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접점 찾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7일 김 전 회장 귀국으로 새 국면을 맞았지만 정작 구속영장에는 이 대표와 연관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해 대북송금을 위한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뇌물공여, 횡령·배임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애초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변호사비 대납 건은 점점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김성태-이화영-이재명’ 구도 그리는 검찰, 기초 사실부터 삐걱
김성태 전 회장이 받는 주요 혐의는 대북송금(외국환거래법 위반) 건이다. 2018~2019년 64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72억원)를 중국으로 밀반입해 북측 고위급 인사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이 대북사업에 의지를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쌍방울은 2019년 1월과 5월 중국 선양에서 북측의 남북경협 창구 기관인 조선아태평양평화위원회,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경협 관련 합의를 맺었다. 이때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가 북한 희토류 개발 등 사업권을 약정받았다. 검찰은 북측 인사에게 건너간 72억원을 경제협력 사업 합의 대가로 본다.
돈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던, 현행법 위반 소지는 다분해 보인다. 김 전 회장도 인정한다.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한발 더 나아간다. 이 돈의 출처가 회삿돈, 즉 횡령의 결과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김 전 회장은 “횡령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귀국 직전 인터뷰에서 “제 개인 돈을 준 거니까 제 돈 날린 거지, 회삿돈 날린 거 하나도 없다”며 “그 당시 문재인 정권 때는 남북관계가 좋았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송금한 자금이 회삿돈인지 아닌지, 외환거래법 위반인지 아닌지 규명하는 과정에 이재명 대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연결 고리는 이화영 전 부지사다.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인 2018~2020년 부지사를 지냈다. 검찰에게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건과 이 대표를 연결 짓기 위한 핵심 인물이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북측과 경협 관련 합의서를 작성할 때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쌍방울이 이 전 부지사에 뇌물을 줘가며 이 대표로부터 대북사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고 보는 듯하지만 여러모로 무리한 인식이다.
무엇보다 시점이 맞지 않는다. 쌍방울은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에서 일하기 훨씬 이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
이 전 부지사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쌍방울 고문을 지내면서 급여 1억 8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쌍방울이 이 전 부지사에 연줄을 대기 시작한 2011년은 이 전 부지사가 민주당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해다. 이후 2008년, 동북아 관련 경제협력, 정책연구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를 설립했으며, 부지사 취임 직전까지 이사장 자리를 지켰다. 이후 2017년 3월 사외이사로 선임돼, 부지사 취임 직전인 2018년 6월까지 재직했다. 사외이사 급여로는 3,800만원을 받았다. 쌍방울 법인카드가 제공된 것도 2015년부터다.
대북사업 의지를 가진 김 전 회장이 이화영 당시 민주당 특위원장과 관계를 고려한 일종의 로비 성격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시기 이 전 부지사와 이 대표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였다.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 측근이라는 시각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이 전 부지사는 ‘친문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인사다. 2017년 문재인·이재명·안희정 3파전으로 치러진 대선 당시 이 전 부지사는 이재명 캠프가 아닌 문 전 대통령 선대위 국정자문단 공동단장을 지냈다.
당시만 해도 성남시장 출신 이 대표는 당내에서 사실상 아웃사이더였다. 촛불 정국 이후 대선후보급으로 부상하면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지만, 당내 세력은 미미했다. 당시 사정을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갑작스레 도지사가 된 이 대표는 일종의 인력난에 시달렸다. 여기저기 인재를 구해야 했고, 이 전 부지사가 영입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각으로 이 전 부지사를 이 대표 측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는 뜻이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설립한 동북아평화경제협회의 2019년 ‘남북 광물자원 협력 기획’에 주목하고 있다. 쌍방울이 북한 광물자원 개발을 신규 사업으로 추진한 시점과 겹친다. 검찰은 당시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대북사업에 편의를 지원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부지사가 쌍방울에 편의를 봐줬으니 당시 도지사이던 이 대표가 연루됐을 수 있다는 추론이다.
하지만 당시 이 대표와 이 전 부지사의 정치적 역학관계, 이 전 부지사가 대북사업 의지가 있던 김 전 회장과 오래전부터 연을 맺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의 추론은 빈틈이 많다. 김 전 회장이 당시 문재인 정부와 가까웠던 대북 전문가인 이 전 부지사와 사업협력을 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검찰 수사 단초된 변호사비 대납 의혹
현재 벌어지는 김성태 전 회장을 향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는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선임된 변호인 선임료를 쌍방울이 대신 내줬다는 것이다.
검찰의 ‘쌍방울-이재명’ 유착관계 수사 단초가 된 건 녹취록이었다. 녹취록을 제보한 A 씨와 그의 동업자 B 씨, 이 대표 변호인단에 포함된 이태형 변호사의 대화가 담겼다. 제보자 A 씨의 지인이 전관 변호사를 찾던 와중 동업자 B 씨가 A 씨에게 이 변호사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 이 변호사가 이 대표 사건 수임료로 20억원 이상을 받았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현금 3억원과 함께 나머지는 3년 후 팔 수 있는 상장사 주식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녹취록의 신빙성은 금세 무너졌다. 동업자 B 씨는 녹취록이 검찰에 넘어간 다음달 조사 과정에서 이 변호사 수임료가 20여억원에 달했다는 내용은 자신과 제보자 A 씨가 지어낸 것이라고 진술했다. 우선 A 씨 지인에게 이 변호사 수임료를 부풀려서 전하고, 이후 수임료를 깎았다면서 별도 기부금을 받아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설사 녹취록에 일부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십억원 규모의 선임료는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변호사 수임료에는 사건의 복잡성 등이 반영되는데, 당시 사건은 논리구조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2018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친형을 강제입원 시킨 적이 없다’고 한 말이 허위사실인지를 따지는 사건이었다. 누구보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장본인이면서 변호사이기도 한 이 대표가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스스로 수행했다는 후문이다. 변호인단 중에서는 이 변호사가 주로 역할을 했으며, 변호인단 상당수는 지지 표명을 위한 연서명 성격이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애초 변호사비로 수십억원을 줄 사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2021년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저는 변호사비를 다 지불했고 그 금액은 2억5천만원이 좀 넘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선임한 것은 개인 4명, 법무법인 6명이고, 민변 전임 회장 등이 지지 차원에서 변론에 참여 안 하고 서명해준 게 있어서 총 14명”이라며 “대부분 사법연수원 동기, 법대 친구들 등”이라고 말했다. 1심 재판 변호인단 14명을 포함해 파기환송심까지 선임된 변호인단은 총 28명이다.
이재명 변호인과 연결되지 않는 쌍방울 돈 줄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핵심은 돈 줄이다. 녹취록에서 언급되는 ‘3년 후 팔 수 있는 주식’이 쌍방울의 전환사채(CB)라는 의혹이 나왔고, 검찰 수사도 쌍방울 CB로 향했다.
쌍방울이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발행한 총 200억원의 CB가 언론과 검찰 타깃이 됐지만, 해당 CB가 이재명 대표 변호인들에 흘러 들어간 정황조차 확인된 게 없다.
2018년 발행한 CB는 김성태 전 회장 소유의 투자 회사인 착한이인베스트가 전량 매수했다. 2019년 발행한 CB를 사들인 희호컴퍼니와 고구려37은 각각 김 전 회장 친인척과 측근이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매수 기업이 페이퍼컴퍼니라거나, 자금 흐름이 수상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 대표 변호인단과의 연관성은 설명되지 못했다.
쌍방울이 이 대표 변호인들에게 계열사 사외이사 자리를 내어주면서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대표 변호인단 가운데 쌍방울 계열사 사외이사를 지낸 인물은 이태형 변호사와 나승철 변호사 등 2명이다. 이 변호사는 비비안에서 2019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1년간 약 1,700만원의 급여를 수령했다. 나 변호사는 나노스에서 2020년 9월~2021년 2월, 5개월간 약 1,5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이 받은 급여를 이 대표 변호사비로 볼 근거는 없다.
쌍방울 계열사는 이 변호사와 나 변호사뿐 아니라 다수의 법조인을 사외이사로 영입해왔다. 쌍방울 상장 계열사 사외이사와 감사 중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 전현직 법조인은 20명 이상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윤석열 라인’도 예외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이던 2020년 8월 간부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던진 이건령 전 대검찰청 공안수사지원과장은 이듬해 아이오케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가 사임한 때는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과 추 장관 간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2020년~2022년 쌍방울과 미래산업에서 사외이사를 지낸 이남석 전 대검 중수부 검사도 윤 대통령과 연이 깊다.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던 2013년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던 윤우진 전 서울 용산세무서장에게 자신의 후배인 이남석을 변호인으로 소개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윤석열은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의혹을 부인했다.
법조인 외에도 홍경표 윤사모(윤석열을사랑하는모임) 중앙회장이 2021년~2022년 아이오케이 사외이사를 지냈다. ‘쌍방울 로비는 친윤 로비’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에는 변호사비 대납이 현금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역시 다소 엉뚱하다. 보도에 따르면, 쌍방울 계열사가 이 변호사의 소속 법무법인에 20억원을 이체했다. 이 변호사가 직접 받은 것도 아닐뿐더러, 입금된 돈의 성격도 변호사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당 돈은 ‘윤석열 라인’ 이 전 검사가 담당한 M&A 건과 관련해 들어간 돈이었다. 이른바 ‘에스크로’다.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협상이 완료될 때까지 인수 기업이 제3자(법무법인)에 거래 대금을 잠시 맡겨두는 것으로, 거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검찰의 김성태 압박 거세질 듯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도 쌍방울과 이 대표 관계는 여전히 점선이다. 결국 검찰은 이 대표가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부인한 것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2021년 9월 불기소 처분했다. 쌍방울이 이 대표 변호인들에게 변호사비를 줬다는 각종 의혹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은 아직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불기소 결정문에서 검찰은 “쌍방울그룹이 (이 대표의) 변호사비를 대납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적시했다. 쌍방울 전환사채가 이태형 변호사에게 대납 됐을 가능성, 이 변호사와 나승철 변호사의 사외이사 급여가 변호사비 명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성태 전 회장이 해외 도피 중이라는 점 등을 들며 “공소시효 내 진실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혐의는 점점 사라지고 쌍방울에 대한 전방위적 수수만 남았다. 지난해 말부터 검찰은 쌍방울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쌍방울 전현직 재무담당 임직원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 전 회장 동생인 쌍방울그룹 부회장은 김 전 회장 도피를 도운 혐의로 지난 13일 구속됐으며, 김 전 회장과 함께 태국에서 체포된 양선길 쌍방울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사촌 형이다. 전방위 압박을 받던 김 전 회장은 귀국 전 인터뷰에서 “수사 환경이나 가족들 환경이 너무 안 좋아 제가 빨리 들어가 사실대로 밝히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은 애초부터 없는 걸 뒤지려고 하고 있다”며 “이 대표 관련 의혹에 대한 무리한 수사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쌍방울과 이 대표 관계가 안 나오니까 일단 김 전 회장을 터는 것 아니겠냐”며 “검찰이 김 전 회장 회사와 가족을 건드리면 압박을 느껴 허위진술이 나올 수도 있다.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