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이사회가 진행한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이하 UPR)에서 우리나라는 263개 권고를 받았다. 우리 정부는 97개 권고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혀 본심의 보고서를 채택했고, 나머지 165개 권고에 대해서는 6월에 열리는 제53차 유엔인권이사회까지 수용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2008년부터 시행된 UPR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돌아가면서 자국 인권상황과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들로부터 심의받는 제도이다. 이번 권고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사형제 폐지 등 지난 2017년 3차 UPR에 권고했으나 당시 '사회적 논란'과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모두 불수용한 문제들이 재권고 되었다.
이번 검토에서는 유난히 많은 국가들이 한국 사회 내 구조적 성차별·성폭력과 관련한 부분을 지적했는데, 9개 국가가 온라인젠더기반폭력 근절을 권고했으며,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참여 확대 및 성별임금격차 완화를 권고한 국가도 13개에 달했다. 또한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에 우려를 표한 나라도 여럿이다.
정부는 UPR 심의 후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보편적 인권 보호와 증진에 기여하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하고, 국제기준을 선도하는 국내 인권 정책을 수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채택된 본심의 보고서 내용은 정부의 입장과 사뭇 다르다. 지속적으로 많은 회원국이 권고한 사형제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성소수자 권리보장,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및 성평등 촉구 등의 권고에 대해서는 수용 답변을 내놓지 않고 6월 최종보고서 제출 시한으로 미뤘다. 1차로 즉각 수용 의사를 밝힌 권고들도 '노력할 것', '강화할 것'에 그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정부가 6월에 제출할 최종보고서에는 '사회적 합의'나 '연구 검토 중'이라는 무책임한 답변이 아니라 주요 권고에 대한 전환적 자세와 입장이 담겨야 한다. 법 제도 개선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보편적 인권 보호와 증진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빈 말이 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