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이 6급 이하 공무원들에게 성과연봉제 비슷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한단다. 사건의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면서 “민간 수준의 유연한 인사 시스템과 또 파격적인 성과주의도 도입해서 활력이 넘치는 공직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에서 시작됐다.
이에 인사혁신처도 6급 이하 공무원들이 적용받는 현행 호봉제를 대폭 손댈 것을 시사하며 개편안 마련에 돌입했다는 소식. 지난달 대통령이 공무원의 임금 체계를 철밥통에 비유(“철밥통이라는 이런 인식, 안정되게 정년까지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공직을 택한다, 저는 그런 공무원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습니다.”)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가 공기업 공공부문 금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던 것에 아예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이다.
이 긴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윤석열 정권이 삽질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고? 경제학과 경영학계에서는 성과연봉제가 별 효과도 없을 뿐더러 조직의 안정성만 해치는 쓸모없는 제도라는 연구 결과를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매사추세츠공대(MIT) 벵트 홈스트룀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성과연봉제가 별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6년 노벨 경제학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역효과만 낳는 성과연봉제
이와 관련해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 듀크 대학교 교수의 연구를 하나 살펴보자. 애리얼리는 이스라엘의 한 반도체 공장을 찾아 직원 207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 세 그룹에 각기 다른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①그룹에게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30달러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전했고, ②그룹에게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피자 한 판을 주겠다”고 알렸다. ③그룹에게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직속 상사로부터 격려 메시지를 받게 해 주겠다”고 통보했다. ①그룹에게는 전형적인 성과급을 제시했고, ②그룹에게는 매우 약한 성과급(흥, 그깟 피자 한판!)을, ③그룹에게는 말로 때우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처럼 성과연봉제를 찬양하는 자들에 따르면 당연히 현금 30달러를 받기로 한 ①그룹의 성과가 가장 좋아야 한다. 하지만 5주 동안 실험을 이어보니 ①그룹의 생산성은 평소에 비해 되레 6.5%나 하락했다. 피자를 받기로 한 ②그룹의 생산성도 평소에 비해 2.1% 떨어졌다. 이들 중 유일하게 생산성이 높아진 그룹은 놀랍게도 말로 때우기로 한 ③그룹이었다. ③그룹의 생산성은 아주 조금이지만 평소에 비해 0.64% 향상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애리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 기업들은 성과급을 내걸면 생산성이 높아질 거라고 착각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물론 ‘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말이 동기를 부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된다.”
이 스트레스라는 말에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만약 독자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10분 안에 나를 웃기면 1억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여러분이라면 10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장담하는데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오히려 ‘웃겨야 돼, 웃겨야 내가 저 거금을 챙길 수 있어’라는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그래서 애리얼리는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기 위해 애를 태우는 것보다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연봉을 기본급 80%, 성과급 20%로 나누면 노동자들에게 20%는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경영자는 성과급 20%를 미끼로 노동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 아니라, 이 스트레스를 덜어줄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한 가지. 애리얼리는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성과급을 주겠다’는 제안은 결국 ‘너는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어!’라는 질타를 전제로 한다”고 꼬집는다. 이 말은 성과급을 제시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내포한다는 뜻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공직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불신은 당연히 일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반면 누군가로부터 신뢰받는다고 생각할 때 사람은 일할 맛이 난다. 30달러를 받을 때보다, 칭찬을 받을 때 더 열심히 일을 할 의욕이 생긴다.
채찍 유인의 역효과
“일 잘하면 상 준다”는 소리가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지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일 못하면 벌 주겠다”는 소리가 왜 멍멍이 소리인지를 살펴보자. ‘채찍 유인의 역효과’라 불리는 행동경제학 이론이 있다. 이스라엘 출신의 행동경제학자 유리 그니지(Uri Gneezy)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가 정립한 이론이다.
그니지는 이스라엘 하이파 시내에 있는 유치원을 대상으로 20주에 걸친 실험을 한 일이 있었다. 보통 오후 4시까지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하는데 지각을 하는 부모들이 꽤 있어서 유치원 교사들이 퇴근을 늦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일을 막기 위해 지각자에게 벌금을 물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조사하는 게 이 연구의 주제였다. 그니지는 부모가 10분 이상 지각을 하면 10세켈(약 3,500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과연 지각자는 줄어들었을까?
천만의 말씀, 벌금을 물리기 전까지 지각자는 일주일에 평균 7, 8명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벌금을 물리자 지각자가 되레 늘어났다. 벌금 도입 첫 주 평균 지각자는 11명으로, 둘째 주에는 14명으로, 한 달 뒤에는 20명으로 폭증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실 유치원에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은 웬만하면 지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지각을 하면 선생님들의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매우 미안한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보통 이런 미안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을 우리는 도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벌금제도를 도입하는 순간부터 부모들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고? 돈 냈으니까! 부모들은 벌금을 내면 ‘나는 지각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렀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벌금은 되레 역효과를 유발한다. 그니지의 이론 명칭이 ‘채찍 유인의 역효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직 사회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벌어질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일 잘하면 돈을 더 주겠다”는 유혹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일 못하면 벌을 주겠다”는 위협은 “쥐꼬리만큼 월급 받으면서 이 정도 일하면 됐지, 뭐 하러 열심히 일해?”라는 채찍 유인의 역효과를 낳는다.
아무리 이렇게 친절히 설명해줘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한다. 그리고 보수 정권이 늘 해왔듯 공직사회를 개혁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꺼내들었던 성과연봉제 비슷한 제도를 다시 강행하려 한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이 만행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투쟁을 뜨겁게 지지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퇴행을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