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난방비 지원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도시가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책에 이어 지역난방 이용자를 위한 대책이 나왔다. 문제는 지원책에 소요되는 재원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지 않아도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에 또다른 부담만 가중된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난방공사가 9일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 4만1천여가구를 대상으로 4개월분의 난방비를 최대 59만2천원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취약계층 168만가구에 최대 59만2천원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지역난방을 사용하는 취약계층에도 같은 수준의 지원책을 낸 것이다.
산업부와 지역난방공사에 따르면 이번 지원책에 약 161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용은 모두 지역난방공사가 부담한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가스요금 할인에 1천500억원이, 1일 발표된 대책에서는 3천억원이 소요될 전망인데 이 역시 가스공사가 부담한다. 가스공사와 난방공사에 부담되는 비용을 합치면 5천억원에 육박한다.
정부가 난방비 지원 대책에서 부담하는 금액은 1천800억원 수준이다. 이 금액은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을 15만2천원에서 30만4천원으로 두 배 인상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5천억원에 육박하는 두 공기업의 부담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두 공기업의 재무구조가 위험단계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가스공사와 지역난방공사를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해 강도높은 자구책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런 상태에서 난방비 지원 부담을 오롯이 이들 공사에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재원 지원에 부정적이다. 산업부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난방비를 지원할 계획은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재정 투입이 없다보니, 지원대상도 일괄적이지 못하다. 민간 지역난방을 쓰는 취약계층은 이번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지역난방은 공기업이 약 50%를 공급하고 민간 사업자가 나머지를 공급하고 있다. 산업부는 민간 지역난방 사용 취약계층을 위한 계획도 2월 중에 구체화 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민간 지역난방 업체들이 조성한 ‘집단에너지 상생기금’ 100억원을 활용한다고 하는데, 이 기금 조성목적이 취약계층 난방 지원이 아니어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야당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중산층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추경에 부정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예산을 통과시키고 집행을 시작한 지 한 달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현재로서는 추경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기조가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 고비용 사회를 대비해 에너지 전환과 수요를 관리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과 같은 난방비 절감을 위한 인프라 지원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난방비 지원책을 종합하면 재정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정부 대책’이라고 내놓는 꼴이다. 적자 공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민간기업에는 용도와 다른 기금을 내놓으라고 한다. 이쯤되면 무책임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