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범죄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지난 7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 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며 “3천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배트남전쟁 당시인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청룡부대는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퐁넛마을 주민 74명을 살해했다. 주민들은 “한국군이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쳐 보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잡아다 칼로 찔러 죽였고 너무도 잔인하게도 가족·친지들의 손과 발을 토막 내는 일을 저질렀다”고 증언한다. 응우옌 티탄 씨는 당시 가족들을 잃고 자신도 총격을 입었다면서 2020년 4월 3천만 원 청구 소송을 냈다.
이번 재판에서 정부는 베트콩이 우리 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 게릴라전 대응 과정에서 벌어진 정당방위, 이미 수십 년 전 벌어진 일로서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인정했고, 아울러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고가 시효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여러 차례 유감 입장을 밝혔지만, 배상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2018년 3월 베트남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민간인 학살 등과 관련해 포괄적인 사죄의 입장을 밝혔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유감을 나타낸 바 있다.
때문에, 정부가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 2018년 4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한국 정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시민평화재판이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어서 비록 1심이지만 의미는 상당하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를 두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선 외면하고, 침묵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건 모순이다. 이번 판결이 우리의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