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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칼럼] 숙 할머니와의 때 이른 작별, 그리고 주거 불평등

지난해 3월 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거리와 고시원 생활을 오래하다 임대주택에서 몇 달 머무르지도 못하고 요양병원에서 마주한 죽음이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간질환이었지만,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가 박탈된 상태를 방치한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 낸 죽음이다.

아랫마을에 종종 방문하던 숙 할머니는 겨울철에도 양말도 운동화도 신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발이 붓고 아팠기에, 양말도 신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슬리퍼류의 신발을 주로 신었다. 점심시간에 방문해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한 밥과 반찬을 씹기 어려웠기에, 밥을 물에 말아 조금 먹는 게 고작이었다. 오랜 시간 지낸 고시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숙 할머니가 임대주택에 들어가더니 달라졌다. 가전기기와 집기가 미처 구비 되기도 전에 도보로 갈 수 있는 시장과 마트를 돌며, 자신이 좋아하는 식자재를 어디서 더 저렴하게 파는 지 파악을 마쳤다. 내가 ‘숙 할머니는 먹는 것에 진심이 아닌 사람’이라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났을 때 ‘어떤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먹는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가 임대주택에 들어가더니 달라졌다’는 내 표현은 틀렸다. 단념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보통의 일상을, 집 다운 집에서 다시 살게 되면서 잠시 회복했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 2022.12.05.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약자복지”, “비정상 거처 해소”를 공약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정부에서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을 보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7천억이나 무더기 삭감했다. 지난해 8월 서울 수도권에 집중된 기후 재난,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서 살던 4명이 목숨을 잃은 지 2달도 지나지 않아 발표된 예산안이었다. 

그런 점에서 후보 시절 공약이 기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동산 소유주들에 대한 각종 세금 감면과 혜택을 확대하면서, 취약 계층 주거복지의 핵심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삭감하려 하다니. 임기 첫해부터 공약 파기를 넘어, 정책 후퇴를 공표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숙 할머니와 같이 집이 아닌 공간, 집답지 않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거빈곤가구는 약 200만에 달한다. 한국 경제가 발전해 높고 화려한 건물이 도시를 뒤덮고 있지만, 빈곤과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책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의 저자 김윤영은 지난해 10월~ 12월 동안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삭감을 저지하기 위해 사회단체들이 국회 앞에 차린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연 북 콘서트에서 “복지와 권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급격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챙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적합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용인된 착취가 소수에게 이윤을 집중시켰고, 착취조차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 이들은 가장 간편하고 비용이 덜 드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격리돼 관리 됐다. 인간다움이나 기본권보다 이윤이 중시되는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삶과 죽음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은 자본의 폭력적 강제철거와 공권력의 폭력으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14주기였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용산4구역과 용산역 가까이엔 코레일의 철도정비창 부지가 있다. 축구장 70개가 들어갈 정도의 대규모 공공용지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 코레일은 이 땅을 헐값에 민간에 매각해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할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공공기관 자산 민간 매각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절반이 바로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용산정비창 일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구상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07.26. ⓒ뉴시스

빈곤사회연대 등 사회단체로 구성된 ‘용산 정비창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대위’는 1년 전 용산참사 13주기를 기점으로, 용산역에서 시작해 철도정비창 부지를 지나 용산참사 현장에서 끝 마치는 ‘용산다크투어’를 진행중이다. 공공의 땅을 민간에 특혜를 주며 헐값에 매각하는 것을 반대하고, 모든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 등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투어를 진행하는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용산참사의 본질은 4천만원 이하의 전셋집을 모두 없애고, 수 억에서 수십 억원 대의 고급 아파트를 지으며 도시의 가격 자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이는 개발”이라고 말했다.

2009년 용산참사로부터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10년이 더 훌쩍 지났지만, 참사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채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개발 지역에는 이 시간에도 ‘제2의 용산참사’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2018년 11월 폭력적인 개발과 철거로 세상을 떠난 서울시 마포구 아현2구역 철거민 박준경. 그가 어머니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에 살던 집을 철거한 후 세워진 주상복합 ‘마포 더 클래시’의 전세가는 4~11억원(네이버 부동산 기준)에 달한다.

언론에선 연일 집값이 하락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하락했다고 하는데, 집 없는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수준이다. 아직 한참 더 떨어져야 할 것 같은데,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큰일이라도 난 양 호들갑이다. 정부와 권력자들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부추기지만, 실제 서민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극심한 주거불안과 불평등이다.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면 보증금, 월세 인상과 이사를 걱정하고, 집 구하는 과정에선 전세 사기를 노리는 중개업자와 가짜 집주인을 피하기 위해 마음을 졸여야 한다. 개발 정책에 쫓겨나 생활권에서 더 멀리 밀려난다. 고시원과 쪽방, 여인숙, 거리 그리고 시설과 같이 집도 아니고 안전하지도 않은 공간으로 내몰린다. 세입자의 지위는 여전히 불안하고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5.7%밖에 되지 않는다. 삶의 권리가 아니라 상품으로 팔리는 주택, 구매력과 이윤을 중심으로 설계된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 낸 결과다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홈리스추모제 배경 현수막. 거리에서 세상을 떠난 432명의 영정이 들어가 있다. 2022.12.22 ⓒ서재현


매년 12월 동짓날엔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한 해 동안 거리와 쪽방, 고시원 등지의 열악한 거처에서 돌아가신 홈리스 당사자들을 추모하고, 홈리스 상태에서 박탈된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다. 지난해 홈리스추모제에선 432명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했다.

거기에 숙 할머니도 있었다. 숙 할머니가 조금 더 빨리 임대주택에 입주했다면, 아니 한국 사회가 쪽방·고시원과 같이 집 아닌, 집답지 않은 공간에서의 삶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숙 할머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주 지나는 길에 있는 아파트 외벽에 ‘안전진단결과 낮은 등급을 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경축’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달려 있다. 섬뜩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결과를 경축하는 위험한 질서가 통용되는 사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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