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 외환시장의 빗장을 확 풀기로 했다. 정부는 7일 열린 서울외환시장 운영협의회 세미나에서 글로벌 수준의 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한 ‘외환시장 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는 일정 요건을 갖춰 정부의 인가를 받은 해외 소재 외국금융기관에 대해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현재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인 개장시간을 다음날 오전 2시로 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한국이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수십년 동안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다면서, “나라 밖과 연결되는 수십년 된 낡은 2차선의 비포장 도로를 4차선의 매끄러운 포장도로로 확장하고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외환시장 접근성과 관련한 해외투자자들이 제기하는 불편을 언급하고 이와 관련한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향이 지금 필요한지는 매우 의문이다. 오히려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워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환시장 구조 개편은 어느 때보다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변화하는 경제구조와 규모에 맞게 외환시장제도를 개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치 답이 미리 정해져있기라도 한 것처럼, 해외투자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것으로만 개편 방향을 국한해선 안 된다. 정부는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추고 거래 규모를 키우면 변동성도 완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외환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 뒤 여러 형태의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경험에 따른 대비를 단지 ‘트라우마’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정부는 선물환포지션 비율규제나 외환건전성부담금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규제로 대응역량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환율동향과 CDS프리미엄 등의 금융시장 지표 등이 안정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제도나 지표 등이 금세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외환시장이 유례를 찾기 힘든 변동성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장에서 나온 지 오래다. 국내적으로도 가계부채나 부동산시장 거품 붕괴 위험이 금융과 실물 부문 모두로 전이되는 복합위기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외환시장의 빗장을 푸는 것은 엉뚱하고 무모하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해외투자자들이 우리가 새로 닦아놓은 ‘4차선 도로’에 활개치고 다니는 것이 곧바로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외환시장이 지금보다 더 성장한다고 해도, 그들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이지 우리 외환시장의 안정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언제든 등을 돌리고 떠날 수 있다. 심지어 우리의 위기를 이익의 원천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오래 전부터 외국투기자본의 ‘놀이터’라는 말이 나온 한국 외환시장을 ‘개방·경쟁적 구조로 전환’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