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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③] 정부는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 요구’ 배경을 알긴 할까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전국 곳곳에서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건설노조와 군소 노조 등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규모가 커진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겨냥한 수사라는 의심이 크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각 지부 사무실은 하루가 멀다고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있다. 지부 간부들은 줄줄이 경찰 소환 조사를 받고 있고, 일부는 구속까지 됐다. 이들에게 적용된 주된 혐의는 '공동 강요'. 노조가 건설사들을 '협박'해, 이에 '겁을 먹은' 건설사들이 어쩔 수 없이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채용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19일 오전 건설현장 불법행위와 관련해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에서 건설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3.1.19 ⓒ뉴스1


건설현장 판치는 각종 불법 피해,
‘고용 불안’ 건설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


"고용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왜 요구하냐고 문제 삼으면 어쩌란 것입니까."

경찰의 첫 압수수색 대상이 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의 서일경 법규부장이 답답함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여기서 '고용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다른 산업과는 달리 건설업이 가지고 있는 고용 구조의 특수성을 의미한다.

건설노동자는 한 현장이 끝나면, 바로 실업 상태에 놓인다. 적게는 수일, 많게는 수개월 동안 다음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건설사가 시공 인력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일이 있을 때만 채용하는 구조를 택하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다.

해고는 반복되는데,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다른 산업이라면 구직 사이트나 각 회사 홈페이지에 채용 기준과 연봉 등 기본적인 사항을 적은 공고를 게시하고 그 공고에 따라 채용 절차에 응하면 되지만 건설업의 경우 그런 게 거의 없다.

그러면 건설노동자들은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까.

전통적인 방법은 인력사무소 등 유료직업소개소를 찾아가 일을 소개받는 방법이다. 문제는 이렇게 일하면 '중간착취'를 당한다는 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업계 최저 수준의 일당을 받는데, 그마저도 직업소개소가 10%가량을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간다. 그렇게 일이라도 하면 적은 돈이라도 벌겠지만 직업소개소를 찾아가도 일감을 구하지 못해 그날 하루 허탕 칠 가능성이 높다. 계속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다.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요하다. '오야지', '십·반장, '시다오케' 등으로 불리는 도급 팀장이 꾸린 시공팀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건설노동자의 최초 구직 경로는 인맥이 67.2%로 가장 많았고, 유료직업소개소가 10.9%로 뒤를 이었다. 현재 구직 경로 역시 인맥이 74.9%, 유료직업소개소가 7.6% 순이다.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공정에 따라 보통 '팀' 단위로 움직이는데, 대부분 '오야지', '십·반장, '시다오케' 등으로 불리는 도급 팀장에게 뽑혀 팀원의 성격으로 공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인맥을 통해 도급 팀장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도급 팀장이 하청 업체로부터 물량(일자리)을 받아오지 못하면 '꽝'이다. 하청 업체 입장에서 가장 싼 값에 강도 높게 일을 시킬 수 있는 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점차 외국인 노동자로 주로 구성된 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도급 팀장을 중심으로 하청 업체에게 물량(일자리)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채용 경쟁'이 건설현장에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은 최근 들어 'OO노조'라는 외피를 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마찰이 일어나기도 하고, 불법 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도급 팀장으로 불리는 이들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는 점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합법적인 도급 구조는 '발주처→종합건설사(원청)→전문건설업체(하청)'까지다. 하청 업체가 다시 다른 업체에 도급을 맡기는 재하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하청 업체는 건설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이면 계약 등 불법, 편법을 동원해 도급 팀장에게 불법 재하도급을 주고, 하청 업체가 아닌 도급 팀장이 건설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사례가 만연하다.

이전 정부가 파악한 불법 재하도급 형태만 해도 ① 5명 내외의 소규모 시공팀을 이끌며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소팀장이 하청 업체로부터 불법 재하도급을 받고 실제 공사에 참여하는 경우 ② 20~30명 규모의 대규모 팀을 이끌며 여러 소팀장에게 공사를 나눠주는 경우 ③ 공사는 하지 않고 건설노동자를 모집, 소개해 주고 그 대가로 불법 수수료를 받는 경우 등 다양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법 재하도급 형태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더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중간착취'가 발생한다. 도급 팀장은 중간에서 자기 이윤을 최대한 많이 남기려고 한다. 가장 싼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적은 인원으로 단기간에 공사를 마쳐야만 가능하다. 2021년,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사고의 경우 당초 3.3㎡당 28만원으로 책정된 해체공사비가 불법 재하도급을 거치며 4만원으로 대폭 줄었다는 사실은 정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중간착취'가 도급 팀장이라는 한 단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경우도 흔하다. '발주처→종합건설사(원청)→전문건설업체(하청)→불법 도급→불법 도급→불법 도급→건설노동자' 식인 것이다.

이런 구조의 최대 피해자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건설노동자다. 건설노동자는 자신의 임금 일부를 도급 팀장에게 불법 수수료로 떼이고, 법이 정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오야지' 말 한마디에 바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건설노동자는 이런 부당함을 따지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도급 팀장 밑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 중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못한 채 일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건설노동자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정부가 '협박'이라는 조합원 고용 요구,
실제 현장에서는 왜, 어떻게 이뤄지나


이런 '중간착취' 구조를 깨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게 바로 민주노총 건설노조다. 중간에 낀 불법 재하도급을 제외시키고, 건설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직접 사용자인 하청 업체와 교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고용이 된다면 하청 업체에 '직고용'이 될 수 있는 틀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산하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2017년부터 철근콘크리트협의회와 단체협약을 맺고 있다. 단체협약에는 임금, 근로시간, 유급휴가, 노조 활동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건설노조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단체협약을 맺은 이유에 대해 "건설노동자의 경우,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 '너보다 싸게 일하는 사람들 많은데 임금을 좀 낮춰라'라고 하면, 적자라는 걸 알면서도 적은 임금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일단 고용이 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건설노동자 개인은 할 수 없는, 조금 더 나은 조건의 채용을 요구하는 건 건설노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가장 최근에 맺어진 2021년 단체협약 16조(조합원 고용)에는 "회사는 개설되는 현장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무조건 조합원 고용을 보장하라'는 것은 사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낮은 수준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강 위원장이 말했다.

실제로 하청 업체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조차 보장해주지 않으려고 이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채용에서 배제시키는 일이 현장에서 빈번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입장에선 명백한 '고용 차별'이었다. 이에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서 '단체협약에 따라 조합원을 차별하지 말고 고용하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이 '채용 강요'라는 불법행위로 낙인이 찍힌 형국이다.

건설노조의 활동을 "조폭"에 비유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은 마치 건설노조가 폭력적으로 채용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노사 교섭 과정과 유사하다는 게 건설노조의 주장이다.

일단 한 현장이 개설되면 건설노조 산하 조직이 하청 업체와 교섭을 시작한다. 현장에 필요한 인력 규모나 투입 시점 등을 문의하고, 그 계획에 따라 건설노조의 요구 사항을 전달한 뒤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조합원을 써달라'고 사정도 하고, 사측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불법사항을 신고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집회 등은 다른 노사 교섭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수준의 노조 활동이다.

하청 업체와의 교섭 과정에서 건설노조가 '우리 조합원만을 채용하라'는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 현장의 교섭 과정에서는 공정별로 투입되는 이른바 '노조팀'과 '일반팀'의 수를 노사가 조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령 "형틀 출근 두 팀 중 노조팀은 한 팀만 들어갔으니, 시스템 출근에도 노조팀이 한 팀 들어가겠다"는 식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처럼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협박하고, 이를 사측이 억지로 수용하는 과정이라면 건설현장에 건설노조 조합원들만 있어야 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것이다. 

서일경 법규부장은 "사측이 노조가 요구하는 대로 채용을 다 해주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서 부장은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경찰이나 정부가 채용 강요라고 문제 삼는 수단들, 집회라든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외국인고용법(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례를 신고하는 등의 수단이 동원된 건 맞다"며 "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열려 있는 신고권이나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권을 행사하는 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건설노조는 사측 역시 노조를 통한 인력 수급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서 부장은 "사측이 겁을 먹어서 우리와 고용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며 "채용 권한을 가진 건 사측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오로지 '뽑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뿐이다. 만일 조합원을 뽑지 않으면 우리도 노조팀이 아닌 일반팀으로 들어간 이후에 '우리는 노조 조합원이니 단체협약 내용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사측이 건설노조 조합원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는 노조의 협박 때문이 아니라 숙련된 기능공을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조가 가장 안정적인 인력 공급처가 됐고 이제는 사측 역시 노조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즉, 노조도 조합원 고용이 필요하고, 사측 역시 숙련된 기능공들을 안정적으로 수급해야 하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각 현장에서 노사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예외적인 사건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던 이 교섭 과정은 윤석열 정부 들어 건설노조가 조직적으로 벌이는 범죄 행위로 둔갑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행위 관련 대한건설협회 등 유관 단체 간담회 참석하고 있다. 2023.2.1. ⓒ뉴스1


'있는 법이라도 지켜라' 투쟁한 건설노조
진짜 문제는 놔둔 채 노조만 때리는 정부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요구는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도급 팀장 등 중간 도급업자를 '법대로' 배제하고, 하청 업체가 건설노동자를 '법대로' 직접 고용하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 역시 건설현장의 고용을 둘러싼 문제들을 잘 알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일부 해결할 대안도 제시했다. 2018년 '건설산업 혁신방안'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공공 공사는 하청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대책을, 2020년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에서는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불법재하도급을 하지 않도록 원청과 하청 모두 발주 금액의 일정 부분을 공사 금액으로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건설노동자에게도 적정 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책이 시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건설노조 이윤재 정책기획실장은 "건설사만 9만여개로,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해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할 일만 제대로 했어도 지금의 무질서한 고용구조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아예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얘기하는 '건설현장의 불법'에는 건설사가 저지르는 각종 불법은 쏙 빠져 있다. 정부가 단속하겠다는 대상은 사실상 노조뿐이다.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는 덮어둔 채, 이 구조 속에서 발생한 부수적인 문제들만 법의 잣대로 엄격히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현재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이미 고용된'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교섭을 요구하고, 단체행동을 하는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건설업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노사가 자율적인 교섭을 통해 먼저 관행을 만들어야 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는 이를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건설업의 특성으로 노조가 고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행법의 한계로 이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무작정 처벌할 일이 아니라 폭넓은 논의를 선행하자는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흔히 노사 교섭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합의하는 사측은 없다. 노조의 일정한 압박은 노사 교섭 과정에서 당연히 있는 것"이라며 "만일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를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건설노동자의 직접 고용 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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