의해서 간사로, 사무처장으로, 대표로 일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이사회에서 대표의 활동비 인상이 논의됐음에도, 윤 의원이 이를 거부했다는 일화도 전해졌다. 돈을 벌기 위해 정대협 등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윤 의원은 동시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정대협 등의 후원회원이기도 했다면서 “사무처장일 땐 매월 만원, 2만원씩 내다가 나중엔 5만원씩 후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연료나 상금을 받아도 특별후원금으로 정대협 등에 줄곧 냈다고 윤 의원은 전했다.
길원옥 할머니에게 기부행위 강요? 윤미향 “분명히 본인 의사에 따른 것”
나아가 검찰은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윤 의원이 각종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행위를 길 할머니에게 강요했다는 준사기 혐의를 제기했다.
반면 윤 의원은 길 할머니의 분명한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길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었다고는 하나, 당시 의사결정을 못할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가벼운 치매기가 있다는 건 설명을 들어 알았다”면서도 “80대 후반의 고령 할머니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길 할머니가 정대협 활동과 언론 인터뷰 등 과정에서 자신의 분명한 생각을 드러냈고 이로 인해 인권 활동가로 칭송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또한 길 할머니가 여성인권상과 함께 부상으로 받은 5천만원을 기부한 것에 대해서도 “상금을 받을 거라는 걸 알기 전부터 기부 의사를 밝히셨다”며 “할머니의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이 기부를 제안했는데 길 할머니가 반대해서 기부를 하지 않았던 사례, 윤 의원이 기부를 하지 말자고 권했는데 길 할머니가 반대해서 오히려 기부를 한 사례 등도 소개했다.
안성쉼터 고액 매입? 숙박업소로 활용? 윤미향 “사업 지원해준 곳과 협의해서 결정” “숙박업소 아니라 교육 공간으로 활용”
업무상 배임과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는 ‘안성쉼터’와 관련된 것들이다. 우선 검찰은 안성쉼터를 정대협이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세보다 고가에 매입해 ‘가액 불상’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윤 의원에게 업무상 배임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0억원을 사업 지원비로 받았고, 그 한도 내에서 적절한 부지를 20군데가량 돌아다니며 찾다가 7억5천만원에 안성쉼터 부지를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위탁한 기관과 모두 협의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피해자들 거주 공간으로 부적절한 곳인 것 같다’는 검사의 지적에 “거주 공간이 아니라 치유와 평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계획을 세웠고, 현대중공업 측과도 그렇게 협의하고 승인됐다”며 “안성쉼터 부지는 할머니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있었고 접근성도 좋았다. 그래서 적절한 공간이라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할머니들도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윤 의원은 지인에게 해당 부지를 소개받은 이유에 대해선 “저희가 본 안성 인근 다른 매물은 훨씬 조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비용이 비싸서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며 “사업 기간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턴 주변 지인 모두에게 (부지를 알아봐달라고) 소문을 낸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후 안성쉼터를 유지하지 못하고 매각한 데 대해선 “2015년 한일 합의가 있기 전에는 계획했던 사업들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이후에는 치유보다는 다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 맞서 싸우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야 했고, 그러다보니 기존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고 밝혔다.
‘7억5천만원 매입가가 시세에 맞느냐’는 질문에는 “처음에는 9억원을 제시했는데 사무처에서 적극적으로 협의해서 7억5천만원으로 가격을 떨어뜨린 걸로 안다”며 “20여 차례 다른 지역을 돌면서 봤던 주택비용들과 충분히 비교해서 판단했다”고 답했다. 또한 “현대중공업 측에서도 괜찮다고 승인했기 때문에 그렇게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검찰은 안성쉼터가 관할 관청에 숙박업으로 신고되지 않았는데, 안성쉼터에서 숙박시설과 설비를 구비해서 약 52회 숙박을 했다며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숙박업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정대협 회원단체나 연대단체 회원들, 특히 그 공간을 역사교육, 평화교육, 인권교육의 장소로 사용하고 싶다고 할 경우에만 대여해줬다”며 “비용도 일반 숙박업처럼 받은 게 아니라, 수도비 등 실비기준으로 정했다”고 부연했다.
윤 의원의 공판은 한 차례 피고인 신문을 더 거친 뒤 결심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 1월 내에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