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재난로봇 ‘노스체’를 통해 보는 재난 이후 사회 이야기

2022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노스체’

2022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노스체’ ⓒ창작산실

연극 ‘노스체’는 재난 연극이다. 아니 재난에 관한 이야기다. 더 세밀하게 표현한다면 재난 이후 재난이 만들어낸 산물에 대한 사유와 고찰이다. 그렇다면 재난이란 뭘까? 터너(Turner)는 “재난이란 사전 경고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문화 속에서 축적된 위험요소들이 한꺼번에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집중하여 나타나서, 한 사회의 하위체계 존속을 위협하는 사건”이라고 정의 했다.

이 연극은 원전 폭발이란 재난이 일어나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사고 중심지에서 수십 km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느날 이곳이 관광지로 개발된다는 소식과 함께 재난 로봇 ‘노스체’가 마을에 나타난다. 피폭된 채 오랜 시간 방치된 땅을 점검하러 온 것이다.

이 마을에서 성장한 ‘현’과 ‘희’, 병든 몸으로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노스체의 등장에 경계심이 커진다. 게다가 ‘폭발지’를 관광하다 길 잃은 사진작가 ‘필’이 등장하고, 오랜 시간 마을을 떠났던 ‘연’도 나타난다. 현은 기억조차 안 나는 엄마 연의 등장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한편 노스체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면서도, 마을 정보를 수집해 어딘가로 보낸다.

재난에서 사람들을 돕는 로봇 ‘노스체’

노스체는 재난이 있는 곳, 사람이 있는 곳에 나타나 사람들을 돕는 재난 로봇이다. 예전에는 재난이 일어나면 사람이 사람을 구했지만, 연극 속의 언젠가에선 재난 로봇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노스체는 마을 사람들이 하던 장벽을 쌓는 일을 돕게 된다. 주민들은 멧돼지를 피해 장벽을 쌓지만, 장벽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부서지면 다시 쌓고 허물어지면 다시 쌓는다. 하지만 그 벽은 세상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에 역부족이다.

국가 지정 관광지가 된 이 마을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 ‘핫 플레이스’였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곳은 신기하고 사진으로 담아 SNS에 올리기 적당한 이슈를 가진 곳이었을 거다. 사진작가 ‘필’은 근사한 기록물이 되어줄 사진을 남기기 위해 마을과 사람들을 찍고, 노스체는 호텔을 지으려는 누군가를 위해 마을의 정보를 끊임없이 보낸다. 이들에게 재난은 어떤 의미일까?

‘연’은 왜 이곳으로 돌아왔을까? 연은 그 사건이 발생한 날 현을 임신한 채 이곳에 있었다. 남편은 원전 폭발 중심지에서 죽었고 아이는 태어났다. 연은 살기 위해 아이를 놓고 떠났다. 하지만 세상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다. 어디를 가도 그녀는 경계 대상 1호였다. 연은 그런 세상을 피해 집에 돌아왔지만, 아들 현은 감옥일지도 모를 세상을 향해 떠나고 만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곳은 삶의 터전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물을 마시며 살아야 하고 들짐승들의 공격을 받아야 하지만 집이다.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살고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을 확인한 국가는 호텔을 세우고 관광지로 만들 계획으로 분주하다. 연과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더 깊은 어딘가로 떠난다. 혹자는 그 마을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엄청난 보상을 받고 잘 먹고 잘 살더라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재난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연극을 본 날은 우연하게도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은 날이었다. 누군가는 사고냐 재난이냐를 놓고 저울질하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재난, 인재, 참사 중 제 이름을 찾기도 지난했던 시간이었다. 이 재난은 평화로운 300여 명의 시간을 순식간에 죽은 무엇으로 만들어 버렸다. 재난이 만들어 낸 산물은 100일이 되던 그날, 공연장 밖 세상에서 낯뜨거운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대 위 세상은 평화롭고 평온했다. 죽은 땅에도 생명이 피어나고 사람들은 삶을 만들어 냈고 각자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었다. 재난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어떠한 사심 없이 ‘무엇을 하면 될까요?’를 물었다. 그럼에도 이 마을이 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땅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이 작품은 사람이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등을 토닥여 준다. 과연 진짜 세상도 앞으로 달라질까? 우리는 묵묵히 살아내면 되는 걸까?

연극 ‘노스체’는 ‘2022 공연예술 창작 산실-올해의 신작(이하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 중 하나다. ‘올해의 신작’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공연예술 전 장르에 걸쳐 단계별(기획➝쇼케이스(무대화)➝본 공연) 연간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작품을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 지원 사업이다. 2022 창작 산실 ‘올해의 신작’ 작품은 공연 이후 공연 영상화 사업을 진행한다. 영상화된 작품은 네이버 TV 후원하기를 통하여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2023년 상반기에는 ‘아르코 라이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연극 ‘노스체’ 정보

공연날짜 : 2023년 2월 3일~2월 12일
공연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시간 : 화, 목, 금 20시/수요일 16시, 20시/토요일 15시, 19시/일요일 15시
러닝타임 : 100분
연출 : 윤성호
작가 : 황정은
출연진 : 김은희, 선명균, 박윤정, 최희진, 윤정로,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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