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라가고, 살아간다. 우리는 늘 국가에 충성해야 하고, 국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국가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색하다. 국가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약속이라 할 수 있는 헌법에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또 이러한 규정을 바탕으로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국가를 당연시하고 살아왔지만, 한국 근현대사 속엔 국가가 국가에 속한 개인에게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해 자유와 생명을 빼앗은 수많은 사건이 있다. 이런 사건을 우리는 ‘국가폭력’이라 부른다.
‘국가폭력’은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국가’가 나에게 폭력을 저지른 것이니 그 어떤 폭력보다 잔인하다. 국가가 행한 폭력이기에 어디에 항의하고 호소하기도 쉽지 않다. 분단 질서 속에서 국가폭력에 대한 항의는 ‘반역’으로 읽힐 수 있기에 억울하게 당했어도 침묵을 강요받는다.
기독교 신앙공동체 ‘한울 모임’에 참여했던 청년들도 그러했다. 믿음과 진리를 찾는 순수하고 진지한 젊은이들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 기독교 신앙을 펼쳐보려는 꿈을 품고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다 1981년 3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반국가 단체 ‘한울회’를 만들었다는 누명을 쓰고, 국가폭력의 피해를 입했다. 국가폭력에 의해 신앙도 양심도 우정도 산산이 부서진 한울 모임 구성원들이 사건 41년 만인 지난해 12월 다시 뭉쳤다. 이들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며, 이 때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담은 책 ‘한울회 사건의 진실’을 펴냈다.
이 책은 한울 모임에 참석한 17명의 전기적 이야기 모음이다. 각자가 한울모임과 관계 맺게 된 계기, 모임 경험, 그리고 한울회 사건이 날조되는 과정에서 체험한 국가폭력의 실체, 고초의 터널을 통과해 나온 다음 이어진 생활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울모임의 구심점인 홍응표 목사를 비롯한 모임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1977년경) 박재순(씨ᄋᆞᆯ사상연구소장), 이규호(전 대전충남기독교사회운동연합 정책실장, 2021년 작고), 이건종(한국샬렘영성훈련원 이사), 김종생(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이충근(전 숭의여고 영어 교사), 임세영(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등의 얼굴이 보인다. ⓒ한울모임
한울모임은 1970년대 대전에서 네비게이토 선교회 간사와 독립전도자로 활동한 홍응표 선생 가정의 성경공부 집회를 그루터기로 해 교제를 유지하던 청년들의 모임이다. 그러다 1979년 홍 선생이 대전을 떠난 다음, 성경공부에 먼저 참여한 선배들이 함께 살던 자취방이 모임 장소가 되었다. 이 모임은 집회를 이끌어가는 선생이나 지도자 없이 주일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교제를 나누었고, 여름과 겨울 방학 때는 직장을 따라 타지에 살던 사람들도 함께 모여 2~3일씩 수양회를 열었다.
제5공화국 초기 한울모임 청년들이 군사정권을 비판했다는 정보가 대전 지역 경찰조직에 알려졌다. 경찰은 1981년 3월 15일엔 주일 집회에 참석한 청년과 대학생들을, 이후엔 고등학생 등 20여 명을 연행하였다. 형사들은 고등학생들을 가두고 협박하여 선배들이 ‘한울회’라는 반국가 단체를 조직한 빨갱이였다는 진술을 날조해냈다. 그리하여 여섯 명의 선배들은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고, 어린 학생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을 넘어 죄책감마저 안고 살아야 했다.
한울회 사건으로 2년 6개월을 복역한 바 있으며 이 책의 집필자로 참여한 박재순 씨ᄋᆞᆯ사상연구소장은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맘속 깊이 맺힌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보려 한다. 한울회 사건의 경찰과 검찰 조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 연루된 사람들은 한울모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울모임을 반국가 단체로 날조하기 위해서 여섯 명의 회원들과 거짓증언을 해줄 몇 명의 어린 학생들이 선택된 것”이라며 “이 책을 내는 것이 고 이규호 형제를 위로하고, 그와 다른 형제자매들의 막힌 벽을 허물고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 소장은 이 책을 통해 국가폭력에 짓밟힌 한울회 사건의 진실과 진상을 밝힘으로써 국가폭력을 겪고 평생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국가가 용서를 빌고 마음의 상처와 멍에를 치유하고 벗겨주는 정치적·사회적·법적 과정을 밟아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건 이후 열린 1·2심 재판부는 유죄 판결을 했지만, 1982년 6월 대법원은 한울회를 반국가단체로 본 원심이 잘못됐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은 일부 변경된 공소장을 인정해, 또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1983년 2월 구성원들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주심 대법관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였다.
한울회 사건 피해자들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 권고에 따라 2010년 10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새로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2012년 5월 이를 기각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집권기였고, 사법 농단 의혹을 받은 양승태 대법원장 재직 시절이었다.
박 소장을 비롯한 피해자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다시 한울회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2021년 조사 개시 결정이 났지만, 아직 결과는 발표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말 과거사 부정으로 논란을 빚은 김광동 씨가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취임해, 진상 규명이 가능할 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