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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프로듀서 단편선을 듣는 즐거움

프로듀서 단편선(박종윤) ⓒ단편선(박종윤) 페이스북

음악을 선택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과 곡은 당연히 듣고, 선호하는 장르는 찾아서 듣는다. 인기 있는 음악은 일부러 듣기도 한다. 지인들이 추천하는 곡이라면 궁금해서 듣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가며 들리는 음악만 듣겠지만, 관심 있는 레이블·기획사의 음악을 챙겨들을 정도면 음악 마니아라 해도 틀리지 않다.

음악 마니아 중에는 프로듀서나 작사·작곡가를 따라가며 듣는 이들도 있다. 1980년대라면 김희갑과 양인자 콤비나 이영훈에 주목하고, 1990년대에는 박주연의 가사와 김형석의 곡에 귀 기울이는 식이다. 지금이라면 김이나라든가 조동희의 노랫말, 250의 곡, 민희진이 제작한 작품을 눈여겨보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뮤지션 단편선(박종윤)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는 2007년 경 ‘회기동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데모 음반을 내놓은 뒤, 2012년 정규 1집 [백년]을 발표해 인디 음악 신을 놀하게 했다. 2013년엔 EP [처녀]를 발매하고는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들이 내놓은 음반은 단 2장. 2014년의 [동물]과 2016년의 [뿔]은 모두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고,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거나 후보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밴드는 2017년 연말 해체해버렸지만 단편선의 음악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단편선은 2019년 포크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정규 1집 [김일성이 죽던 해]의 프로듀싱을 맡았고, 그해 10월부터 오소리웍스라는 인디음악 프로덕션을 꾸려 활동한다. 천용성의 음반은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과 노래 부문을 석권할 정도로 호평 받아, 단편선의 프로듀싱 능력을 널리 알렸다. 단편선은 ‘회기동 단편선’이나 ‘단편선과 선원들’로 활동할 때에는 복고적이고 사이키델릭한 포크·록 음악으로 주목받았는데, 천용성의 음반에서는 록, 재즈, 팝, 포크를 오가며 부드럽고 서정적인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 후 단편선이 관여한 전유동, 전복들, 후하, 소음발광, 보일, 선과영 등의 음반과 싱글들은 그의 역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이끈다.

사실 그는 프로듀싱 뿐 아니라 편곡, A&R, 기획, 디렉팅을 비롯한 역할까지 해내는 전문가이다. 또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서울생활문화센터의 운영을 담당한 기획자이기도 했다. 한때 대중음악웹진 [보다]에서 음악 비평을 썼고, 두리반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주역이었으며, 자립음악생산조합이라는 대안 레이블을 결성하기도 했을 만큼 음악판 안팎을 오가며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들어 온 인디 신의 다재다능한 해결사다. 노래모임 새벽을 이끌었던 작곡가 문승현을 비롯, 크고 작은 음악 공동체를 만들어낸 수많은 뮤지션들의 2020년대 진행형이 단편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의 모든 작업이 탁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작업을 단편선 혼자 해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음반들과 프로듀싱한 음반들, 특히 소음발광의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작 [기쁨, 꽃]과 선과영이 지난 해 발표한 첫 정규 음반 [밤과낮]을 들으면 단편선의 이름이 일부 음악팬들에게만 회자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데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단편선은 그 자신이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일 뿐 아니라, 드문 세계를 선보인 밴드의 수장이었고, 남다른 퍼포먼서였다.

현직 프로듀서로서 단편선은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는 여유로움으로 뮤지션의 원곡이 가진 매력을 배가시키거나 새로운 스타일을 부여하곤 한다. 레트로, 재즈, 팝의 스타일을 가미할 때면 곡은 평범해질 뻔한 위기에서 탈출해 특별한 여운을 뿜는 곡으로 재탄생한다. 이는 많은 국내외 음악을 들어 레퍼런스를 확장한 뮤지션이며, 창작자로서 꾸준한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다.

새해에도 많은 작업이 예정되었다는 그가 어떤 프로듀싱 작업을 내놓을지, 자신의 솔로 음반은 언제쯤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프로듀싱을 받아야만 좋은 음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훨씬 나아질 수 있었을 음악을 들을 때면 단편선의 이름을 떠올린다.

지금 한국 인디 신의 중추는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같은 1세대 밴드가 아니다. 30여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수많은 뮤지션들이 쌓아올린 탑의 꼭대기에서 단편선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아직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음악을 선택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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