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가 경기도 안산시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와이퍼분회
새해가 되자마자 한국와이퍼 노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위장청산 의혹에 휩싸인 한국와이퍼가 노동자들에게 ‘휴업’과 ‘해고 예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공장 출입을 막으면서다.
4일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2일부터 경기도 안산시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에는 생산직뿐만 아니라 관리직까지 직원 대부분이 가입돼 있다. 이날 기준으로 조합원 수는 209명이다.
노조가 농성에 나선 건 사측이 일방적으로 회사 청산을 발표하고 갑자기 공장 문을 걸어잠그면서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기업 일본 덴소(DENSO)의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는 한국자회사인 한국와이퍼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9개월 전에 노사가 모두 마주앉아 ‘고용보장’ 합의를 해놓고 이를 뒤엎은 것이다. 일본 덴소가 고의적으로 한국와이퍼에 적자를 남기고 떠나는 ‘외국투자자본 먹튀’ 논란도 불거졌다.
이에 최 분회장은 지난 11월 7일부터 12월 20일까지 국회 앞에서 40일이 넘는 단식농성을 벌이며 한국와이퍼 위장청산 철회, 덴소코리아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결국 ‘회사 청산’이었다.
사측은 2022년 12월 29일 모든 조합원들에게 ‘휴업 시행’ 공지문을 보냈다. 주주총회 해산 결의에 따라 2023년 1월 8일부터 회사 청산 개시 절차가 진행되며, 이로 인해 공장 가동은 2022년 12월 30일로 중단되고, 그 후 생산업무를 포함한 모든 사업운영 업무가 중단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사측은 “이에 2023년 1월 1일부터 휴업을 실시함을 알려드린다”며 “본 휴업 기간 동안에는 통상임금의 100% 금액이 휴업으로 지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휴업수당을 줄 테니 모두 출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아가 사측은 조합원들 전원에게 ‘해고’를 예고했다. 사측은 “1월 8일부터 회사의 청산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회사에 잔류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청산인에 의해 별도의 고용관계종료(해고) 통지가 이뤄지게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조기퇴직’ 신청을 받겠다고 전했다.
이후 사측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12월 30일 새벽, 공장의 모든 출입문을 걸어 잠궜다. 그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판넬과 쇠사슬로 모든 출입문을 단단히 봉쇄했다. 소수 비조합원들만 공장 안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한국와이퍼에서 수십년간 일을 해온 조합원들은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측이 거듭된 조기퇴직 종용에도 거의 반응하고 버티던 조합원들이 체념을 하고 사측과 부제소합의를 하며 조금씩 이탈하기 시작했다.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장은 “조합원들이 모두 심리적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노조는 1월 2일 출근한 209명의 조합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공장 안에 마련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노조가 요구한 공간은 생산시설이 없는 구내식당과 1층 화장실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측이 제공한 것은 경비실 옆 좌변기 하나가 있는 남자화장실 뿐이었다. 최 분회장은 “조합원이 200명이 한칸 짜리 화장실을 남녀공용 화장실로 쓰라고 하더라. 엄동설한에 어떻게 계속 밖에서 얘기를 하느냐”고 황당해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가 경기도 안산시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와이퍼분회
노조가 이날 공장 안으로 진입한 것은 우연이었다고 한다. 최 분회장은 “(공장 밖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줄이 너무 길어서 (공장 안에 있는) 1층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둘러보다가 문 하나가 열려있길래 들어갔던 것”이라며 “이대로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오겠다는 생각에 계속 1층 현장에 있겠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측은 ‘휴업기간 중 회사의 사전 승인이 없는 한 회사에 출입을 할 수 없다’며 퇴거를 요구했지만, 최 분회장은 “그렇다면 정당한 노조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걸 안 해주면서 출입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노조 활동을 보장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1월 3일 노사간 교섭이 잠깐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사측은 ‘1월 7일까지만 구내식당 공간을 내주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다시 협의하자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사측을 믿지 못한다.
최 분회장은 “지금 공장 창문도 못으로 다 박고 있다. 7일이 지나면 절대로 노조가 공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사측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저희는 ‘7일 이후엔 정말로 쫓겨나는구나’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갈 수가 없다. 나가는 순간 우리는 쫓겨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측이 노조의 공장 진입을 막고 있는 이유는 위장청산 의혹을 가리기 위함이라고 노조는 보고 있다. 노조는 한국와이퍼가 사실은 청산되는 게 아니라 매각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다른 회사로 매각이 된다면 고용승계도 함께 이뤄질 수 있는데, 노조 파괴 목적으로 고용승계를 막기 위해 매각이 아니라 청산이라고 사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가 확보한 위장청산이라는 근거 정황도 이미 많다.
최 분회장은 “덴소코리아가 한국와이퍼는 ‘청산’이라서 고용승계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노조 청산을 위한 자산 매각으로 보인다”며 “설비를 비롯한 모든 자산을 (매각처로 추정되는) DY오토에 매각하기 위해 노조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가 현장에 출입하는 것조차 막겠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분회장은 “노사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측에 따르면, 사측이 ‘노조가 저러고 있으면 매각이 되겠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 청산이 아니라 매각이란 걸 노골적으로 얘기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청산이 아니라 매각이라면 저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매각이라면 당연히 고용승계가 돼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건 굉장히 파렴치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현재 209명의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오전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조합원들이 30명씩 조를 짜서 맞교대를 하며 공장 안을 24시간 지키고 있다. 노사 교섭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