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로 향하던 검찰의 대장동 수사가 김만배 씨에서 막혔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등의 진술 번복으로 이 대표의 측근이 구속되는 등 수사가 급물살을 탔지만, 또 다른 핵심 인물 김만배 씨는 이들과 달리 진술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현재 검찰의 수사는 이 대표로 바로 향하지 못한 채 김 씨와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 김 씨와 가까웠던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그의 돈거래와 로비 의혹이 연일 떠들썩하게 보도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전방위 압박에 김 씨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다. 이로 인해 한 달여 간 중단됐던 대장동 재판은 오는 13일부터 다시 열린다. 김 씨는 자신의 진술을 유지할까, 다른 이들처럼 태도를 바꾸고 검찰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까. 앞으로의 대장동 재판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재명으로 향했던 검찰의 대장동 수사, 끝내 드러나지 않은 이재명과의 연관성
검찰의 대장동 수사는 초기부터 이 대표를 향하고 있었다. 대장동 의혹은 민주당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당시 여권 유력 주자였던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 사업에 특혜와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에 의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한 특정 민간업체,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가 막대한 액수의 수익을 거둬들이기 위해 성남시에 손해를 끼쳤고, 이 과정에서 특혜, 비리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민간사업자 공모, 선정 등 대장동 사업을 총괄했던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이 이 대표와 오랜 인연을 쌓은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재명 몸통설'은 더욱 부각됐다.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으로 직접적인 이익을 얻었다거나 관여했다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측근으로 불리는 유 전 본부장이 연루됐다는 것만으로도 이 대표를 대장동 의혹의 배후로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유 전 본부장이 과거 선거를 도와준 사람은 맞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의미의 측근과는 다르다고 일관되게 선을 그었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지면서 국민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던 의혹인 만큼, 검찰 수사의 핵심 중 하나도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에 실제로 연루됐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낸 건 유 전 본부장과 대장동 사업 민간업자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등의 배임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였고, 이 대표와의 연관성은 찾아내지 못했다. 이 대표는 결국 기소조차 되지 못했다.
검찰의 공소장에 담긴 내용을 종합해 보면, 대장동 일당의 역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검찰은 대장동 민간업자들과 결탁한 유 전 본부장이 2015년 대장동 개발 사업자를 공모하고, 선정하고, 협약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특혜를 주고,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인 성남의뜰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와 그 자회사인 천화동인 1~7호에 배당 이익 등을 몰아줘 성남시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유 전 본부장은 배임 혐의뿐 아니라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3억 5,200여만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혐의, 김만배 씨로부터 대장동 사업에 기여한 대가로 700억원(공통비, 세금 등 제외 428억원)을 받기로 약속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만배 씨는 오랜 시간 법조 기자 생활 중 알게 된 정치·법조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로비를 하며 대장동 사업과 관련된 법적 리스크를 막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남욱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이 민간 개발로 추진됐던 2009년부터 정영학 회계사와 함께 대장동 사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대장동 공공개발 추진을 공언했던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 당선되자, 대장동 개발을 민관합동 방식으로라도 추진될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성남시의회와 유 전 본부장에 로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정영학 회계사는 민간업자에 수익이 많이 돌아가도록 수익 배분 구조를 설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민간업자들의 배당 이익은 총 4,040억원에 달한다. 김만배 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는 577억원의 배당금을 챙겼고, 화천대유가 지분 100%를 가진 천화동인 1호의 배당금은 1천 208억원, 김 씨 가족들이 대표인 천화동인 2호와 3호의 배당금은 각각 101억원이다. 이를 다 합치면, 배당 이익의 절반(49%)에 달한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1,007억원,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644억원의 배당금을 각각 나눠 가지기로 했다.
유 전 본부장이 받기로 했다는 428억원의 출처는 '정영학 녹취록'으로 알려졌다. 정 회계사는 향후 검찰 수사에 대한 우려로 자신을 포함한 대장동 일당들의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설명하는 메모 등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 초기 정 회계사는 이 자료를 모두 넘기며, 불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녹취록은 대장동 개발 사업자로 선정되기 전인 2012년부터 2014년 12월까지, 대장동 사업에 착수한 후 수천억원의 수익이 나오기 시작한 2019년부터 2021년 4월까지 녹음한 내용으로 법조계,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한 정황과 대장동 수익 배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 일부에는 수익 배분을 논의하는 대목에서 천화동인 1호와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김만배 씨는 유 전 본부장에게 '천화동인 1호는 남들은 다 네 걸로 안다. 내 것은 아니란 걸 안다'고 말하는 내용이나 유 전 본부장에게 대장동 개발 수익 가운데 약속한 428억원을 배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천화동인 1호 배당금을 증여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욱 변호사는 2021년 10월 13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김만배 씨로부터 (천화동인은) 본인의 것이 아니다, 유 전 본부장의 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지난 대선 과정에서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가 이재명 대표가 아니냐는 의혹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는 '대장동 그분'으로 불리며 대장동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돼 왔다. 다만 해당 녹취록 내용에 대해 유 전 본부장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었고, 김만배 씨는 "천화동인은 내 것"이라며 반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장동 일당 사이에서 이 대표와 대장동 의혹 사이 연관성을 부인하는 주장은 비교적 일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만배 씨는 2021년 10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재명 시장과 그렇게 케미가 맞는 사람이 아니다", "만일 이재명 시장이 우리를 봐주려고 했으면 단순하게 민영개발을 하게 해서 떼돈 벌도록 하고 뇌물을 받으면 되지 왜 어렵게 민관 합동 개발을 했겠나"라고 말했다. 남욱 변호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표를 두고 "씨알도 안 먹힌다"고 얘기한 바 있다.
진술 번복과 맞물린 묘한 석방 시점, 진술 유지한 김만배 압박하는 검찰의 수사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도 대장동 의혹과 이 대표 또는 이 대표의 측근들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재판이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다다르자, 돌연 이 대표가 재판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의 달라진 진술이었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김 전 부원장,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강제 수사에 잇따라 착수했다. 경기도 대변인 출신인 김 전 부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의 총괄부본부장을 맡았으며, 정 전 실장은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때부터 정책비서관으로 임명돼 공약 관리, 정책개발 등을 담당해 왔다. 두 사람 모두 이 대표의 최측근 인사들이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수익 중 유 전 본부장의 몫으로 결론 내렸던 428억원은 유 전 본부장, 김 전 부원장과 정 전 실장 3명이 이 대표의 대선 경선을 준비하기 위한 정치자금 용도였다고 주장한다. 천화동인 1호에 이 대표 측 몫이 차명으로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정 전 실장 등의 공소장에는 김만배 씨 등 민간업자들이 대장동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정 전 실장이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 전 본부장이 대장동 사업 이익을 민간업자에 몰아주기 위해 했던 특혜들이 정 전 실장에게도 보고됐고, 정 전 실장은 이를 승낙했다는 게 주요한 골자다. 다만 이 공소장에도 이 대표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시하지 못했고 김 전 부원장과 정 전 실장은 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김 전 부원장은 남욱 변호사가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전달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김 전 본부장의 공소장을 보면, 대선 경선 시기였던 2021년 4월부터 8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8억 4,700만원을 받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정진상 전 실장도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서 나온 2억 4천만원을 유 전 본부장을 거쳐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한 정 전 실장은 2019년 9월경, 2010년 10월경 유 전 본부장에게 따로 3천만원씩 뇌물을 받았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검찰의 공소장은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의 바뀐 진술을 기초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선 이들 덕분에 이 대표를 겨냥한 대장동 수사를 이어가는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그렇게 김 전 부원장과 정 전 실장이 차례로 구속됐고, 매우 공교롭게도 이 시기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는 석방됐다. 이들의 진술 번복 시점과 석방 시점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해준 대가로 풀려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일례로, 돈을 전달한 방법을 묻는 MBC '스트레이트'의 질문에 "그건 검사님한테 물어보세요"라는 유 전 본부장의 알쏭달쏭한 답변이 온라인상에서 널리 공유되기도 했다.
석방된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는 재판, 언론 인터뷰 등을 가리지 않고 이 대표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발언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남 변호사는 천화동인 1호는 이 대표 쪽 지분이라는 것을 김만배 씨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만배 씨 역시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면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대표의 측근들이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김 씨가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진술을 내놓지 않는다면 검찰의 수사는 진척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장동 일당 중 마지막으로 풀려난 김 씨의 입에 이목이 쏠렸으나, 그는 ‘천화동인 1호는 자신의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김 씨 측은 남 변호사 등의 바뀐 진술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적극 지적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곧장 이 대표에게로 향하지 못한 검찰의 수사는 김 씨 주변으로 번졌고, 지난달 14일 김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주변에 "내가 사라져야 끝날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주변에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는 최근 건강을 회복해, 지난 6일 검찰 조사를 다시 받았다. 자해까지 했던 김 씨가 검찰에 어떤 진술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장동 재판은 오는 13일부터 재개되는데, 앞으로 나오게 될 김 씨의 진술 내용이 대장동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의혹 외에도 이 대표를 겨눈 검찰의 수사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성남 FC 후원금 의혹'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기업에 160억원 후원금을 받고 이들 기업의 토지 용도 변경, 건물 신축 인허가 등 편의를 봐줬다는 내용이다. 2018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은 이미 경찰이 지난 3년간 수사한 끝에 무혐의로 결론 내린 것인데, 고발인 측이 이의신청을 하면서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고 재수사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검찰 출석 전 "정적 제거를 위한 조작 수사, 표적 수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며 "검찰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있다. '답정 기소'"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