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월스트리트가 벌인 초대형 사기극 _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연재] 설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 ③

*편집자 주 - 지난 추석에 이어 설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아메리카 대륙의 등장, 은화를 무너뜨리다 _ 금본위제도와 은본위제도
② 영미의 지지 아래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우다 _ 밸푸어 선언
③ 월스트리트가 벌인 초대형 사기극 _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④ 중국, 일본의 무릎을 잠시 꿇렸지만 _ 희토류 분쟁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2009년 『자본주의 :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무어는 영화에서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다.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 증시의 주가가 폭락했고 미국의 초대형 금융회사들이 속속 망했다. 미국의 4대 거대 은행으로 군림했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조차 2008년 9월 15일 파산 신청을 했다. 이 사태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영국 공영방송 BBC는 『리먼 브라더스의 마지막 날(The Last Days of Lehman Brothers)』이라는 제목의 영화까지 제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희한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분명 뉴스에서는 매일 이 충격적인 금융위기의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는데, 정작 국민들은 도대체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는 이 사태를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라고 부르기도 했고, 문제의 원인이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라는 파생상품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무어는 직접 월가를 찾아 소리 높여 외쳤다. “우리가 신용부도스와프라는 파생상품 때문에 금융위기를 맞았다는데, 이게 도대체 뭐요? 이거 나한테 설명 좀 해 줄 사람 없어요?”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설명해 줄 사람을 찾은 무어. 설명자는 친절하게 파생상품의 개념부터 알려준다. “파생상품이란 실물 자산에 이상한 금융 기술을 걸어서 자산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에 돈을 걸 수 있게 해 주는 거예요”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무어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결국 도박하고 비슷한 거네요?”
“그렇죠.”

대답을 들은 무어가 황당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던진다.

“그렇다면 그 짓을 도대체 왜 하는 거요?”

월가의 사기극

나는 신용부도스와프가 뭔지, 파생상품이 뭔지 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설명을 할 자신은 도무지 없다. “혹시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의심을 받아도 할 수 없다(그런데 진짜로 알긴 압니다!).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금융이란 남아도는 돈을 필요한 곳으로 돌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원리가 현대 금융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암호처럼 바뀌었다.

은행 창구에 가서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하고 싶습니다”라고 한 마디 해보라. 창구 직원이 친절한 표정으로 “ELS를 찾으시는군요. 저희가 이번에 특별히 추천해드리는 원금 보장 ELS는 유로스탁 50지수와 홍콩 항생지수, 미국 S&P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합니다. 특히 이 상품은 행사 가격이 단계적으로 하락하는 스텝다운형 구조로 돼 있어서 6개월마다 조기상환 기회가 주어지는 특혜가 있답니다!”라고 답을 해 줄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따위 설명은 아무리 들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이런 복잡한 금융상품은 대부분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미국 금융권에서 탄생했다. 세계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미국 명문대 출신들이 이곳에 모여 이런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무어의 이야기처럼 “도대체 그 짓을 왜 하느냐?”는 말이다.

월가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자기들의 재산을 불린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는 조건을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돈을 빌릴 때 신중하기 마련이다. 이자율이 적정한지, 내가 돈을 갚을 수 있는지 등을 꼼꼼히 고려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월가는 사람들의 그런 이성을 마비시키고 싶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돈을 마구 빌려 써야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온갖 이름의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든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말한다. “이게 뭔 뜻인지 모르시겠죠?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생각 없이 빌려 쓰세요.”

탐욕의 끝판왕,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는 월가의 절제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데 있다. 모든 금융위기는 빌려준 돈을 제때 받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돈을 빌려줄 때에는 상대가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하지만 월가는 이런 절제력을 잃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월가는 미국 국민들에게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국민들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가도록 조장한 것이다.

사실 이는 월가 입장에서 꽤 안전한 대출이었다. 빌린 사람이 돈을 못 갚을 지경이 돼도 그들의 집을 담보로 잡아뒀으니 돈 대신 집을 빼앗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집이나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모기지 대출(mortgage loa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담보로 잡은 집 중에는 가치가 매우 떨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집값이 빌려가는 돈에 못 미치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돈을 떼일 우려가 크기 때문에 쉽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월가는 이런 저질 담보에도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줬다. 담보가치가 충분할수록 안전하기 때문에 이자율이 낮게 책정된다. 반면 담보가 저질이면 돈을 떼일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이자도 높게 받을 수 있다.

월가는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경제가 계속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담보가치가 좀 낮아도 충분히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주택담보대출에서 담보의 가치가 높고 안전한 대출을 ‘프라임(prime) 대출’이라고 부른다. 반면 ‘서브프라임(Subprime) 대출’이란 우량 담보에 못 미치는 불량 담보대출을 뜻한다. 월가가 이런 불량 담보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월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통해 높은 이자를 뜯으며 흥청망청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 경기가 하락하면서 돈을 갚지 못하는 국민들이 크게 늘었다. 월가는 담보로 잡아둔 집이나 부동산을 압류해 이를 만회하려 했지만 그 담보는 대부분 불량, 즉 서브프라임이었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한 월가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한 곳에서 둑이 무너지자 이곳저곳에 남발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이 모두 터져 나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든 금융위기는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서 발생한다. 세계를 호령하던 월가가 일거에 무너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월가를 응징할 수 있을까?

미국에는 ‘파산하기에 너무 큰 존재(too big to fail)’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보통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로 번역된다.

월가가 바로 이런 ‘망하기에 너무 큰 존재’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그들은 절제를 모르는 탐욕적 존재다. 하지만 잘못을 물어 그들을 망하게 하기에는 그들의 존재가 너무 거대했다. 미국 상위 6개의 금융기관의 자산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60%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월가는 국민들을 협박했다. “우리를 이대로 망하게 둘 거야? 우리가 망하면 국가 전체가 망할 텐데? 그러니 국민 세금으로 우리를 구제해 줘!”

결국 미국 정부는 월가를 용서하고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한 구제금융 규모는 무려 7,000억 달러(840조 원)였다. 우리나라 정부 1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거금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달러를 마구 새로 찍었는데 이게 16조 달러(1경 9,000조 원)나 됐다. 월가 살리겠다고 전 세계에 풀린 1경 6,000조 원에 이르는 부담은 온 나라 국민들이 골고루 나눠져야 했다.

미국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2011년 뉴욕 한복판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도 이런 분노에서 촉발된 운동이었다.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2013년 미국의 상원의원들이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Eric Holder)를 불러 질문을 던졌다.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아직도 활동을 하는데 이들을 처벌할 의도가 없나?”라는 물음이었다.

2011년 월가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모습 ⓒPaul Stein

하지만 홀더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홀더는 “월가 자본의 크기가 너무 커서 우리가 만약 그들을 처벌하면 국가경제, 심지어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처벌이 어렵습니다”가 대답이었다. 월가는 ‘망하기에 너무 큰 존재’를 넘어 ‘감옥에 보내기에도 너무 큰 존재(too big to jail)가 된 셈이다.

그래서 월가의 탐욕을 견제하기 위해 아예 이들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월가 해체론의 최선두에 서 있는 미국 정치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주장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있었던 수많은 고위급 경영진 들은 단 한 명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마리화나를 피운 청소년들은 전과기록이 남는데 거대기업의 경영진은 그렇지 않다. ‘감옥에 가기엔 너무 큰 존재’라서 그런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첫날 즉시 월스트리트 범죄 수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특위 활동은 신속할 것이고, 죄가 발견되면 구속될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기사 원소스 보기

  • 등록된 원소스가 없습니다.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관련 기사

  • 등록된 관련 기사가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