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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의 등장, 은화를 무너뜨리다 _ 금본위제도와 은본위제도

[연재] 설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 ①

편집자주

지난 추석에 이어 설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아메리카 대륙의 등장, 은화를 무너뜨리다 _ 금본위제도와 은본위제도
② 영미의 지지 아래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우다 _ 밸푸어 선언
③ 월스트리트가 벌인 초대형 사기극 _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④ 중국, 일본의 무릎을 잠시 꿇렸지만 _ 희토류 분쟁


성경 마태복음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된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에게 “주변 사람들이 죄를 저질렀을 때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나요? 한 일곱 번쯤 용서하면 됩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예수는 “일곱 번이 아니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답한다. 베드로는 일곱 번쯤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는 그의 일흔 배, 즉 490번이라도 이웃을 기꺼이 용서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종 한 명이 나라에 큰 빚을 졌는데 빚의 규모가 무려 1만 달란트에 이르렀다. 왕이 그를 불러 크게 나무란 뒤 빚을 진 종과 가족들을 비롯해 이들의 전 재산까지 다 팔아 빚을 갚으라고 다그쳤다. 놀란 종이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빌자, 왕은 그를 불쌍하게 여겨 빚을 탕감해 줬다. 모르긴 몰라도 왕이 무척 인자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빚을 탕감 받은 종의 행동은 달랐다. 종에게도 빚을 진 자가 있었는데 빚의 규모가 100데나리온이었다. 종은 그 돈을 갚지 않은 빚쟁이를 붙잡아 옥에 가둬버렸다. 자기는 왕으로부터 1만 달란트에 이르는 빚을 탕감 받은 주제에, 고작 빌려준 돈 100데나리온을 기어이 받겠다고 이웃을 가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노발대발하며 종을 붙잡아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야, 이 나쁜 놈아! 네가 나한테 하도 용서를 구하기에 네 빚을 전부 탕감해 줬는데, 너도 나처럼 네 이웃을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해 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말이다. 결국 왕은 괘씸한 마음에 1만 달란트를 갚지 않은 죄를 물어 종을 감옥에 가둬버렸다.

금화와 은화의 대략적 가치

예수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신으로부터 받은 용서가 있으니, 서로를 더 많이 용서하라”는 교훈을 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도덕적인 교훈은 잠시 미뤄두고, 우리의 관심사인 화폐로 시선을 모아보자.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달란트와 데나리온은 로마 제국의 화폐였다.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이들 또한 로마의 화폐를 사용했다.

둘 중 대중들이 더 많이 사용한 화폐는 데나리온이었다. 데나리온은 은으로 만든 동전으로 무게가 약 4g 정도였다. 이 동전 앞면에는 로마 제국의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Tiberius Caesar Augustus)의 얼굴이, 뒷면에는 앉아있는 평화의 여신이 각각 새겨져 있었다. 2000년 전 제작됐지만 매우 정교한 동전이었던 셈이다.

당시 1데나리온은 농장 일꾼들의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었다. 로마 병사들의 일당도 1데나리온 정도였다고 한다. 시대가 너무 달라 추정이 쉽지 않지만 대략 짐작하자면 얼추 10만 원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데나리온이 은화였던 반면 달란트는 은화와 금화에서 동시에 사용하는 화폐 단위였다. 그렇다면 달란트의 가치는 어느 정도였을까? 역사학자들은 은화 1달란트가 은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한다고 분석한다(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이견들이 있다).

그렇다면 은화 1달란트는 6,000일에 해당하는 품삯, 즉 보통 농장 일꾼이나 군인들이 16년 넘게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이 된다. 하루 일당을 10만 원으로 잡으면 1달란트는 무려 6억 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금화 1달란트는 은화 12~15달란트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 은화 1달란트에 15를 곱하면 금화 1달란트는 대략 90억 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예수의 이야기에 등장한 종은 왕으로부터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다. 만약 이때 사용된 화폐가 은화라면 이 돈은 무려 6조 원에 이른다! 너무 엄청난 금액이라고?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만약 그 달란트가 금화였다면 그 가치는 90조 원으로 치솟는다. 이 때문에 성경 연구학자들은 예수의 이야기가 실제 금액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비유였다고 해석한다.

실제 1만 달란트를 탕감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거금을 탕감해줬다는 뜻으로 예수가 1만 달란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금화이건 은화이건 실로 엄청난 금액을 왕으로부터 탕감 받은 셈인데, 그런 자가 고작 1,000만 원(100데나리온)을 받겠다고 빚쟁이를 독촉했으니 왕이 열 받을 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그 종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직업이 뭐였기에 6조 원, 혹은 90조 원이나 왕에게 빌릴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왕은 얼마나 부자였기에 그 정도 거금을 쿨하게 탕감해 줬을까? 그게 더 대단한데!

은화,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금과 은은 고대로부터 중요한 화폐의 기능을 했다. 금화는 기원전 16세기~기원전 6세기 존재했던 소아시아 지역 고대왕국 리디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리디아는 금은 물론 은도 풍부했던 나라이기에 금화뿐 아니라 은화도 주조해 사용했다.

고대 로마제국도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사용했다. 앞에서 언급한 달란트와 데나리온이 바로 그 화폐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대중들이 많이 사용한 화폐는 금화가 아니라 은화였다. 금화는 가치가 너무 높아 일반인들이 쉽게 만질 수 있는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가치 면에서는 금이 은보다 높았고, 실제 사용되는 빈도로는 은화가 금화보다 더 유용했던 셈이다.

로마 시대 때 사용됐던 금화 ⓒ요크 박물관

그런데 실생활에서 훨씬 유용했던 은화가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위(本位)라는 다소 어려운 단어를 먼저 알아야 한다.

본위란 ‘뿌리에 해당하는 지위’, 혹은 ‘근원적 지위’라는 뜻이다.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니 은본위제도(銀本位制度)니 하는 어려운 말들이 나온다. 말 그대로 풀이해보면, 금본위제도란 화폐의 근원을 금으로 삼는 제도를 뜻하고, 은본위제도란 화폐의 근원을 은으로 삼는 제도를 말한다.

금본위제도가 확립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 두 가지 모두를 사용했다. 이럴 경우 딱히 금과 은 중 하나를 뿌리라고 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제도를 금은복본위제도(金銀複本位制度), 즉 금과 은 모두를 뿌리로 삼고 있는 제도라고 불렀다.

유럽인들은 이른바 대항해시대라는 것을 통해 16세기 이후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들이 아메리카에서 찾으려 했던 곳은 엘도라도라고 불렸던 황금의 마을이었지만, 이들이 정작 찾은 것은 막대한 양의 은이 묻혀있는 은광이었다. 유럽인들은 신이 나서 은을 채굴했고 이것을 은화로 만들었다. 16~19세기 유럽 백인들이 새로 만든 멕시코산 은화는 30만 개에 이르렀다.

문제는 금화에 비해 늘어난 은화의 양이 너무 많았다는 데 있었다. 종전에는 은화 10개를 가져가면 금화 한 개로 바꿔줬는데, 신대륙의 은화가 대거 만들어진 이후 이것이 불가능해졌다. 은화 10개로 금화 한 개를 바꿨다가는 온 세계 금화를 다 동원해도 유통되는 은화의 양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점차 금화의 가치는 높아졌고 시중에 널린 은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처음에는 은화 10개면 금화 한 개를 내주던 시대에서 은화 20개, 아니 30개를 제안해도 금화 한 개를 얻기 어려워졌다.

한 세상에 우두머리가 둘이 있을 수 없다고 했던가? 금화와 은화 두 가지가 모두 화폐의 뿌리로 인정받았던 금은복본위제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금이나 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제일 먼저 칼을 빼든 곳은 영국이었다. 애초 영국은 신대륙을 독차지하고 은화로 떵떵거리던 스페인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1816년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영국은 더 이상 은화를 화폐로 쳐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강대국 영국이 정식으로 금본위제도를 채택한 것이다.

이후에도 한 동안 금과 은은 세계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통용됐지만 1870년대 들어 대세가 금으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1871년 독일이 정식으로 금본위제도를 채택했고, 1873년에는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가 금본위제도 대열에 합류했다. 1876년에는 영국이라면 끔찍이도 싫어했던 프랑스마저 금본위제도를 채택했다. 1877년 일본도 금본위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은화의 시대는 저물고 마침내 금이 화폐의 유일한 뿌리로 인정받았다.

돈을 들고 가면 금을 내줘야 하는 제도

금이 유일한 화폐의 뿌리가 됐다고 해서 실제로 금화가 세상에 요란스럽게 유통된 것은 아니었다. 일단 금화는 들고 다니기에 무겁고 불편했다. 게다가 금화가 유통되면서 금화를 속임수에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동그란 모양의 금화 테두리 부분을 사포로 갈아내면 금가루가 떨어진다. 물론 이렇게 하면 금화의 무게는 줄어들지만, 사람들이 금화를 사용할 때 무게를 일일이 재보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여러 금화의 테두리를 갈면 꽤 많은 양의 금가루를 모을 수 있었다.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느냐?”고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실제 이런 식으로 금화에서 금가루를 긁어모아 새로운 금화를 만든 사람들이 정말로 있었다.

궁금하면 지금 집안에 굴러다니는 100원 짜리 동전(500원 짜리도 상관없다)을 하나 꺼내보라. 테두리 부분을 보면 오톨도톨한 홈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동전을 갈아내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오톨도톨한 부분이 사라졌다면 누군가 동전을 갈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정부는 그 동전을 즉시 폐기하고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아무튼 진짜로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금을 은행에 보관하고, 대신 은행이 발행한 지폐를 거래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은행은 금고에 보관한 금의 양만큼의 지폐만 찍어내야 했다. 언제든지 고객들이 지폐를 은행에 들고 가면 은행은 그 액수만큼 금을 내줘야 했다는 뜻이다.

금화가 시중에 유통되는 모습은 점차 사라졌지만, 금본위제도 아래에서 금은 여전히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금을 많이 보유한 자는 그만큼의 지폐를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주인공이었던 금은 20세기 초반 새롭게 부상한 최강대국 미국의 화폐 달러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상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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