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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40조원 푸는 특례보금자리론, 이게 서민금융대책인가

정부가 올해 한시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특례보금자리론의 구체적인 윤곽이 공개됐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주택 가격 상한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높이고 대출 한도도 5억 원으로 늘렸다. 무엇보다 연소득 7천만원 이하를 대상으로 했던 기존 보금자리론과 달리 아예 소득 요건을 두지 않아 고소득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고, 2주택자도 기존 주택을 2년 이내 처분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금리는 시장금리보다 0.4~0.9% 포인트 이상 낮은 4%대로 정했다. 기존 대출 상환에 따른 중도상환수수료도 면제해준다.

정부는 오는 30일부터 이 상품을 출시해 1년간 39조6천억 원을 공급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보다 많은 서민 차주들이 금리 경감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번 정책이 서민과 실수요자의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 국면에서 정부가 나서서 이자 부담을 낮추려는 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9억 원에 달하는 주택을 보유하고 5억 원의 대출을 끌어 쓰는 사람을 정부가 나서서 돕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5억원에 대해 5%의 이자라면 한 달에 이자만 2백만원 이상 부담해야 한다. '서민'이 '실수요'를 위해 이 정도 이자를 감수하면서 집을 사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보조금 지급과 다를 것이 없다. 2주택자와 고소득자까지 '특례'를 적용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우리나라 가계 금융부채 총액은 지난해 3/4분기 기준 1천757조 원이고 이 가운데 담보대출은 1천8조원에 달한다. 특히 담보대출의 거의 대부분은 소득 상위 20%가 진 빚이다. 자산을 늘리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투자를 위해 빚을 냈다. 그런데 이들의 이자를 줄여주기 위해 40조원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금융위는 20%인 법정 최고금리를 최대 27.9%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저신용자는 주로 저축은행·카드사·대부업계를 이용하는데, 이들이 자금조달 원가를 이유로 '대출 중단'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해보자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특례를 만들어 4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가 막상 저신용자에 대해선 '더 높은 이자를 받아가게 하면 그 뿐'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셈이다. 누가 서민이고, 무엇이 공정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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