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1년이 지났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번 전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벌어진 침략전쟁이며 이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피해자이고 침략에 맞서는 영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악의 대변자인 러시아와 선의 대변자인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에서 우리가 어느 편에 설지는 너무나 자명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과거 겪었던 일제의 침략 경험을 이번 전쟁에 빗대어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 러시아는 제국주의 일본처럼 여기는 시각까지 있다.
이런 시각은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는 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명분을 들고 의용군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면서 전장에 나선 이들까지 있어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얼마 전 출간한 책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전쟁은 결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할 수 없으며 이 전쟁 또한 무수한 다른 전쟁들이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쉬운 해결책이 없다는 점을 유념해 이해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전쟁인 만큼 주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전략과 손익은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와도 연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이 교수의 분석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폭넓은 지지를 얻진 못하고 있다. 학살자 푸틴과 러시아를 옹호하는 주장이라며 비난하는 이들까지 있다. 이런 비난은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선악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선과 악의 대립 속에선 중립도 객관도 때론 진실까지도 악의 편이라 손가락질받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우크라이나전쟁’의 원인, 경과 그리고 해법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우리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 언론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따랐다면 이 책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번 전쟁을 분석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포로셴코(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와 젤렌스키(우크라이나 현 대통령)는 우크라이나 내 돈바스를 침략했다”
우선 이번 전쟁의 원인에서부터 서구의 시각과 객관적 사실은 차이를 보인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6시(우크라이나 현지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무장 해제와 나치즘 제거, 동남부 지역의 주민 보호를 목표로 하는 ‘특수 군사작전’을 명령했고, 그와 동시에 러시아군은 키예프와 하르코프, 오데세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핵심 시설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북부·남부·동부 세 방면으로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 이 전쟁의 시작에 대한 이른바 ‘공식’ 해석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서방의,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른바 진보 리버럴 네오콘이 만든 ‘정의’라고 이 교수는 꼬집는다.
24일 오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시 전경 ⓒ제공 : 뉴시스
반면에 러시아는 이 사건을 ‘전쟁’이 아닌 ‘특수 군사작전’으로 부르며, 우크라이나를 향해 돈바스 지역의 영토 불가침과 주권을 보장한 “민스크협정”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민스크협정은 2014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이 서명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한 것으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러시아인 계통의 주민이 다수인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특수한 지위(분리·자치)’를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군대가 철수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민스크협정에서 약속한 개헌과 돈바스 지역의 분리를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지역 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학대와 탄압을 지속했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나치즘과 결합하여 공공연히 러시안 슬라브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시도했으며,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현실 정치세력이 되었다고 러시아는 규탄한다.
전쟁 시작 시점도 관점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이미 2022년 2월 24일 이전에도 큰 군사적 충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이미 그해 2월 16일부터 23일까지 돈바스 지역에 대규모 포격을 가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할 때 우크라이나군도 돈바스에 12만 5000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돈바스 지역에 배치했다. 이런 사실들을 보도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과 대규모 침공만이 강조된 것이다.
이 교수는 “이들은 한결같이 거친 도덕적 성토와 더불어 러시아의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는 침략 반대 및 주권과 영토의 불가침을 규정한 국제법 최고 강행규범을 위반했다. 하지만 동일한 규범은 우크라이나 내 소수민족인 돈바스 민중의 ‘자결권’ 역시 확고하게 승인하고 보장한다. 심지어 이들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의무”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포로셴코(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와 젤렌스키(우크라이나 현 대통령)는 우크라이나 내 돈바스를 침략했다”고 꼬집는다.
약속을 저버린 미국과 서방의 ‘나토 동진’ “이 전쟁은 미국이 감독하고 젤렌스키가 연기한 드라마”
이 교수는 미국이 나토가 동진하지 않을 것이라던 과거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1990년 2월 9일 미국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구하며 “나토의 관할권이 동쪽으로 단 1인치라도 확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같은 약속을 조지 W. H. 부시 미국 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했다. 이후 소련이 붕괴했고, 나토는 이 약속을 어기고 회원국을 늘리며 동진했고, 러시아는 자신과 국경을 맞댄 나라에 나토의 군사기지가 설치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2007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팽창은 누구를 겨냥하는가?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이후 우리의 파트너들이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선언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나? 아무도 그것을 기억조차 못 합니다.”
결국, 이 교수는 이번 전쟁은 미국의 리버럴 혹은 진보 네오콘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바둑돌로 들고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대리전쟁proxy war’이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전쟁은 미국이 감독하고 젤렌스키가 연기한 드라마”라고 꼬집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3월 8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의 수입 금지를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동참은 각국의 결정 사항이라고 밝혔다. 2022.03.09. ⓒ뉴시스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의 발현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 교수는 꼽았다. 이 교수는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스스로를 서구인과 동일시하면서 러시아인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마이단을 둘러싼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 ‘선진적’ 친마이단 세력이 ‘후진적’ 친러시아 세력과 공통의 언어를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이 바로 이 우월감”이라며 “이것이 돈바스 봉기,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대테러 작전, 러시아의 개입, 민스크평화협정과 키예프 정권의 불이행,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전쟁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미국 중심의 세계가 끝나고 다극 체제의 새로운 질서가 도래 하지만 한미일 동맹만 반복하는 윤석열 대통령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러시아를 경제 군사적으로 압박해 굴복시키려 했지만, 전쟁이 1년째 이어지면서 미국의 계획은 무산됐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러시아는 건재했고, 오히려 가까워지기 힘들었던 중국과 손잡는 계기가 됐고,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미국의 세기, 단극의 세계질서가 마침내 끝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질서, 다극 체제로 전환이 예고되고 있다고 이 교수는 분석한다. 이 책의 제목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인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질서가 급변하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철 지난 한미일 동맹만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의 상황을 명청(明淸)교체기 조선의 선택과 비교한다. 광해가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하며 실리적 노선을 추구했지만, 이를 은혜를 저버리고 명을 배반한 것이라면서 숭명반청(崇明反淸)을 기치로 반정을 했던 역사를 언급한다. 이를 통해 권력을 잡았던 인조가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국토를 유린당하게 했고, 외교가 청의 종주권에 사실상 복속하게 했던 과거를 거울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미국 중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시아가 (동)아시아의 길을 가자면 지정학적 공간의 비미국화를 피할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서 한국과 일본은 비미국화 과정이 필요하다. 목표는 전략적 자율성 획득이다. 비미국화가 곧바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미국이 사라져도 중국과 러시아가 있고, 일본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진영화에 따른 3차 세계대전의 리스크를 줄이고, 서로 충분한 자위력을 보유한 채로 필요한 만큼의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를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각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할 중간지대 혹은 중립공간의 창출이 우리 지역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