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홍의 원전 없는 나라] 중대사고가 만만한가

고층빌딩의 대형화재는 정상사고에 해당한다.( 9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의 한 오피스텔 주차타워에서 큰 불이 발생했다.) ⓒ민중의소리


도심에서 갑자기 거대한 지옥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영화 같은 이야기 같지만, 고층빌딩 화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뉴스를 통해 가끔 강렬하게 각인되는 장면이고,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형재난에 속한다.

작년 9월 16일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서 42층(218미터) 높이 빌딩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였다. 2020년 10월 8일 울산시에서 33층(113미터) 높이 주상복합아파트가 타올랐다. 최근엔 1월 9일 부산시에서 23층 높이 주차타워가 불기둥으로 변해 온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고층빌딩의 화재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일까? 전기 합선, 가스 누출, 단순 불장난 또는 실수, 심지어 방화까지 매우 다양한 원인으로 화재는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화재는 충분히 예상되는 사고다. 그런 만큼 고층빌딩은 일반 건축보다 더욱 엄격한 안전 규정이 적용되고 촘촘한 화재 예방 설비와 조기 진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불이 나더라도 대형화재로 이어지는 일은 허용하지 않도록 설계된다. 그런데 종종 고층빌딩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 세계다.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대형 사고를 설명하는 이론이 ‘정상사고(Normal Accident)’이다. 이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복잡한 기술기반 시스템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고,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대형 사고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정상사고’다. 정상사고를 처음 접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핵발전소 폭발, 화학공장 폭발, 항공기 충돌 같은 참사를 어떻게 ‘정상’ 사고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핵발전소의 ‘설계기준 사고’
시스템에서 통제되지 못하면 ‘중대사고’로
핵발전소 중대사고 없다는 착각에 빠진 한국


고층빌딩에서 막 불이 난 상태를 핵산업계는 ‘설계기준 사고’라고 부른다. 이미 설계에 반영되어 있어서 적절히 수습되고 안전이 유지되는 사고다. 그러나 불이 제때 수습되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상태를 핵산업계는 ‘중대사고’라고 한다. ‘설계기준 사고’가 설계(시스템) 내에서 통제되지 않고 ‘중대사고’로 이어진 경우다.

핵발전소에서 중대사고는 원자로의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핵연료 냉각에 실패하면 중대사고가 발생한다. 핵발전소를 설계할 때, 핵연료 냉각에 위험을 초래하는 사고들-전기공급 중단, 냉각펌프 고장, 냉각배관 파열 등-을 미리 설계에 반영해서 유사시에 안전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것이 ‘설계기준 사고’ 개념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여러 요인이 겹치면 ‘설계기준 사고’가 제때 수습되지 않고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중대사고’로 발전한다.

2011년 3월 10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장면 ⓒ요미우리 온라인 캡처


이러한 핵발전소 중대사고는 ‘지극히’ 정상사고에 해당한다. 미국 쓰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정상사고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유독 대한민국만 중대사고는 발생하지 않다는 착각 속에 있는 것 같다.

고리핵발전소 2호기가 좋은 사례다.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중대사고 상황에서 방사능이 핵발전소 외부로 빠르게 확산되는 ‘우회사고’를 평가에서 제외했다. 우회사고를 제외한 만큼 중대사고 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중대사고의 가장 보편적인 전개가 ‘우회사고’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의 중대사고는 대표적인 정상사고다. 지금은 작고한 예일 대학교의 찰스 페로 교수는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를 바탕으로 정상사고 이론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핵산업계에 묻는다. 중대사고가 그렇게 우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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