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굴욕외교가 야기한 일본의 안하무인

지난 19일 일본은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지난 해 무산된 등재신청부터 국제적인 논란거리였다.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회피하고자 지난 해 신청 시 일본은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하는 꼼수를 썼다.

참혹한 강제노역의 현장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진실을 감추고 왜곡한 채 인류가 기념할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대상 기간이라는 알량한 꼼수로 그 뒤에 일어난 전쟁범죄가 감춰진다면 그 자체로 인류사의 오점일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지난 23일 국회 연설을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다케시마’라 지칭하며 “역사적 사실에 비춰 보거나 국제법에 비춰 봐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의 망언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도 주변국의 반발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할 기세다.

이쯤 되면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 성적표는 이미 나왔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여러 차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피력해 왔고, 꽤 정성들여서 일본 측에 신호를 보냈다. 지난 해 9월 미국 순방 중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있던 건물로 찾아가서 30분 만난 뒤 우리 측은 ‘회담’이라 하고 일본 측은 ‘회담이 아닌 간담’이라고 하는 기이한 정상 외교도 있었다.

최근에는 피해자들도 반대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해법안을 들고 나와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 전범기업의 사죄도 배상도 없이 면죄부만 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측이 제시했어도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을 우리 정부가 해법이라며 먼저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굴욕적이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대통령선거 때부터 주장해 왔다. 뭔가 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외교적 성과를 내놓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아무리 의욕이 앞서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전제하지 않는 한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없다. 외교는 바람만 가지고 이루어질 수 없으며, 대부분 조급한 쪽이 지는 게임이 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어떻게든 한일관계 개선을 해내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 안하무인이 되어가고 있는 일본 측의 반응을 보면 이미 그런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망언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한·일 양국은 강제동원 협상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6일 도쿄에서 국장급 만남이 있었다. 통상 한 달에 한 번 열렸던 국장급 협의가 이례적으로 이달 말 서울에서 또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격으로 윤 대통령의 방일 시기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조급함이 일본의 안하무인 태도를 더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그 폐해는 쉽게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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